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모임을 갖기라도 하면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눈을 깜박거리면서 듣기 바쁘고, 순서대로 한 마디씩 나눠야 하는 모임이라면'무슨 말을 하지.....'하고 생각하느라 머릿속이복잡하기까지 하다.
이전에는 모임에서 왠지 말을 먼저 해야 할 거 같은 부담감에 항상 먼저 말을 내뱉기 일쑤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훨씬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똑똑한 한국 사람들로 가득한 이 땅에서 난 세컨드 랭귀지를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과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체념하는 마음이 가득한 상태였다.
비록 지방이긴 했지만 나름 연합고사 합격해서 간 우리 여고였고 학교도 엄청 커서 한 학년에 15 반씩 있던 학교에서 전교 1등인 우리 반 친구가 유일하게 서울대를 갔는데 여기 와보니 발에 치이는 게 서울대 졸업생들이라 놀랐다.
심지어 주위에 하버드생 자녀를 둔 분들도 쉽게 만날 수 있고, 아이비리그 졸업하신 분들까지 학력이 출중하신 분들이 많으시다.
게다가 요즘 유학 오는 젊은 세대들은 대개 영어도 잘한다.
아무튼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들이 여기에선 내놓고 쓰일 일도 없었고 쓰일 수도 없다.
그래도 늦은 나이에 대학원 공부하며 내 남편, 내 딸에게 적용하며 살려 애썼으니 공부했던 게 경제적 활동으로 계속 이어지진 못해도 나름 손해는 아니라 스스로 위안 삼으며 지내고 있었다.
사석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전공인 상담을 살려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지만 내가 한국에서 뭘 공부했는지 어떤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조차 크게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의라니...
추천한 사람이 아무래도 남편이 범인인듯한데... 강의를 요청한 분은 한분만 얘기한건 아니라고 몇몇 분께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젊은 부부를 대상으로 자녀교육에 대한 세미나를 한다고 했다.첫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이니 MBTI를 적목 해서 자녀교육이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강의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몇 번을 자신이 없어서 고사했는데 반복해서 부탁하시는걸 자꾸 거절하는 것도 민망해서
나를 강사로 세우시는 무모한 도전에 응하겠노라 답했다.
그러고도 기회만 되면 물릴 수 있지나 않을까 틈을 엿봤는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삶의 한 영역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체념했던 것이 이번 강의를 통해 새로운 생기로 돌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너무 좋지만 그래도 나의 또 다른 영역을 계속 개발해 나간다면 좀 더 채워지고 단단해지는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는 지금 미국에서 영어 못하는 아줌마로 간병인일을 하고 있지만 이런 강의도 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못해이긴 했지만 두려움과 설렘으로 강의 요청에 응한 게 맞는 거 같다.
할머니께 오고 가는 차 안에서도,
두 아이를 라이드 하는 하는 일을 하면서도
계속 여러 강의들을 찾아서 듣고 저녁이면 여기저기 자료들을 검색하고 정리하며
슬라이드도 만들고 강의안을 채워갔다.
그 시간이 재밌고 좋았다.
나중에는 혹여 파일럿 행사이니 별 호응이 없어서 행사가 취소되어 강의를 못하게 되더라도 나에겐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좋았다. 조금 분주하긴 했지만 그 가운데 느껴지는 긴장감도 오히려 생활의 활력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뒤늦게 상담심리를 공부했던 건 오로지 나의 문제점을 바로 알아서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남편도 딸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해서 이 공부가 나를 지금까지 좀 더 건강하게 살게 해 줬고 지탱해 줬다는 걸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고, 공부하는 동안에 내 가족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꼭 강의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생활 속에서영향을 끼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즐기며 열심히 준비했다.
나중에 강의안을 준비하고 난 후 시간에 맞추어 끝내려는 준비 겸 몇 번 읽어보는데 내가 그동안 참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목도 많이 약해졌고강의톤도 심지어 한국말 발음도 어딘가 어색함 투성이었다.
분명 한국에서도 했던 건데 그땐 어찌했나 싶게 부자연스러웠다.
원고를 읽을수록 많은 사람 앞에서 입을 벌리고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되었다.
강의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불킥 하고 싶은 순간으로 남을 거 같다.
예의를 갖추어 진솔한 강의가 좋았다는 몇몇 분들의 피드백도 있었지만 난 너무 창피했다.
역시나 오랜만에 하는 강의라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긴장감을 가지고 하다 보니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다.
컴퓨터도 오랜만에 다루다 보니 영상이나 슬라이드도집에서 연습하던 때와 다르게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나를 더 당황스럽게 했다.
시간도 딜레이 되는 바람에 마무리강의도 준비한것의 반 정도밖에 못하고 마무리를 해야 했다.
강의를 하고 난 후 한 주 동안은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고 제발 아무도 날 몰라보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길 지경이었다.
지금은 괜찮다.
그 민망함이 가시고 나니 준비하며 가졌던 좋은 시간에 대한 감사와 유익만이 내게 오롯이 남아 있음을 안다.
생각으로는 준비한 강의안을 다 외워서 어떠한 돌발 상황이 생겨도 여유롭게 대처하며 멋지게 강의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렇게 해 내진 못했다. 10년 만의 강의였고 이제 50이 넘어 찐 중년이 되어 암기력이 그다지 최상의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도 좋은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한 나 자신을 칭찬해 주며 나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