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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Oct 16. 2023

생 레미의 거리 공사

가을 - 라흐마니노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 19, 3악장

서서히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정도로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해가 짧아지며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서 나무들이 하나둘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가을! 얼마나 기다렸던 계절인가? 매섭도록 시린 겨울이 오기 전에 이 아름다운 찰나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가을의 상징은 무엇일까? 보름달? 추석? 도토리? 각기 경험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나올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단풍이 아닐까? 푸룻했던 잎이 노랗고, 빨갛게 변해가면서 세상이 울긋불긋 아름다워지고 등산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워 버스를 타고 산으로 행한다. 나처럼 숫기없는 이는 뉴스에 나오는 헬리콥터에서 본 전경과 등산객들의 인터뷰를 보며 간접체험으로 만족한다. E의 성격과 관절의 건강함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단풍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취향에 갈린다. 사람에 따라 소나무처럼 늘 푸른 상록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낙엽수를 선호한다. 낙엽수파로서 한마디를 하자면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잎이 무성해지고, 가을이 되면 멋진 낙엽을 보여주고, 겨울에는 다시 올 봄을 기다리고 있는 나무들을 보는 것이 즐겁다. 


다음으로 붉은 단풍이 좋은지 노란 은행이 좋은지 묻는다면, 오랜 고민을 한 끝에 노랑색이 눈에 가득 담기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샛노랑 은행잎이 나뭇가지에 나비가 모여있듯 옹기종기 달려있는 것도 좋고, 황금 카펫트 마냥 바닦에 깔려 있는 것이 좋다. 눈을 보면 좋아 깡총깡총 뛰는 강아지처럼 은행잎으로 덮힌 가로수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세포 사이로 노랑색으로 팡팡 터지면서 온 몸이 노오랗게 물드는 기분이 든다. 


가을에 제일 잘 어울리는 화가, 또는 노랑색을 제일 잘 썼던 화가라면 당연히 "빈센트 반 고흐"다. 해바라기부터 시작해서 하늘의 별까지 그의 작품에는 노랑색이 필수다. 어떤 컬러든 너무 강하면 사뭇 촌스러워지기 마련인데, 노랑은 오히려 그의 그림을 더욱 유니크하게 만들어준다. 


어째서 고흐는 노랑색을 그리 좋아했을까?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하여 나 자신을 조금 더 속일 필요가 있다"라는 말이 남아있을 정도록 화가의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지만, 혹자는 그가 앓았던 간질이라 추정되는 정신병에 주목하기도 하고, 또는 그가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을 그 이유라 생각했다. 지독한 알콜 중독이었던 고흐가 마셨던 압생트에는 산토닌이 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산토닌의 부작용이 바로 세상을 노랗게 보이게 하는 황시증이라고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 압생트와 시신경 마비나 환각은 상관이 없다고 한다. 


황시증도 아니라면 어째서 고흐에게 수 많은 컬러 중 노란색이 그렇게 강렬했을까? 정말로 단순한 작가의 취향이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면 어쩌면 모든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게 아닐까 싶다. 우울증인 상태에서 자연스레 밝은 컬러에 강한 자극을 받게 되기 마련이고, 더욱 끌리기 마련이다. 거기에 프로방스의 뜨거운 태양과 더운 기후가 그에게는 노랑이라는 컬러로 함축되어 그에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블루보다 그를 보다듬어 준 순박한 프로방스 주민들의 따스함과 그를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 생명력의 강렬함 그것이 바로 노랑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가 고갱과 살던 방, 하늘에 뜬 태양과 별, 자주 가던 거리의 카페, 꽃과 들판 그가 사랑하는 소중한 모든 것들의 상징하는 색깔이 노랑으로 자주 표현되는 건 과연 우연일까?



그가 마지막 작품인 "생레미의 거리 공사"를 보면 고흐의 시선에 비친 세상이 노랑으로 극단적으로 표현된다. 이제 노랑으로 온 세상이 물들었다. 가을의 쓸쓸함과 처연함마저 느껴지는 이 그림에서는 한편 세상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하다 못한 지루한 일상의 풍경이지만 고흐의 시선에서는 계절이 변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거친 터치와 강렬한 색감 속에서 고흐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이라는 끈을 놓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에 소중한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이기 그림에 남기지 않고는 못 베겼으리라. 우리가 가을을 소중한 이들과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소중한 이에게 가을의 정취를 즐기기 위해서 어떤 음악을 추천할 수 있을까? 가을하면 고독을 떠올리듯 브람스를 대부분 떠올리겠지만 나는 베시시 웃으며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 음악에는 나의 개인적인 추억이 담겨있기도 하다. 유학을 떠나는 나에게 한 친구가 명동 한 복판에서 손에 쥐어준 씨디. 첼로를 전공하는 그녀가 직접 고른 음악이니, 아마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아름다운 첼로 음악"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소나타"는 나의 취향이 아니었기에 선물을 받고 2년 뒤 쯤  늦은 밤 과제를 하다 비닐 포장을 뜯고 씨디를 처음으로 들었다. 처음엔 음울한 분위기에 내가 생각한 라흐마니노프와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아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3악장의 낮고 서정적인 멜로디에 빠져 과제를 잠시 놓고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축축하지 않은 오히려 품위있게 아름다운, 내면을 울리는 내공이 느껴지는 저음을 들으며 아름다운 음악을 소개시켜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외롭고 힘들었던 나의 마음에 정말 깊은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가을의 음악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는 "브람스" 대신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라고 늘 대답한다. 노란 낙엽이 쌓인 가로수길을 홀로 걸으며 가을의 낭만을 고즈넉히 즐기기에는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만큼 제격인 음악이 없다. 브람스의 음악에서 느끼는 낭만과 고독, 그리고 자유로움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홀로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품격이라는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풋풋함과 화려함보다는 세상만사를 다 겪고 오는 깨달음에서 오는 가슴 속 깊이 느껴지는 묵직한 아름다움 그리고 따뜻한 관대함이랄까.    


가을은 너무나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그림과 작품이 이 계절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하고, 많은 음악가의 작품들, 특히 낭만주의 작품들은 대부분 모두 가을과 잘 어울린다. (그렇기에 나의 라흐마니노프 예찬은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아무튼 아름다운 가을을 삶에 치여 그저그렇게 흘려보내는 건 너무나 아깝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따뜻한 햇볕을 느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파랗고 높은 하늘과 단풍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아햐 한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가을을 맞아 잠시 연락이 뜸했던 이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보니 네 생각이 났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딨을까? 물론 음악과 미술과 함께라면 혼자서 느끼는 가을도 나쁘지도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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