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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쌴메이 Mar 11. 2024

7년 차 엄마, 대학생이 되다.

"여보, 자기 문헌정보학과에 편입합격했대. 학교에서 이제 전화 갈 거야. 전화 오는 거 꼭 받아.”

“에이 거짓말.. 불합격한 것도 서러운데 그런 걸로 장난칠 거야? 아니면 신종 보이스피싱??”


저녁 8시, 원래도 장난이 다분한 남편이기에 남의 실패를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라고 핀잔을 주다가 진지한 남편의 목소리에 전화를 끊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아이들과 한참 부대끼며 노는 시간에는 핸드폰을 잘 보지 않는 나는 얼른 액정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2통,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편입지원서를 쓸 때 본인 번호 외에 비상연락처란에 남편의 번호를 적었던 기억이 얼핏 떠올랐다. 학교에서 추가 합격자 안내로 나와 통화가 되지 않자 남편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긴장한 마음으로 다시 전화가 오길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설마 진짜 합격한 건가? 내가 전화를 안 받아 다음 사람에게 전화가 갔으며 어떡하지?’

 이런저런 걱정에 생각이 복잡해지려는 찰나 전화가 걸려 왔다. 관계자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21년도 문헌정보학과 편입시험에 추가 3차로 합격했으며, 8시 반에 추가등록 마감이라 지금 등록을 할 건지 결정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만일 내가 등록을 포기하면 다음 대기합격자에게 연락을 해야 하니 지금 바로 등록여부를 알려주라고 말했다. 현재 7시 40분 남짓, 추가 등록 마감까지 1시간을 채 못 남긴 시간이었다.


세상에나 말할 것도 없지.. 나는 당장 등록하겠다고 답을 하고, 문자로 안내받은 학교계좌로 바로 등록금을 보냈다. 날짜도 잊지 못하는 2021년 2월 16일. 나 정말 학교를 가는 건가? 스쳐 지나가듯 다시 학교에 가게 된다면 도서관 사서를 꿈꾸며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학과에 가게 된 것이다.


2014년,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까지 7년, 어렵게 아이를 가졌던 터라 아이를 육아하는데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다. 그럼에도 아이를 재우는 시간, 아기띠를 메고 온 집 안을 돌아다니며 한 손엔 책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를 조용히 침대에 누이고 숨죽이며 방문을 닫는 순간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 아이의 낮잠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나만의 독서시간이었다. 당시 한참 많이 듣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추천해 주는 책들을 여기저기 도서관에서 공수해 왔다. 책 대여 담당은 퇴근하는 남편, 삼사일이 멀다 하고 대출해야 할 도서 목록을 남편에게 보내면, 남편은 군소리 없이 책을 빌려다 주었다. 육아 우울증이 오지 않을까 염려했던 남편은 책으로 그 시간을 즐기며 행복해하는 아내가 좋았다고 나중에 말해 주었다.


나는 아이가 자고 나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허기진 사람처럼 허겁지겁 읽었다. 아이가 잠들면 어디든 바로 책을 집어 들고 순식간에 그 세상으로 옮겨가 작가와 함께 여행하고, 공감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를 종종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아이가 돌이 지나 외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자 도서관에 습관처럼 가서 책을 읽으며 놀았다. 요즘도 책을 읽을 뿐 아니라 책으로 놀이를 만들어 노는 아이들을 볼 때면 책과 함께 책이라는 물성 자체를 사랑하는 모습이 좋아 마음이 뿌듯해진다.


그렇게 큰 아이가 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째가 생겼고, 자연스레 육아휴직 기간은 늘어났다. 둘째가 두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입소가 가능한 나이가 되자 다시 복직을 생각했을 때, 회사에서 내 업무가 다른 업무와 통합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복직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거지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많은 상황을 고려하니 복직하는 것이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직 어린아이 둘이 어린이집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가까이 하루 종일 보내게 되는 것도, 자주 아픈 둘째가 병원에 다닐 때마다 보이는 눈치며, 업무 특성상 저녁 늦게까지 해야 할 일들에 가정과 일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 보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나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휴직이라는 안전띠를 매고 있다가 풀어내는 순간은 생각보다 후련하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혼자 있게 되는 조용한 시간에 끊임없이 되물었다. 그때, 내 주변에 여기저기 쌓여있던 책탑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내 주위에 있던 책, 삶의 고민이 생길 때마다 책으로 향했던 많은 시간들, 새로운 도전 앞에서 앞서 간 선배들의 조언을 넉넉히 들을 수 있었던 책, 그때 결심했다.


‘나는 이제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겠어.’


그때 전문성을 가진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자연히 생각하게 되었고, 사서가 되고 싶다는 막연히 가지고 있던 생각이 수면 위로 명확히 올라왔다. 마침 집 근처 국립대학교에서 몇 년 동안 뽑지 않았던 문헌정보학과에서 편입생을 3명 뽑는다고 공고가 올라왔다. 많아야 1명, 편입생은 거의 뽑지 않는 과라 기대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식이 올라오자마자 올해가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 거란 생각에 바로 토익공부를 시작했다. 아이 둘을 바쁘게 등원시키고, 아침 운동을 하는 시간에 토익 LC 음원을 귀에 꽂고 들으며 운동장을 뛰었다. 집에 돌아와선 아이들이 하원하기 전까지 RC를 풀고, 아이들이 잠에 들면 단어를 외웠다. 그렇게 3개월 동안 토익만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하는 공부는 힘들었지만 무언가를 배운다는 기분은 나를 고무시켰다. 겨우 충족한 토익성적표를 제출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입지원을 마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낸 사람은 결과가 두렵지 않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후회할 것이 없으니까. 결과 발표 날, 대기 11번을 확인하고 합격하긴 어렵다고 판단, 추가 합격공고를 확인하지 않았었다. 그저 다음 학기에 다시 시도하자는 마음으로 토익 공부를 이어 하고 있었는데, 대학교 등록 마지막날 저녁 7시 반 학교에서 합격 전화를 받은 것이다.


등록 마감을 한 시간 앞두고 21년도 문헌정보학과 마지막 편입합격생으로 그렇게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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