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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 Aug 13. 2023

TV는 무슨 맛일까?

영상시청에 대한 원칙

TV는 꿀맛이다.

달콤한 게 먹고 또 먹고 싶고 입맛을 계속 당긴다.

꿀을 마냥 먹을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많이 먹으면 탈이 나니 그게 참 아쉽다.


주로 TV를 활용하는 나의 엄마표 영어도 그렇다.  디지털미디어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작용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늘 걱정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화되어 걱정의 강도가 줄어든 것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이 시대에 디지털미디어로부터 해방이란 불가능하니 이왕 볼 거 아이와 씨름하지 말고 활용하자는 자기 합리화에 따른 양가감정이 뒤섞여 있기도 하다.

건강해질 것 같은 패키지에도 꿀의 단점은 여전하듯이




엄마표 영어를 하는 누군가는 영상 노출 없이, CD와 세이펜(책을 읽어주는 펜)을 활용하거나 그마저도 엄마나 아빠의 육성으로 책 읽기를 해주는 식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수는 나처럼 영어 동영상을 보여주고 영어책이나 CD 등을 추가로 활용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는 여기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생각에 따라 원칙을 정하고 실천을 하는 것이다.

특히, 영상시청에 대한 원칙은 꼭 필요하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엄마표 영어를 시작한 것이 아닌 데다 미디어 활용에 대한 원칙도 명확하지 않아서 초반에 상당한 고생을 했다. 생각해 보면 외출 시 아이가 울거나 보채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며 달래주는 식의 임기응변이 제일 최악이었던 것 같다. 6개월 이상을 갈팡질팡하며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은 상당히 안정화되었는데 현재 우리 집의 원칙은 이렇다.


1. 동영상은 최대한 집에서만 시청한다.

2. 동영상 시청 시간은 하루 한 시간 내외로 정한다.

3. 동영상은 TV로만 시청한다.


불가피한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로 잰 듯이 적용하는 것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아이를 믿으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다이어트를 하다가 치팅데이에 치킨을 시켜 먹는 일처럼, 평소에는 사주지 않던 솜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놀이공원에 가면 사주는 것처럼 아이도 그것을 안다.

물론 늘 원리원칙을 지키면 좋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주로 저녁식사 후 아이가 목욕을 하고 나면 약 1시간가량 영어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때론 1시간이 조금 넘어가기도 한다. 주말에는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고 싶다고 하기도 해서 아침에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그러다 보면 그날은 총 1시간 30분에서 2시간까지 보기도 한다. 한 번에 그렇게 본다는 것은 아니고 아침, 저녁의 총 시청시간을 말한다. 한번 자리에 앉아 볼 때는 가능한 1시간을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아이가 더 보고 싶어서 보채지 않을까 걱정이 될 수 있다.

물론 더 보고 싶어 한다. 때로는 더 보고 싶다고 드러눕기도 한다. 그런데 잠시 뿐이다.

정확히는 드러눕는 시늉이다. 아이도 엄마가 더 이상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수 차례 겪었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 드러눕는 시늉을 해보는 것이다.

아이의 아쉬움이 큰 날은 3분이나 5분짜리 동영상을 한 두 개 더 보여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점을 감안해서 동영상을 골라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20분짜리 한 개, 30분짜리 한 개를 보여주고 이제 끝내겠다고 하면 아이는 하나 더 보고 싶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 5분짜리 동영상을 하나만 더 보고 끝내자고 하면 대부분은 아쉬워하면서도 수긍한다.


동영상을 시청할 때는 가능한 아이 옆에 있는 것이 좋다. 이것이 원칙은 아니다.

그렇지만 경험 상 아이 옆에서 나도 함께 웃어주면 아이가 더욱 좋아한다. 동영상 시청 후에 아이가 동영상에서 본 내용을 이야기하거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데 옆에서 같이 시청하면 나도 즉각적으로 알아채고 답해주거나 노래를 불러줄 수 있다.

동영상 시청 내내 아이 옆에 있기 힘들다면 가능한 동영상이 끝나가는 10분 전쯤부터는 옆에 앉아 함께 보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제 동영상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면 더욱 좋다. 시계를 볼 줄 알거나 숫자를 읽을 줄 아는 아이라면, "긴 시곗바늘이 숫자 5에 오면 끌 거야"라는 식으로. 그리고 이러한 엄마의 알람은 10분, 5분 단위로 여러 번 해주면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동영상은 가능한 집에서 TV로만 시청한다.

핸드폰이나 태블릿 PC는 사용하지 않는다. 동영상 노출 초반에 핸드폰을 쥐어주고 보니 아이가 계속적으로 핸드폰의 영상을 클릭하며 영상을 바꾸고 바꾸는 식으로 조작을 하려고 했는데 그 점이 참 탐탁지 않았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핸드폰이나 태블릿이 TV보다 조작방식에 있어 좀 더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TV는 엄마가 리모컨을 쥐고 있기도 하고 눌러주는 대로 볼 수밖에 없는 점도 통제의 권한 측면에서 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마음껏 TV를 보여주니 이제는 친정에 가도 TV를 보지 않는다. 아이도 어느 순간부터는 친정에 가도 TV를 보겠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집에서 갖는 TV타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매일 동영상을 보여 주다 보니 미디어 중독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나름의 세 가지 원칙을 정하고 가능한 그 틀에서 움직이다 보니, 오히려 아이가 정해진 시간 외에 TV를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이제 우리 아이는 외식할 때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원칙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동영상을 노출할 때는 아이가 외식할 때가 핸드폰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외식을 하면 자연스럽게 "틀어줘" 라며 동영상을 보고 싶어 했다.

아이가 외식할 때마다 핸드폰을 달라는 게 너무 싫어서 가능한 외식을 자제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는 식당에 가면 밥 먹는 것에 집중한다. 아이가 밥을 다 먹고 나서 지루해할 때면 나와 남편 중 먼저 밥을 먹은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 놀기도 하고 옆에서 놀아주기도 하며 지루함을 달래준다. 그렇지만 이제는 핸드폰은 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도 핸드폰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TV 보는 것을 마냥 좋아하진 않는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우리 아이는 그렇다.

우리도 TV를 계속 보면 지루한 것처럼 아이도 똑같다.

아이에게는 책을 읽거나, 블록 놀이를 하거나, 엄마 아빠와 놀이터에서 노는 것처럼 TV시청도 놀이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한다. 무분별하게 원칙 없이 아이가 동영상 시청을 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적절한 노출을 통해 아이의 즐거움을 채우고 영어도 배우는 것, 이것이 나의 엄마표 영어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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