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의 난적들

by 빛나는 지금

미니멀 라이프를 이어오면서 여러 번 어려움들이 있었다.


내 물건 및 내가 주도적으로 처리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물건이나 가구등은 비우기가 당연히 쉬웠다.


초기에 집중적으로 몰입한 비우기 덕분에 자신감을 쌓을 수 있었고 그 힘으로 가족들의 물건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아직 많이 어린아이들의 물건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1-2주일 정도 시간을 두고 면밀히 아이들의 놀이패턴과 행동반경을 잘 관찰해 보면 분명 반복해서 갖고 노는 장난감, 늘 끼고 다니는 책, 일상이 되어버린 놀이들이 보인다. 거기에 들지 못하는 장난감이나 물건들은 아이들이 자거나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창고로 보낸 후 다시 1주일 정도 시간을 두고 아이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 아이들은 그 물건의 행적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어디 있어?라는 물음에 살짝 찔리는 마음에 "어어... 엄마가 한번 찾아볼게" 하며 아이가 다른 놀이를 하는 동안 창고에 있는 물건을 몇 번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지금은 아이들이 찾아도 그 횟수를 세면서 가만히 기다리는 여유가 생겼다. 혹시 그날 밤에만 찾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더 이상 묻지 않는다 하면 그 물건은 계속 창고에 두었다가 비워도 괜찮다는 것을 경험상 체득한 것이다.


남편의 물건은 좀 달랐다. 일단 남편은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처음 결혼하고 나서 시아버지께서 남편 물건이니 이제 가져가라고 내어주신 큰 박스 안에는 초등학교 일기장과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서 받은 편지, 심지어 선물 받았다는 열쇠고리와 코팅된 낙엽까지 들어있었다,


그때 당시는 나 역시도 어릴 적 앨범과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던 때라 그러려니 했고 넘치는 물건들을 수납하기 위해 큰 책장을 구입하는 것으로 지혜롭게 해결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미니멀 라이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보니 남편의 물건 중에 정말 버리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왜 이제 누렇게 색이 바래버린 고등학교 시절 생일카드를 아직도 들고 있는가? 침이 녹이 슬어버린 중학교 시절 컴퍼스는 왜 서랍에 들어있는 걸까? 저 위에 전혀 쓰지 않는 칙칙한 색깔의 침낭을 치우고 나면 얼마나 빈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중학교부터 대학교 앨범까지... 저 무거운 걸 들고 오느라 이사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가... 등등 내 눈에 들어오는 남편의 물건은 대부분 얼른 비워져야 하는 것들이었지만 남편은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하면서 내가 혹시라도 몰래 버릴까 봐 예의 주시하듯 부랴 부랴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바빴다.


버리라고... 절대 다시 안 본다고... 잔소리를 했다가

남편이 집에 없을 때 정말 이 집에 이사 와서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물건은 크기가 작은 것부터 창고로 넣어도 보았다가 ( 어떻게 알고 묻길래 다시 도로 가져다 놓아야 했다.)

남편 서재방을 치우면서 많은 물건 때문에 매번 청소가 얼마나 고단한지를 꼭 들으라는 목적으로 크게 성토도 했다가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가장 효과가 있었던 방법은 역시 미니멀 라이프의 효과를 직접 본인이 체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내 물건부터 해서 집에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을 하나하나 치우고 점점 집의 여백이 넓어지고 어수선한 것들이 비워지면서 정리가 되기 시작하니 남편은 "미니멀 라이프하길 잘했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조금씩 자기의 물건을 비우기 시작했다. 누렇게 변색되어서 우리 집 먼지의 발산지 같아 보였던 옛날 책들을 비울 때는 옆에서 이것도 더 비우라고 격려와 응원과 조르기를 같이 했다.


아직도 남편물건 중에는 비워야 할 것이 많다. 그래도 처음 시댁에서 신혼집으로 옮길 때 차 뒷좌석에 실려서 왔던 그 많던 옛 짐들이 많이 비워진 지금. 남편도 성격 급한 아내에게 다분히 맞춰주고 있음을 안다.


미니멀 라이프의 난적은 또 있으니 바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오는 작품들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잘 놀고 잘 먹고 안전하게 잘 지내다 오면 된다. 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바라는 것은 딱 거기까지이다.

그런데 매일 줄줄이 부록들이 따라온다.

하루는 사람모양의 종이컵이 하루는 밤톨이 붙은 합판 액자가 하루는 다육이 화분이 하루는 종이로 접은 청사초롱이 하루는 우리 아이들의 추상화들이 계속 계속 따라온다.


우와 잘했구나!! ( 근데 무엇을 그린 걸까?)라고 겉과 속으로 이중 반응을 보인다음

나의 고민은 이제 저 "작품"을 어떻게 비우느냐 이다.


아이의 성장발달과 내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 하루의 모습을 담은 귀한 작품이라고 달리 볼 법도 하건만

나에겐 그냥... 비워야 할 대상이다.


남은 결과로써의 물건이 아니라 그냥 아이가 그것을 만드는 시간 동안 즐거웠고 신났고 무언갈 배웠으면 된 거다. 아이 안에 보이지 않는 결과가 물건보다 더 중요한 것이니 이제 우리 아이의 손에 들린 물건은 효용가치를 다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손이 직접 가 닿은 물건이다 싶으니 바로 버리기는 어렵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다음날까지 문득 찾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이 "작품"들은 일단 우리 집 선반에 일정기간 전시회를 가진 다음 주말즈음에 비우곤 한다.


솔직히 어린이집에 말씀드리고 싶다.

" 잘 만들고 그 시간 동안 잘 놀았으면 충분하니 마음에 담아두고 실물은 안 보내주셔도 된답니다 ^^;;"


그 다은 난적은 우리 친정엄마다,

우리 엄마도 비우지를 못한다. 다만 이제야 조금씩 나의 의지를 인정해 주시는 정도이다.

말로는 설득이 잘 되지 않아 엄마에게는 강한 의지를 행동으로 몇 번 보여드렸다.

엄마가 아이들 옷을 사 오시거나 하면 한벌을 사 오면 기존 옷 중에 한벌을 두벌을 사 오면 두벌을 비우는 식이다.

엄마는 깜짝 놀라서 말씀하신다. " 아니 자라는 아이들 옷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멀쩡한 옷을 왜 버려."


그리고 내가 비울라치면 엄마집으로 들고 가서 옷장 어딘가에 두신다.


인정하되 나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에 나는 여전히 한벌 옷을 받으면 한벌은 기어코 비워내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물건 하나도 참 의지대로 비우는 게 쉽지 않은데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라고.


미니멀 라이프를 밀고 가는 그 힘이 점점 더 자라나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이끌어 가는 내공으로 점차 발전해 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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