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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쌴메이 Mar 18. 2024

편입 준비의 시작은 토익이지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겠어!!



이렇게 결심이 서고 난 뒤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내의 문헌정보학과 편입요강을 살펴보았다. 국립대와 사립대 2곳에서 편입생을 모집했고, 특히 지난 2년간 편입생을 뽑지 않았던 국립대에서 3명이나 뽑는다는 소식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국립대가 학비도 쌀뿐더러,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기에 국립대를 일지망으로 정하고 편입을 준비했다. (나중에 편입하고 보니 국립대는 국가장학금으로 전혀 학비가 들지 않았다. 여러분, 국립대 편입하세요. 국장 만세!!)


일반적으로 편입은 학사편입과 일반편입이 있는데, 4년제를 졸업한 사람이 다시 3학년으로 편입하는 것을 학사편입, 다른 대학교에서 2학년까지 수학하고 타 대학으로 편입하는 경우를 일반편입이라고 한다. 당시에 내가 가려고 한 학과는 학사편입을 뽑지 않아서 일반편입으로 지원했다.(대학 2년 수학 후부터는 일반편입가능, 졸업 후에는 일반편입, 학사편입 모두 지원가능)



필요서류를 훑어보니,


입학원서

학력증명서(2학년 이상 수료(예정) 증명서 혹은 학력인정증명서)

전적대학 성적증명서

개인정보 수집, 이용 동의서

공인영어시험 성적표 사본


입학원서와 개인정보 수집, 이용동의서는 편입지원 어플에서 양식을 다운받아서 제출하면 되는 것이고, 학력증명서와 전적대학 성적증명서는 전대학 홈피 혹은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신청하면 된다. 이제 내가 준비해야 할 유일한 서류는 공인영어시험 성적표.


편입지원 날까지 남은 시간은 세 달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선 바로 EBS토익 환급반을 신청했다. 아직 아이들을 집에서 케어해야 하는 날이 많았고(당시 코로나가 기승일 때라 가정 보육인 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혼자 독학하기에는 영어시험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없었지만,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일에 몇십만 원을 투자해 달라고 하기엔 가족에게 미안했다. 최대한 돈이 들지 않는 강의를 찾다 보니 토익 환급반이라는 좋은 제도를 알게 되었다. (현재는 아쉽게도 환급반이 사라졌음 ㅠㅠ) 기간에 맞춰 강의를 듣고, 수업미션을 잘 수행하면 수업비를 다시 돌려주는 제도였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강의를 빠르게 들어야 했던 나에게 이렇게 주어지는 강제성은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온라인에서 보는 선생님들의 친절한 격려와 수시로 치고 들어오는 아재개그는 지루할 법한 수업시간의 소소한 즐거움. 그분들 덕분에 생애 첫 토익을 잘 시작할 수 있었다. 내 편입의 이등공신(일등공신은 우리 남편, 브런치북 1화를 참고하세요.) 토익 선생님들, 늦었지만 절 받으소서ㅋㅋㅋㅋ


빠르게 수업을 신청하고 매일 토익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문학을 전공한 나는 20대에 HSK를 따느라 토익을 제대로 봐 본 적이 없었다. 15년이 넘게 멈추었던 공부를 다시 하는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별 수 있나 부딪히며 알아가야지. 점수는 700만 넘자는 마음으로 첫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2시간 동안 강의를 빠르게 들었다. 2시간은 많으면 4강, 적으면 3강 정도를 들을 수 있는 시간, 강의를 다 들은 후에는 아이들을 깨우고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들을 준비시켜 등원할 때 나도 집 앞 학교 운동장으로 같이 등원했다.(편입 준비하던 그 대학 맞습니다.!!) 그때는 그저 하루 종일 앉아 있으려니 답답하고 처지는 것 같아 아침에 한 시간이라도 운동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쌀쌀한 공기를 맞으며 잠들어 있던 몸을 깨우고, 몸의 근육을 단단히 다지는 시간. 걷는 루틴은 이후에도 계속 유지하여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운동장에 도착하면 신발끈을 질끈 묶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귀에 이어폰을 꽂아 다운 받은 LC음원을 들으면서 한 시간 남짓 운동장을 음원을 중얼중얼 따라 말하며 걸었다. LC를 따라 들으며 생소한 단어들과 문장들은 기억해 두었다가 집에 가서 LC 스크립트를 읽으며 다시 확인했다. 그 뒤로는 아이들이 올 때까지 RC를 풀고 또 풀고..


이렇게 60여 일을 공부하고 이제 시험을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날짜를 계산해 보니 내가 치를 수 있는 시험은 단 두 번. 두 번 중 더 높이 나온 점수로 편입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매회 긴장이 말도 못 했다. 그럴 때마다 결과는 나의 영역이 아니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매일의 루틴을 지켜 공부했다. 시험 결과는 내 목표였던 700점을 넘지 못한 아쉬운 점수였으나, 그래도 지원은 가능한 점수니 그것에 감사하며 편입서류를 제출했다. 서류접수가 끝난 후에 경쟁률을 보니 3명 선발에 16명 지원. 대략 5:1의 경쟁률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류를 제출하고 1주일 뒤 1차 서류 통과 통보와 함께 면접일을 전달받고, 한 주 동안 면접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보냈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대면이 어려울 때라 줌 Zoom 면접을 봤는데, 개인적으로 주어진 면접 시간에 맞춰 줌에 접속하면 조교가 간단한 안내와 함께 면접 방으로 들여보내줬다. 처음 교수님들을 대면한 시간, 그곳엔 나중에 내가 배우게 될 교수님 세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교수님들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문헌정보학과 지원동기, 문헌정보학의 어떤 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지를 질문해주셨고, 지금껏 생각했던 바를  편안하게 대답했다. 사실 토익점수도 높지 않고, 나이도 많은 만학도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덜 떨고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을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었다. 교수님들과 10여 분간의 줌 면접을 마치고 줌 방을 나오는 순간의 안도감과 뿌듯함은 그 뒤로 시작될 대학생활의 예고편 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시간들의 한 꼭지.


20살에 시작한 내 첫 대학생활은 졸업자체가 목표였던 무색무취의 시간들이었지만,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 주어진 2회 차 대학생활은 이전과는 처음 시작부터가 달랐다. 살다 보니 개강일이 빨리 되기를 바라는 날도 오더라.



#편입지원

#토목달

#편입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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