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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Oct 18. 2023

돈키호테

닿을 수 없는 별에 도달하는 것 - 드보르작, 교향곡 8번 G장조

오래간만에 외출을 하였다. 코로나 탓인지 나이탓인지 그동안 행동반경이 많이 줄어들어서,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간다는 것에 설레이기도 했다. 코로나 때와의 경직된 분위기는 이미 사라지고, 코로나 이전처럼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주말 점심에 탔는데 이태원 참사의 영향 때문인지 예전처럼 오밀조밀 모여 밀쳐지는 일도 없었다. 일본여행에서도 지하철을 주로 타고 다녔는데, 늘 러시아워 때의 2호선을 타는 기분이었다. 늘 붐비는 구간을 타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붐벼도 비워져 있는 노약자석이나 질서정연하게 거리를 지키며 타는 것을 보면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질서를 잘 지키는 것 같다.   


지하철을 타면서 스트레스지만 재밌는 일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흔히 사람한테 치인다고 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만나는(?) 이런 저런 사람들로 인해 가끔은 화도 나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호의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보는 별별사람들을 구경하면 참 다양한 생각이 든다. 여기서도 인지상정이라 "진상"을 보며 나와 같이 떨떠름한 표정을 짖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동지의식마저 들기도 한다.


악명높은 1호선과 2호선의 몇몇 구간을 다니게 되면 정말 일상을 익사이팅하고 다이나믹하게 살 수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4차원 사람들을 만나며 가끔은 "왜 나한테만 이런 미친 사람들이 붙는 건가"하는 자괴감이 들어 우울해지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저런 사람도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자"라는 희망을 얻기도 한다. 굳이 놀이동산에 갈 필요가 있을까. 지하철만 타도 이렇게 재밌는데 말이다.


가끔 저 사람은 어떻게 지하철을 탔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굉장한 고차원적 사고를 가진 분들도 만난다. 보는 나는 괴롭지만 그분은 그분의 세계에서 굉장히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뭐, 나에게 피해만 안끼친다면야...화가 가득찬 분들보다는 괜찮지 않은가? 그런 분들의 발언을 귀기울여 듣다보면 나름 그럴수도 있다라고 고개도 끄덕여지기도 한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집에 있기보다는 용감하게  지하철을 타고 냉정한 사회로 나와 누가 뭐라하건 신경쓰지 않고 꿋꿋하게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실현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돈키호테가 따로 있는게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로시난테 대신 지하철을 타고 자신의 조수가 될 산초나 풍차거인을 찾아 떠나는 돈키호테들을 보면 지루한 세상이 재밌어져서 지하철을 타기 전엔 설레이기도 한다. 물론 돈키호테가 나를 풍차거인으로 착각하여 달려들거나 "자네 내 조수가 되겠나?"하면서 제안을 하는 곤란하거나 겁이 나는 상황도 발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뭐, 다 같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늘 지하철을 타면 한결같이 조용히 앉아 핸드폰만 바라보는 광경만 펼쳐진다면 그것도 이상할 것 같다. 소금도 있고, 설탕도 있고, 가끔은 후추도 뿌려줘야 요리가 맛있어 지는 법이니 말이다.


이렇듯 우리의 현실과 약간 다른 세상에 사는 돈키호테들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을 준다. 재밌기도 하지만 가끔 현실 풍자적이라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주었다. 특히 나는 드보르작 교향곡 8번을 들으면 돈키호테의 모험을 듣는 듯한, 또는 읽는 듯한 서사가 느껴진다.


