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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채현 Nov 15. 2023

홍의 소녀

2023 아르코문예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홍의 소녀 1화

둥둥! 둥둥! 둥둥!

북이 울렸다. 온 마을을 깨운 북소리는 세간마을의 끝 집 은봉이네까지 들렸다. 

“어매요, 빨리, 빨리 오이소.”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정암진으로 떠난 지 이틀 만이었다.

“우리 의병이 왜군을 섬멸했다는 소식이오.”

깃발을 앞세우고 의병들이 줄지어 마을로 들어왔다. 옷은 흙투성이에다가 몸은 지쳤건만 의병들의 표정은 밝았다.

“장군님 만세! 의병 만세!”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곡주를 들이켠 은봉 아비가 입을 열었다. 

“왜놈들이 마른 길에 푯말을 꽂아 둔 거라. 장군님이 그 푯말을 늪으로 옮기라 했거든. 우리는 언덕 위에서 숨어서 지켜봤지. 왜놈들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장군님의 신호가 떨어진 거라. 와아! 달려들어 왜놈들을 전멸시켰다, 아이가. 허허허.”

“아부지, 참말로 신납니더.”

은봉이가 부추기자 아비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왜놈들은 우리 장군님 붉은 옷깃만 봐도 오줌을 지릴 거라. 어찌나 날렵한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니까. 그놈들 혼이 빠지지. 내 같은 무지렁이도 장군님 아래에서 한몫을 단단히 할 수 있더라.”

아비의 무용담에 밤 깊은 줄 몰랐다. 

 잠자리에 누워 은봉 어미가 한숨을 쉬었다.

“이 사람, 구들 꺼지겠네.”

“은봉이 말입니더. 가시나가 얌전하게 살림이나 배울 것이지, 동네 머스마들 이끌고 돌팔매 싸움이나 하고 걱정입니더. 오늘 낮에도 응도의 이마를 깨 놓았습니더. 은봉이 불러서 한마디 하이소.”

“그랬나? 우리 은봉이 이길 알라가 있나? 여식아라도 우리 은봉이는 장군감이제. 허허허.”

“아이구, 말을 말아야지.”

은봉 아비는 싱글거리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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