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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 Aug 14. 2023

아이의 한국말은 안녕한 걸까?

엄마표영어는 양날의 검이다

한국어 책도 좀 읽을래?


며칠 전 책을 읽어달라며 영어책을 집어오는 아이에게 내가 한 말이다.

아이는 단번에 "아니, 이 책 읽을 거야" 라며, Tony Ross 작가의 'A Little Princess Story' 시리즈 몇 권을 가져왔다. 우리 집에 들인 지 얼마 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책이라 그런지 요즘 아이는 이 시리즈 책만 읽으려고 한다. 요 며칠 내내 이러고 있으니, 한국어 책도 읽어 보자며 아이를 달래 보지만 소용없다.

이럴 때면,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고민이 된다.

우스꽝스러운 삽화와 반전유머가 묘미인 리틀프린세스

영어책이 좋다는 데 무슨 고민이냐 싶겠지만, 사실 아이는 이제 43개월에 한국말이 온전하지 않다. 아직은 모국어를 갈고닦아야 할 시기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국어 책을 읽어주고 싶은데 아이는 내가 새로운 영어책을 들고 오면 한동안 그 영어책에 빠져 지낸다. 몇 달 전에도 그 유명한 'ORT(Oxford Reading Tree)'를 들여왔을 때 앉은자리에서 20권이 넘는 책을 읽고 또 읽느라 진땀을 뺀 기억이 있다. 한동안 ORT 책에 빠져 잠자리독서 시간에 늘 ORT를 가져오기도 했었다.


물론 그럴 때가 있다. 나도 머리로는 알지만, 당장 눈앞에 이런 일이 펼쳐지면 고민이 되는 것이다. 아이가 영어책이라서 좋아한다기보다는 그 책 자체가 재미있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올해 어린이집에서 북클럽 이벤트로 받아온 안녕달 작가의 '겨울이불' 책도 아이가 참 재미있게 보고 또 보고 했던 책이긴 하다. 그래도 아이가 영어책만 들고 올 때면 괜히 기분이 그렇다.




엄마표영어는 양날의 검이다. 정확히는 영어조기교육이 그렇다.

내가 아이에게 영어를 공급해 줄수록 한국어를 공급해 주는 시간과 자원은 줄어드는 양면이 있다.

아이의 한국어 실력이나 영어 실력은 별개로 하고, 물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영어 동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한국어 동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한국어 동영상을 보여준다면 아이의 한국말은 지금보다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고 즐겨할 수 있는 것도 아이의 한국어가 영어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아이는 본인에게 더 편한 언어를 선택할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한국어가 될 것이다. 적어도 내가 한국에서 아이를 계속 키운다면 그럴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유아기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이런 나의 고민은 미디어 노출에 대한 고민과도 일맥상통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상당히 반하는 나의 결정은 타당성에 대한 검증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한다. 이래도 고민, 저래도 고민이다.


아이의 한국어는 안녕한 걸까?

정말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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