집에 오는 길에 비를 맞았습니다.
이제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난춘 다음 여름을 맞이하게 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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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맞은 비에 처음엔 잠시 낯설다가도
금방 마음이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가 그토록 원망하고
비판아닌 비난만 하고 싶었던
누군가의 한 마디가
그 순간, 귀에 일렁였다.
"이맘때쯤, 비를 맞으면
내 죄를 다 씻어버리는 것 같이 느껴져서
나는 비를 맞는 걸 좋아했어. 한때 말이야."
내가 씻고 싶은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잠시 고뇌에 빠졌다가 비를 맞으며 집에 가는 길에
난데없는 뱀 한 마리를 보았다.
뱀이 매섭게 쫓아오길래,
비를 느낄 새 없이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물웅덩이를 밟고, 진흙을 밟고,
잡초가 무성히 자란 땅을 밟고 또 밟다가
숨이 가파라져 잠시 멈추어
주변을 돌아둘러보며 숨을 내쉬었다.
비를 피해 다람쥐 몇 마리가 나무를 타고
열심히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새끼 고라니가
엄마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달팽이 몇 마리가
무리지어 가는 것을 보았다.
/이쪽으로 가면 되겠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들과 같이 걷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비를 느끼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어깨위에 낙하하는 빗방울 소리.
내가 밟는 물웅덩이 참방 소리.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었던
내 양팔을 거두어ー빗물을 온전히 느끼게 하였다.
나는 아직 살아있구나.
아직 이렇게나 잘 살아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동물 친구들과 그중에서 밝아보이는 길을 향해 걸어갔다.
오감으로 느낀 빗물은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었으면서도,
내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뇌하게 하였다.
끝없이 고민했다. 끝없이 번뇌했다는 말이다.
그러자, 급작스럽게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ー왜 나는 원망과 공존하지 못하는가.
어째서 나는 원망과 공존하는 것을
결코 모순이라 생각하였는가.
오래된 우울을 오래된 벗이라며,
어깨동무를 하고 세상을 순례하듯
함께 지내는 우울이라 설명했던 내가,
어떤 이유 때문에 원망과는 공존하지 못했을까.
그것이 내가 여지껏 발견하지 못한
원죄라면 원죄가 되겠다.
그때, 하늘이 빗물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ー그것이 원죄가 된다고 말이다.
나는 나자신한테 지나치게 야박했던 거다.
원망하는 누군가의 말 한 마디 마저 외면하려
어떻게든 잊어보려 노력했다.
진실된 말도 거짓이라며 부정하고 싶었고,
타당한 말에 비판하고 비난하며
아니라 나무라고 싶었다.
오늘 내가 맞은 이 비는, 내 머리 위로 쏟아지고,
내 온몸에 흘러내리면서 내 죄를 씻어버렸다.
죄를 씻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그래서 당신은 비를 맞는 걸
좋아한다 했던 거였구나.
이해하기 싫은 자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내게도 이런 속죄의 시간이
필요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비를 맞으며 당신 생각이 나 울었다.
엉엉 통곡하고 울어도 이게 결코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얼굴에 물방울이 많이도 흐르고 있었던지라,
이를 기회 삼아, 흘리고 싶었던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 흩뿌린 빗물을 내가 맞아,
죄를 씻은듯 느끼니
하늘이 내게 말하기를,
.
너는 지금 죄를 씻은 것이 맞으니
이제 그만 번뇌에서 벗어나,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가라.
다람쥐를 따라가, 새끼고라니를 따라가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따듯한 물로 몸을 데우고
기분 좋게, 좋은 꿈을 꾸길 바래.
/
한참동안 빗물을 맞으며 걷다가
초등학교 옆에 자리한
문방구 앞에 놓여진 의자에 잠시 앉아
긴장을 풀고 담배를 한대 태우며 생각했다.
난 아직 이렇게 살아있고,
나는 죄를 씻었다.
나는 뱀을 보았고, 어미를 찾는 고라니를 보았고,
비를 피하는 다람쥐떼를 보았고,
그리고 어렸을 적 보았던 달팽이 몇 마리를 보았다.
원망과 공존하여 살아가도 나쁘지 않은 삶이다.
내가 원망하는 그대와 같은 생각을 해도
혐오하기보다, 공감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앞으로 나아가라는 하늘의 말에
흔쾌히 응하진 못하였지만, 그래도.
난춘 다음 그리고 지금 여름.
이제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