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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Oct 14. 2023

엔디미온

걱정이 없다면...-브람스 "자장가"

누구나 한 번쯤 나이가 들면서 "불면증"이란 것을 겪는다. 물론 밤에 잠을 안 자는 것은 유아에게도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불면증"이라고는 표현하지 않는 것 같다. 사춘기가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기현상이 잦아졌던 것 같다. 아무리 피곤해도 눈이 말똥말똥, 정신이 또렷또렷해지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지만, 점점 빈도수가 심해지고 이제 나의 깜찍한 지방이들과 함께 평생을 같이 가야 할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에 잠처럼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일상에서 누리는 사소한 것들, 아주 정상적인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아무리 먹어도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튼튼한 위장, 말랑말랑한 어깨근육, 맑고 깨끗한 시력, 튼튼한 이빨 같은, 어린 조카가 들으면 웃기다고 까르르 웃을 만한 것들이다. 그중에는 눕자마자 잠들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되는 것 같다. 삶에서 아주 당연한 것인데 나는 어째서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불면증의 원인은 다양하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기사나 설명을 읽고 있으면 '누구나 다 이 정도쯤은 겪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잦은 스마트폰 사용, 스트레스, 현대 생활에서 오는 신체적, 정신적 긴장 등 누구나 다 겪는 이유 같은데, 나만 유난을 떨며 불면증에 겪고 있는 것일까? 결국, 유튜브의 힘을 빌려 불면증에 좋다는 영상을 모두 다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때 알고리즘의 힘이 나를 "최면"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상으로 이끌었다. 전생을 찾아준다는 영상인데, 밤에 침대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으니 그 시간에 차라리 전생이라도 체험해보자 싶어 틀어놨는데, 이게 왠 걸...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유레카!


혹시 꿈에서라도 전생을 보기라도 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아쉽게도 기억이 안 난다. 꿈을 꾸긴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만큼 꿀잠을 잤다는 방증이 아닐까? 아마 최면을 거는 과정에 집중하면 몸과 정신에 긴장이 풀리면서 이것이 수면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일상에서 오는 긴장과 걱정에 마음이 심란하여 그동안 잠을 들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편안한 수면을 위해서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낮은 조도의 조명이라던가 밀폐된 공간, 깨끗하고 푹신한 침구 등등 말이다. 때때로 음악의 힘을 빌리기도 하는데 저음의 느린 음악이 애호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라던가, 아베 마리아라던가... 듣고 있으면 긴장이 풀리면서 심신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중 제일은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가 아닐까? 다 큰 어른이 자장가를 듣고 있다면 웃길 수도 있지만, 잠이 우리 삶의 필수인 것처럼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는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물론 이제는 나이가 드신 어머니를 깨워 "불면증에 걸렸으니 자장가를 불러주세요"라고 하는 불효를 저지를 수는 없으니 유튜브를 검색한다.


동양에도 여러 버전의 자장가가 있듯 서양의 많은 작곡가들이 자장가를 남겼다. 그 중 제일 유명한 자장가는 아마도 "요하네스 브람스"의 자장가가 꼽히는데, 클래식을 모르는 이들도 "아, 이 음악"이라고 알정도로 유명한 음악이다. 친구의 둘째아들이 태어나자 칼 짐로크라는 시인의 시에 노래를 붙인 곡인데, 4분의 3 박자가 경쾌하면서도 따스하게 들리는, 듣고 있으며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멜로디이다. 아기의 요람을 천천히 흔들며 어머니가 이 노래를 낮게 흥얼거리고, 아기가 쌕쌕 잠에 드는 평화로운 광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애석하게도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극심한 불면증도 있다. 침대에 누우면 걱정과 근심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을 안하겠네"라는 유명한 말도 있지만 나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지 못 한다.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생각에 마법의 램프라던가 내가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현실도피적인 상상, 혹은 망상도 해 본다.


조지 프레데릭 와츠, 엔디미온 (1869)


여기 한 청년이 있다. "엔디미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한낱 양치기였지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 청년이었다. 보통 "양치기"라 함은 알퐁소 도데의 "별"에 나오는 섬세하고 유약한 청년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천만의 말씀! 드넓은 산과 평야에서 수십마리, 수백마리의 양떼를 이끌고, 때때로 폭풍우나 사나운 늑대에 맞서 양들을 구해야 하는 양치기는 건장하고 튼튼한 육체를 지녀야 했다. 달의 여신이면서 사냥의 여신인 셀레네가 구리빛 피부의 건장한 미남인 그에게 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셀레네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양들을 지켜야하는 그가 안쓰러웠는지, 그가 자는 동안 그를  대신하여 양들을 지켜주었다. 여신이 양을 지켜준다는데 무슨 걱정이 있을까? 기꺼이 그녀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편안히 깊숙한 잠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런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그의 충복인 양치기 개도 발치에서 같이 잠이 든다.


물론 사랑이 깊어지면 병이 된다고, 이후의 이야기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지지만... 어쨌든 여신의 도움으로 엔디미온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양들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한채 영원히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하루종일 산이고 평야를 뛰어다니며 양을 치고, 다음날 다시 똑같은 하루를 반복해야 하는 고단한 삶에 대한 걱정따위는 잊은 채 말이다. 셀레네의 키스는 아주 달콤한 자장가 그 자체였다. 모든 책임감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루 중에서 가장 달콤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여신의 키스는 허락되지 않지만, 미봉책으로 불면증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운동이나 명상을 하기도 하고, 반신욕이나 따뜻한 우유를 마시기도 하며, 앞서 말한 것처럼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심신의 긴장을 풀어 준다. 그리고 때때로 나에게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고, 그리고 참 잘하고 있다고, 내일도 잘 될 것이라고 조금 너그러워지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나간 일은 잊는 것, 그리고 희망을 갖는 것 말이다. 그것 또한 신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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