조용하게 품위있게 시작하는 1악장의 서주부에서는 이미 돈키호테의 "똘끼"가 느껴지며 그의 여행이 시작된다. 로시난테를 타고 희망에 가득 차 용감하게 행진하며 미지의 여정을 떠나는 노기사의 모습이 그려진달까? 새들이 지저귀고, 멀리서 석양이 비추고, 별이 뜨는 동안에도 그의 여행은 쉼이 없다. 여정의 중간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자신의 영웅담을 펼칠 기회를 꿈꾸며 잠이 들기도 하고, 아름다운 둘시네아를 찬양하며 피곤따윈 저멀리 잊어버리고 즐겁게 발걸음을 옮긴다. 가끔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해하려는 악당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게 다 기사가 되는 과정이다. 그는 기꺼이 이들과 맞서 싸우며 굴하지 않고  여행을 계속 한다. 산초라는 좋은 동반자도 얻고, 아름다운 공주님들을 만나기도 하니 길을 떠난 것이 후회스럽지 않다. 꿈을 쫓아 집을 떠난 세상엔 모험과 낭만이 가득차 있다. 결국 최대의 숙적을 만나 패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지만 말이다. 그가 죽음 직전에 어떤 유언을 남겼든간에 교향곡의 마지막은 돈키호테의 파란만장한 삶을 짧게 다시 회고하며 갈무리 된다. 밝고 경쾌하게, 꿈과 낭만을 쫓아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돌진하는 기사의 모습을 기념하면서.   


실제로 돈키호테를 소재를 한 작품들은 음악과 미술뿐 아니라 발레에서 뮤지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존재한다. 꿈을 쫓는 삶에 대한 동경때문일까? 아니면 현실에 대한 풍자때문일까? 어쨌든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작가와 동향인 피카소가 그린 돈키호테 그림이다. 작가의 이름만 대면 황금으로 변하는 그 파블로 피카소말이다. 어쩌면 피카소는 성공한 돈키호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예술가들은 어땠을까? 대부분의 예술가의 삶이 돈키호테의 삶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 중 자다일어나면 정권이 바뀌는 혁명 이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의 프랑스 공화국 초기에 활동한 오노레 도미에는 돈키호테와 그 궤적이 비슷하다. 그가 살던 시대에서 "돈키호테"처럼 사는 것은 어쩌면 예술가로서의 필연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노레 도미에 "돈키호테" 저 멀리 보이는 실루엣은 산초일까? 현실일까? 아니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일까?


"Soñar el sueño imposible, luchar contra el enemigo imposible, correr donde los valientes no se atrevieron, alcanzar la estrella inalcanzable. Ese es mi destino".


"불가능한 꿈을 꾸고, 불가능한 적과 싸우고,
용사들도 꺼리는 곳으로 달려가, 닿을 수 없는 별에 도달하는 것. 그게 내 운명이야." - 돈키호테



일생을 주로 풍자화만 그려오던 그가 말년에 어째서 "돈키호테"에 빠졌는지는 그의 삶을 되집어 보면 짐작이 간다. 오노레 도미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돈벌이를 시작해야 했고, 주로 신문의 커리커쳐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권좌에 올랐다가 쫓겨나는 권력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의 싸움을 보며 아마 그는 세상에 대한 회의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달리 인정을 받기 시작한 쿠르베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 친구들이 그를 알아봤는지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런 회의감때문인지 또는 예상치 못 한 "돈키호테"와 같은 성정때문인지 명성을 얻을 만한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리기도 했다. 실직을 하고, 그림도 안 팔리는 빚에 쪼달리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반골기질이 예술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화가로서는 치명적으로 시력까지 문제가 생기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이어나갔고 말년에 겨우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념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주는 훈장도 두 차례 거절한다. 결국 빚이라는 무서운 풍차거인때문인지 연금은 받아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듯 신념을 지키고자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는 세상이 그를 알아주기 시작할 때쯤 세상을 떠난다. 말년의 그는 자신의 삶을 돈키호테에 투영한게 아닐까? 수 많은 연작을 남기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모든 각자의 삶을 살고, 각자의 이유가 있다. 꿈을 쫓는 돈키호테의 모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만, 자신의 광기를 깨달으며 후회로 마쳤던 그의 삶은 다른 생각할 거리를 준다. 세상에 대한 평가는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쫓았던 오노레 도미에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에게 타인의 삶을 재단할 권리는 없다. 단지,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일평생 신념을 굽히지 않고 나라의 훈장까지 거부했던, 그러나 결국 연금만은 받아들였던 그는 어떤 유언을 남겼을지는 궁금하다. 돈키호테처럼 자신이 평생 쫓아온 신념이 거짓된 포장이라는 것을 알고 후회했을까? 아니면 신념을 지킨 자부심에 만족하며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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