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cilia Choi Oct 12. 2023

어머니의 죽음

狂-베토벤 현악사중주 14번, 6악장 Adagio qua un poco

코로나로 숨죽였던 세상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차라리 코로나 때가 더 평화로웠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지지부진하고,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지진이, 중동에서는 다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세상이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다. 


십여전 중동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신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 무리 중 나만 유일하게 아시아인이었는데 모두 나를 중국인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케이팝의 위상으로 한국은 방문하고 싶은 나라 중 하나였지만, 그때는 설명할수록 귀찮아지는지라 거의 포기상태였다. 아무튼 어딜봐도 테러리스트나 스파이로 보이지 않는 나에게 이슬람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나, 유태인들이나 모두 친절했다. 바가지는 당했지만 모두 혼자 있는 아시아 여자아이에게 이상하리만치 친절했던 것 같다. 팔레스타인의 라말라지역으로 베들레헴, 예루살렘을 거쳐 하이파를 방문했는데, 제3자인 나에게 참으로 묘한 경험이었다. 벽하나로 세상과 세상이 바뀌는 느낌이랄까...그 벽은 거대한 시멘트 장벽처럼 보이는 것이기도 했지만 때때로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에 암묵적으로 절대 침범하지 않는 그래서 더욱 살벌한 것이기도 했다.


암만에서는 이슬람사원을 방문하였는데 한 할아버지가 이것저것 묻더니 놀랍게도 한글로 된 꾸란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이 말은 이후로도 몇몇 이슬람들에게도 들었다. 모두 억울하다는듯 호소하듯 말했지만 영어도 잘 못하고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어주는 것 뿐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그곳에서 이슬람인과 기독교계 팔레스타인, 그리고 유대인들 모두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이슬람인줄 알았던 팔레스타인 소녀는 자신은 예수님을 믿는다며 십자가를 보여주지 않나 이름도 성경 속의 인물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슬람 택시기사 아저씨는 정직하고 친절했다. 박물관에서 만난 살집 좋은 유태인 경비아저씨는 말도 안 통하는 나에게 이것저것 열심히 설명해주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만나면 언제 그랬냐느듯 전혀 다르게 변했다. 서로 농담을 주고 받던 젊은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당나귀를 끌고가는 어느 팔레스타인 할아버지와 손자에게 냉정하게 총부리를 겨누며 비키라고 했다. 그들은 서로가 세상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마주치는 상황이 오면 표정과 행동이 돌변했다. 


서로를 죽이지 못 해 안달이 난 상태...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 줄 수 있는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도 남의 목숨을 뺏을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보며 환호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된다는 건 광기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 광기로 그들을 몰아넣은 것은 무엇일까. 중동의 분쟁은 수십년, 수백년 간의 불씨가 차곡차곡 쌓여 폭발한 것이라 의견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일본과 우리, 중국과 우리보다 더 얽히고 설켜 서로 원수처럼 지내고 있는 형국이랄까. 과연 해결책은 있는 것일까? 그 싸움의 끝은 어디일까?


사람은 여러 이유로 미친다. 사랑에 미치기도 하고, 도박에 미치기도 하고, 복수에 미치기도, 종교에 미치거나 돈에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끝은 항상 안 좋다. 광기의 끝은 언제나 고통이다.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 좋게 작용한다. 


조용한 북유럽의 저쪽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에드바르트 뭉크는 평안히 살아갈 수 있었지만, 신이 그를 저주했는지, 아니면 불행의 신이 그를 너무 사랑했는지, 누구나 들으면 고개를 절래절래 들으며 유감을 표할 그런 인생을 살았다. 안그래도 허약한 체질로 태어난 그는 5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만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지만, 다행히 돌봐주는 누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누나마저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어린 여동생은 정신병에 걸린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그는 학교도 자주 빠지고, 고립된 생활을 하며 홀로 어린시절을 견뎠는데, 성인이 되서도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신체적 결함인지, 성격적 결함인지 아니면 여자를 보는 눈이 별로 좋지 않았는지 이성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두 명의 여자친구는 그를 배신했고, 마지막 여자친구는 그에게 집착했다. 결국 그녀와의 다툼에서 손가락까지 잃고 만다...물론 그의 일상에서 사소한 행복은 존재했겠지만,  그는 늘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약물중독에 빠졌으며, 자신의 불행이 시작인 어머니의 죽음에서 그는 끝까지 벗어나지 못 했다. 



30대 중반에 그린 그의 그림에서 어머니를 잃은 어린아이의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얀 얼굴의 어머니 뒤로 얼굴없는 무심한 검은 옷의 인물들이 무리를 지어있다. 방안에서 홀로 고립된 아이는 귀를 막고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다. 아이가 붉은 옷은 이 비극적 장면에서 충격과 공포를 극대화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불행으로 시작된 뭉크의 광기는 그의 일생을 불행으로 이끌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광기, 죽음, 공포, 절망, 고립, 고통, 슬픔, 상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부정적 감정이 모두 느껴진다. 정신이 아파져서 몸이 아파진달까. 그의 그림을 보며 무언가 살이 에이고, 뼈가 차갑게 시려온다.


인간의 광기는 우리 스스로를 집어삼킨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원하는 원치않던 나라나 민족 사이에 이 광기가 발동하면 평화롭게 사는 우리들도 결국 양떼처럼 휘말려 서로를 죽이는 광기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십여년전 "밴드 오브 브라더스"란 미드가 크게 유행했다. 나 역시 몇번이나 반복해서 볼 정도로 재밌게 (?) 봤다. 내가 영화 주인공인 된다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티비 속 저 너머의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고, 감동적이고, 사실적이었으며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처음엔 호기롭게 전쟁에 참여한 젊은 이들은 유럽으로 향한다. 내용도 처음엔 나쁜 악당인 독일군과의 싸움을 박진감있게 그려낸다. 하지만 전우들이 하나둘씩 전사하고 -정말 어처구니없게, 파리목숨처럼 말이다- 피로감에 물든 병사들은 점차 전쟁의 목적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이 드라마의 9화 제목이다. 9화는 노인과 여자들이 도시의 폐허를 치우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4번 c# 단조, 6악장 Adagio qua un poco가 일종의 노동요로 연주된다. 이 장면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음악인의 관점에서 그리고, 적군인 미국의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인의 입장에서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히틀러가 죽고 난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왜 하필 베토벤인가? 그 상황에서 음악을? 이라는 수많은 의문이 들지만, 비통에 가득찬 선율을 듣고 있으면 무언가 저절로 납득이 되는 기분이다. 광기가 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폐허뿐이고 결국 인류애를 호소했던 독일인 베토벤의 음악만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시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어느새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입장이 뒤바뀌는 상황은 개인사뿐만 아니라 역사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그것이 인생의 묘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심보를 곱게"쓰라고 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성을 잃는다. 나의 상처가 크기 때문에 나의 분이 풀릴 때까지 넌 죽어도 되고, 망해야 한다고 막다른 절벽까지 몰아부친다. 이런 광기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광기에 휩쌓인 세상 속에서 뭉크의 그림 속의 소녀처럼 상처입은 이들이 과연 전쟁으로 죽은 어린 아이들뿐일까? 광기와 극단의 끝에서 결국 우리도 그림 속의 소녀처럼 귀를 막고 절규하게 되지 않을까? 모두가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 우리의 처지가 소녀와 다른 점이 무엇이 있을까?  


  


     













 

   

이전 21화 초콜릿을 나르는 소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