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립과 미니멀 라이프

전문번역가 vs. 나 자신

by 빛나는 지금

공무원 연금에 대해 말이 많다. 사실 연금 자체에 대해 공공연한 불안감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나는 연금개혁이니 앞으로 몇십 년 후 물가 대비 연금 인상률 혹은 연금 동결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몇몇 글을 읽으며 한 가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내가 20여 년간 꼬박꼬박 넣어온 (자동으로 월급에서 공제된) 연금이 과연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 직장을 나오고 연금이 주수입원이 될 때 정말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나 역시 이제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국민연금을 꼬박 꼬막 넣고 있다. 가장 기본액만 넣고 있다. 나의 연금과 남편이 이제야 넣기 시작한 소액의 국민연금이 20여 년 후 우리의 든든한 생활비가 되어줄 것인가.


안정된 공무원이라는 직종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이 직업 이외의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이후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도 없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과 안정된 자리는 이 직종의 최대 장점이었고 그 반대급부로 나는 고민도 발전도 없이 충실한 직장인과 나의 진짜 정체성을 혼돈하게 되었다.


복직하자마자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퇴직이란 두 단어를 붙들고 여기저기 직장을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일들을 모색해 보았다.


영어를 전공했으니 번역가가 되어볼까.

전문 번역가들이 그렇게 경계하는 안이한 태도로 번역가들이 쓴 책 몇 권을 읽어보기도 했다.

실제 번역가로 살아가는 고충은 둘째치고 번역가로 입문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무슨 무슨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좀 더 공식적인 입문이 수월해 보일 듯했으나 외벌이로 늘 빠듯한 살림에 백여만 원이 넘는 비용도 발목을 잡았지만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이어지는 근무시간을 쪼개어 아카데미의 다양한 수업 및 과제를 해결하기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정말 간절했다면 해낼 수도 있겠지만 복직 2년 차 누적된 피로감은 어떤 간절함이라는 강렬한 동기를 불러일으키기엔 여전히 불쏘시개의 힘이 약한 탓이었는지 결국 시도해보지 못했다.


그러다 플리토라는 번역회사에서 일정한 번역 샘플테스트를 통과하여 전문번역가로 인증해 주는 제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 시간을 내어 부랴 부랴 도전해 보았다. 전문 경제 잡지의 기사였는데 단어들이 어렵고 경제 현황에 대한 전체 맥락을 잡기도 힘들어 어렵게 A4 한 장 분량의 글을 번역해서 제출했다. 시간을 좀 더 가지고 수정을 하는 과정을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일단 나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픈 마음이 커서 바로 제출했다.


그리고 오후에 결과를 확인하라는 메일을 받고 긴장된 마음으로 사이트에 들어가서 결과를 확인했더니 불합격이었고 재도전은 6개월 후에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실망과 함께 나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찾아왔다. 영어 좀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역시 전문분야와 고급 영어 앞에서는 여전히 너무나 부족한 상태인 것이다. 딱 내가 해왔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찾아온 생각은 번역이 아니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직장을 벗어나 경제적 자립을 하나씩 이뤄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다.


그 회사의 전문 번역가로 인증받았다고 해서 바로 번역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현재 직장이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는데 첫 시도가 좌절되고 나니 한 걸음 내밀려던 용기가 같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럼 그렇지... 실력이 있어야 이 안정된 직장을 벗어나고 정글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

실력이 없으면 그냥 조용히 지금의 모든 안정된 체제에 만족하면서 여기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게 가장 지혜로운 게 아니겠어...


이런 패배감에 절은 내면의 목소리들이 나를 가득 채워갈 때

다시 미니멀라이프를 떠올렸다.


자 지금은 감정을 미니멀라이프 해야 할 때이다.

부정적이고 패배감이 가득하여 왜곡된 이 감정을 여기서 멈추기로 선택한다.


여전히 번역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6개월 후에 재도전해봐도 좋을 것이다.


미니멀라이프는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남기는 것이다.

직업, 퇴직하고 두 번째 일, 경제적 자립 등 많은 것들이 중요해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을 하고 있고 통과해야 하는 나 자신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전문 번역가로 인증을 못 받았고 내 영어 실력이 생각보다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실망과 미래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과감하게 버리고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지키기로 다짐한다.




keyword
이전 25화식비 미니멀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