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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미곰미 Dec 08. 2023

겨울아이의 시렸던 생일들

겨울에 태어난 사랑스런 당신은...


얼마 전 나의 쉰두 번째 생일이었다.

남편의 축하인사와 익살스러운  생일축하노래로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소리도 없는 카톡이  요란스러웠다.   내 폰은 항상 무음모드이다.

교회 소그룹 멤버들, 함께 봉사하는 유치부선생님들 그리고 가깝게 지내는 어르신들의 축하메시지. 지금은 그만두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전 직원들까지도 축하한다며 축복의 메시지들을 보내주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딸과 남편의 서프라이즈가 준비되어 있었다.

식탁 위에 케이크와 꽃다발이 놓여있었고 남편이 두둑한 봉투를 선물로 주었다.

딸은 멋진 레스토랑에 예약해 두었다며 어서 가자고 재촉을 하였다.

그렇게 따뜻한 생일을 보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딸의 친구가 깜작 선물로 준 디저트

사실 결혼을 하기 전 친정에서는 이런 축하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는 며칠 차이 나지 않는 것 때문에 항상 언니 생일과 같이하는 게 싫다고 서러워 울었지만 우리 집엔 그마저도 없었다.

오직 아들들의 생일만 챙겼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

집안의 독자이신 아버지.

그래서 대를 잇는 아들이 그리 소중하셨던 할머니.

위로 첫째 오빠가 태어나고 그 사이에 딸 넷, 다행히도 마지막에 태어난 남동생 덕에 그나마 엄마가 숨 좀 쉬고 어깨를 피지 않았을까 싶다.


스무 살이 되던 생일날 아침이었다.

여전히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그 아침에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그 안에 비치는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얘기했다.

'오늘  생일인데... ... 축하해... ...'

그리곤 엄마한테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하루를 시작했다.

이제 막 겨울로 들어선  쓸쓸하고 시린 아침이 마치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쓸쓸하고 시린 건 날씨뿐만이 아니었던 거 같다.


그나마 친정 엄마가 기억하고 계신건  음력생일이었다.한 번도 챙겨준 적은 없지만 생일 날짜는 기억하고계셨다  

 어느 땐가에 친구들이 축하해 준 케이크를 들고 집에 갔을 때 엄마는 '오늘이 몇일인데... ...니 생일 벌써 지났는데... ...'라고 하셨고 난 친구들하고는 음력은 헷갈려서 양력으로 하는 거라고 얼버무리듯 얘기했다. 

그 후에도 음력이든 양력이든 친정에서 생일 축하를 받아 본 기억은 없다.



몇 년 전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미국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 터지기 바로 직전이었다.  두 분만 오시는 건 여의치 않아서 남편이 일 때문에 한국에 갔을 때  모시고 왔다. 그리고 미국에서 허용해 주는 3개월의 여행기간 동안 좋은 시간을 가졌다.


그때  미국 오신 지 아마 이틀이 지났을 때쯤이었던 거 같다.

아버지께서 며칠 후에 혜지생일이라고 하시며 갈 때 선물이라도 사가자고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혜지는 남동생의 여자친구였다. 그 얘길 듣는데 순간 속에서 뭔가 훅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게 딱 이맘때쯤이라 그 며칠전이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 만에 만난 딸 생일엔 선물은커녕 기억조차 못하시더니 아직은 남인 동생의 여자친구 생일을 기억하고 계실 뿐 아니라 선물까지 챙기시는 모습에 서운함이 똘똘 뭉쳐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아버지 말에 표정이 굳어진 날 본 건지 섭섭함에 상처받을 날 걱정했던 건지 남편은 가실 때 따님들 선물도 작은 거라도 하나씩 사면 어떻겠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생일이면 이렇게 주변에서 축하해 주고 딸도 남편도 잘 챙겨주지만 어릴 적 결핍으로 인한  한구석의 시린 마음이 표 나지 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래서  올해는 용기를 내었다


몇 주 전이 음력생일이었다. 나와 큰언니는 음력으로 생일이 하루차이이다.  아직 음력생일을 챙기는 큰언니에겐 미리 날짜를 계산해 달력에 표시해 두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나마 부모님이 기억하고 계시는 생일이니 내 음력생일에는 아버지께 카톡을 보냈다.

음력으로 어제가 큰언니생일이고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말씀드리며 감사의 마음도 함께 전했다.

낳아주시고 고생하시며 길러주시고  공부시켜 주셔서 감사하다고 ... ...


아버지도 답을 주셨다.

너희들 생일인데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마도 아버지가 하실 수있는 최선의 표현이었을게다. 그걸 알기에 그답을 읽으면서  한편으론   얘기하길 잘했다싶고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가슴 한켠이 허했다.


남편과  나는 딸의 생일이면 딸에게 얘기한다.

내가 너의 엄마라서 행복하다고

그리고 네가 내 딸이라 너무 좋다고

우리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어쩌면 아버지께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축하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아직은 용기가 없어서 차마  여쭈어보진 못했지만

사실은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기쁘셨냐고, 딸이어도 좋았냐고 묻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기대하는 답을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겨울아이의 시렸던 생일의 기억들은 이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따뜻함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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