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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Oct 16. 2023

몽마르트 대로

꿈의 도시 -거슈윈, 파리의 미국인

한국에서는 “낭만의 도시” 또는 “예술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지만, 독일에서는 파리를 “Traumstadt (트라움슈타트)” – 꿈의 도시라고 부른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마도 전세계인이 누구나 일생에 꼭 한번쯤은 가보고 하는 도시라면 당연히 “프랑스 파리”가 아닐까? 뉴욕도 아니고, 베를린도 아니고, 런던도 아니고 파리는 파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있다. 수 많은 보석이 가득 든 상자에서도 누구나 당연히 손이 가게 되는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보석처럼 말이다.  파리는 그 이름만으로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낭만, 예술, 꿈 그리고 사랑.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모든 단어들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있을까?


파리에 처음 가는 들뜬 나를 보면서 누군가는 매우 부러워했지만, 파리를 다녀와본 이들은 처음 파리를 가고 나의 환상을 깨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잘 다녀와”라는 말과 함께 “한번 다녀와서 보자”라고 말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 역시 처음 파리를 가는 이들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파리는 한번쯤은 꼭 가야하는 도시다. 하지만 꿈의 동의어 중에는 신기루나 환상도 있다는 사실도 있지 말기를...


파리는 어째서 우리를 설레게 하는 걸까? 명품 매장이 가득찬 샹젤리제 거리, 아니면 수많은 명작들이 있는 미술관 때문일까? 아니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더욱 형이상학적인 감정적인 것에 더 가깝다. 에펠탑 아래서 오래 전 연인과의 우연한 재회 또는 세느강을 거닐면서 예술을 논할 수 있는, 놀랍게도 말은 잘 안통하지만 마음이 잘 통하는 저 멀리 이국에서 온 사람 -미남이나 미녀일 수도?!-과의 로맨스와 같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미지의 기대말이다. 파리로 향하는 여행객들 모두 마음 어딘가에서는 동화같은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조용히 마음 속에 품고 있지 않을까?


북적이는 현재 파리의 공항만큼 옛날에도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부나비마냥 예술가들은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또는 마차를 타고 파리로 모여들었다. 요즘엔 뉴욕이나 베를린에 그 아성이 흔들리긴 하지만 과거 파리는 예술인들의 영혼의 고향이자 영감을 주는 예술의 도시 그 자체였다. 이렇게 모여든 화가들은 파리에 머물면서 도시 곳곳의 인상을 자신들의 작품에 담았다. 그 중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가 그린 파리 풍경이 가장 우리가 생각하는 파리의 이미지에 가깝지 않을까? 에펠탑도 개선문도 나오지 않지만 누구나 그의 그림을 보면 "이곳은 파리"라고 확신하게 된다.



피사로의 그림을 보면 마치 파리 도로변 어딘가 호텔이나 백화점 테라스에 앉아 분주하게 오고가는 사람들을 조망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이는 시각적으로뿐만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작용한다. 달그락거리면서 바삐 움직이는 마차의 소리나 군중의 웅성거림 더 나아가 계절에 따라 변하고 있는 공기까지 느껴진다. 섬세한 묘사와 따스한 컬러로 피사로는 자신의 눈에 비친 파리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설득력있고 완벽하게 그려냈다. 당시에는 고층건물이었을 신고전주의 양식의 높은 건물, 넓은 대로변에 가득 찬 마차와 검은 색 일색 사람들의 모습은 자칫 지루하고 답답한 그저 그런 대도시의 한 장면이지만 피사로는 활기찬 낭만과 예술의 도시로 재탄생시켰다.  


모네의 연작처럼 파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낮과 밤등 다양한 파리의 모습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피사로의 그림을 보면 위에 언급한 것들과는 별개로 방금 파리에 도착한 여행객의 설레임과 동시에 이미 분주한 일상에 익숙한 파리지앵의 여유로움까지 느껴진다. 서로 어찌보면 상반된 감정이지만 이 역시 화가가 포착한 파리라는 도시가 가지는 매력이 아닐까?

  

수 많은 화가들이 파리를 거쳐간 것처럼 수 많은 음악가들 역시 파리를 선망하고 방문했다. 당시 신대륙에서 온 미국의 젊은 천재 작곡가 조지 거슈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남긴 짧은 서곡인 "파리의 미국인 (American in Paris)"를 들어보면 그가 방문했을 당시의 파리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피사로의 그림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파리는 이제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거리는 더욱 활기차고 복잡해졌다. 처음 도착한 문화선진국의 수도의 모습은 젊은 이국의 작곡가에게 "복잡하지만 꿈이 가득한 낭만과 꿈의 도시"가 아니었을까? 발랄하고 귀여운 현악의 서주 이후 쉴새없이 울려퍼지는 현, 목관, 금관, 타악기가 내는 경적 소리에 젊은 청년은 혼비백산하지만, 이내 곧 이에 적응한다. 처음보는 물건이 가득한 화려한 쇼윈도우, 다소 차갑고 거만한 표정의 파리지앵들, 그리고 넓은 도로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차와 마차들 사이에서 여행객은 스트레스와 짜증은 커녕 소음을 자신의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유쾌하고 즐겁게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곡의 여기저기에는 정신없이 움직이는 도시 한 가운데를 "파흐동(실례합니다)"를 외치며 춤을 추듯 이리저리 치며 여기저기 구경하기 여념이 없는 젊은이의 풋풋함과 설레임이 가득하다. 그가 처음 들은 소리, 그가 마신 공기, 그에 눈에 비친 당시의 광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느낀 감정이  그의 음악 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피사로의 시각과 비교하여 시대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여행객"으로서의 느낀 파리의 감성이 더욱 돋보인다. 소음이 가득한 정신없는 번잡한 거리를 "청춘, 그리고 꿈과 낭만"으로 이라는 키워드로 덮었다고나 할까? 이렇듯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이제는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느끼는 일은 즐거운 경험이다.


작품의 도움을 받아 나의 기억 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파리의 추억을 더듬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달콤씁쓸한 과정이다. 지나간 세월이 아름답다는 것은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청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입을 삐죽이 내밀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자연스레 그 말의 의미를 체득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파리는 여전히 세상에서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도시 중 하나이고,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는 꿈의 도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도 이 매혹적인 도시에 홀린 제2의 피사로나 거슈윈이 그들의 작품 속에 그 모습을 계속해서 남길 것이다. 영원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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