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만큼 내딛기

by 빛나는 지금

하나씩 하나씩 필요 없는 물건과 가구들을 비워갔다. 비우기도 가속이 붙으니 점점 빨라져서 나중에는 그 어렵다는 고난도의 추억의 물건도 몇 번이나 쓰레기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휙 휙 하고 버렸다.


최근에는 셋째를 기대하며 2년 넘게 품고 있었던 육아용품도 중고마켓을 통해 다 나누었다. 아기띠에 유모차 시트, 내복, 외출복, 딸랑이 등 아기가 태어나면 1년 정도는 필수적으로 쓰게 되는 물건들이어서 나누면서도 참 뿌듯했다. 누가 가져가든 유용하게 쓰일 물건들만 선별해 모아둔 터라 다른 누군가의 손에서 아기를 위해 잘 쓰일 테니 나눔의 의미가 제대로 실현될 터였다.


육아용품을 나누면서 내가 보낸 건 막연한 미래에 대한 기다림과 기대였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늘 바라보며 계획을 세웠다. 일단 어떤 일이 생기면 그 일을 이렇게 저렇게 해서 앞으로 이렇게 해야지 라는 생각이 거의 자동적으로 머리회로를 돌기 시작했다.

가족 중 누군가의 입에서 "우리 앞으로 여기 가볼까" 하면

바로 머릿속으로 여행가방부터 싸는 것처럼 나는 미래에 대해 공상하고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상상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 내용이 다채롭고 화려했던 만큼 더디 이루어지는 시간 앞에 초조해졌고 원대로 펼쳐지지 않는 현실의 적나라함 앞에 실망도 크게 했다.


육아용품을 깨끗이 정리하여 나눈 후 비어진 옷장 한편을 바라보며 어느 정도 섭섭했고 또 어느 정도는 시원했다.


이루지 못한 꿈( 앞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을 천천히 보내며 다짐했다.


이제 오지 않은 미래를 그리지 말고 지금 현재를 살자고.


꿈을 하나씩 비우니 현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미래에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하나씩 지워가니 현재가 좀 더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밖에는 답이 없고 지금 사는 모습이 나의 전부이다"라는 무력한 한계를 긋는 것과는 다르다.


미래라는 꿈과 상상은 현실을 피하고 불평하게 만드는 핑계가 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셋째에 대한 꿈을 육아용품과 함께 보내고 나자


이미 나에게 온 너무나 귀한 우리 첫째와 둘째가 더 또렷이 보였다.


셋째 덕으로 해보려 한 휴직에 대한 주도면밀했던 미래계획을 포기하고 나자


지금 내가 더 충실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였다.


여기서 한걸음. 그게 이제 나의 하루치 목표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하는 것. 그리고 매일 하는 것.


언제나 한걸음이 두 번째 걸음을 부를 테니 나의 매일의 걸음이 엮어낼 노래의 힘을 믿어보는 것.


그리고 그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를 미리 생각하거나 쥐어 짜내지 않을 것.


그게 오늘 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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