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양치하기.
어른이 들어오시면 현관으로 나와 인사하기.
용돈 보낸 후에 보냈다고 전화드리기 등등..
잘 지키면 너무나 좋은 생활 습관들입니다.
몸에 배어 있다면 가정교육 잘 받았다고 모두가 흐뭇해할 행동입니다.
하지 않았다고 몇 시간씩 비난받고 손가락질당할 정도는 결코 아니고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비난받았고, 제가 아이에게 그랬습니다.
"어제 또 양치 안 하고 잤구나!"
아침부터 첫째에게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를 깨우는데 잠에 취한 아이가 우물거리는 입에서 묵은 냄새가 빠져나옵니다. 치카를 안 했다는 뜻이죠.
팔을 잡아끌고 욕실로 밀어 넣으면서 목소리가 격해집니다.
"그렇게 만날 치카 안 하니까 충치가 생기지!
지난달에도 치과 가느라 왔다 갔다 시간 많이 쓰고, 치료비도 몇십만 원 또 쓰고!"
말이 입에서 나가자마자 후회가 됩니다. 돈 얘기는 하지 말 걸.
비몽사몽에 눈이 있는 대로 처져서 칫솔질을 하는 아이가 안쓰러워지지만, 자기 전 양치는 양보할 수 없다고 다시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이제 습관으로 자리 잡을 만도 한데, 10년 넘게 치카치카로 날을 세우는 게 속상합니다.
어릴 때부터 제 말을 듣지 않았던 여러 상황이 줄줄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아침부터 화딱지가 나서 학교 가는 아이에게 기어이 "그러게, 엄마 말을 잘 들었으면 오죽 좋아!"를 외쳤습니다.
친정에서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 충치 때문에 속상하다는 말을 또 꺼냈습니다.
내 아이인데 제가 나서서 동네방네 소문 다 냅니다.
양치질만 열심히 하면 충치가 안 생기지 않겠냐는 말에, 오히려 동생이 놀라며 말합니다.
"교정한 애한테 워터픽 안 사줬어?"
아... 치과 선생님의 유튜브 영상을 보니 그동안 제가 아이에게 버럭버럭했던 게 너무 미안해집니다.
'양치질만으로는 충치를 예방하는 데에 너무나 부족하다,
치아 사이사이에 낀 음식물 찌꺼기는 양치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이에게 양치를 맡기고 엄마가 봐주지 않으면 안 한 거나 마찬가지다..'
제가 부족한 엄마였으면서 아이에게 10년 동안이나 버럭 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미안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난 목소리를 듣고 학교에 간 아이가 어떻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겠어요?
치과 선생님의 영상을 보고 '엄마가 미안해' 라며 눈물이 납니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저와 아이들이 모두 현관으로 달려 나가 "아부지 다녀오셨습니까!" 하고 안아주어야 해요.
반가운 마음에 자연스럽게 하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띠고 나가기도 합니다.
딱 한 번,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아무도 나가지 않고 셋 다 자기 할 일만 한 적이 있었어요.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진 남편이 벼락같은 소리를 쳤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왔는데, 옆집 개가 왔다간 것도 아니고 이기이 뭐꼬!
니는 집에서 애들 가정교육도 제대로 안 시키나!"
시시콜콜한 것들도 차곡차곡 기억에 남는 저는 '아.. 또 하나 더 쌓이는구나' 하고 속이 상합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나와보지 않은 탓에 엄마가 혼난다면서,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마음이 넓어서 모두 다 그러려니 하고 잊어버리면 참 좋을 텐데,
선택적으로 기억력이 좋은 반면 속이 좁은 저는
상처 입은 기억을 또 하나 새겼습니다.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그냥 새겨집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어머니께서 임플란트 시술을 하신 비용을 가족계에서 보내드린 적이 있습니다.
시댁에서 행사가 있을 때 쓰자고 시부모님과 형님댁, 저희 집이 매월 적금으로 붓는 계입니다.
어머님께 치료 비용을 드리자고 모두가 동의를 했고, 비용이 나오면 계좌를 관리하는 제가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치료비가 이만큼 나왔다는 어머님의 문자에 저는 별생각 없이 가족계 통장에서 어머님께 이체를 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 후쯤, 시어머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돈을 보냈으모, 보냈다꼬 전화를 해야 할 거 아이가!
니는 내가 그어지로 보이나! 으른이 으른처럼 안 보이나!"
아주 작은 사항에서도 '그건 안 되지'라는 경직된 생각이 모이면 사는 내내 용납할 수 없는 일들만 쌓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암요, 그럴 수 있지요"를,
나 자신에게는 "이게 어때서"를 말해 주어요.
규칙에 규칙을 더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넓은 이해심과 아량을 보여주는 편이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더 세워줄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좋겠구나."라고 조용히 다독이는 말이
벼락같은 큰 소리보다 더 큰 힘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저부터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 옛날 분들이 그러실 수도 있지, 내가 챙겨야지' 하며
서운한 것들만 콕콕 집어 기억하는 머리를 흔들어 털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