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내가 초라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모든 측면에서 우수하지 않다면서 굳이 단점을 찾아서 '나는 부족해'라고 스스로 주눅 들었습니다.
'이 부분이 부족하니까 나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자신감을 갖지 못했어요.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었습니다.
나는 원래 완벽해질 수 있는데, 딱 이 부분만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이었어요.
그러고서는 내가 겸손하다고 착각했어요.
남 탓으로 흘러가기도 했습니다.
나는 원래 완벽할 수 있었는데, 주어진 환경이 딱 이 부분만 부족하게 만들어서 속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서는 적극적으로 바꾸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간다면서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착각했어요.
사실 마음 아주아주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어요.
완벽해지고 싶은 거라는 걸.
내가 바꿀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이걸 극복하기가 너무나 힘이 들고 어려우니까 피하고 있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에 우울이 더욱 깊어졌어요. 난 진짜 못난 사람이라고.
작년부터 이 못된 생각의 사슬을 끊어낼 마법의 말들을 열심히 찾고 있어요.
제일 효과가 좋았던 게 '이게 어때서'였습니다.
너 얼굴 진짜 커
-> 이게 어때서. 연예인 될 것도 아닌데.
너 운동 못해
-> 이게 어때서. 사람이 다 잘할 수가 있나.
너 너무 느려
-> 이게 어때서. 예전보다 훨씬 나아지고 있어.
너는 너무 나약해
-> 이게 어때서. 사람마다 자기 그릇이 있다잖아. 그릇이 좀 작을 수도 있지.
너네 집 가난해
-> 이게 어때서. 우리 엄마아빠는 더 가난한 때부터 이만큼이나 이루신 거야.
너희 남편은 집안일도 함께 하지 않고, 돈도 많이 벌지 못해
-> 이게 어때서. 내가 이만큼 큰 사고를 쳐놓았는데도 우리 가족이 해체되지 않고 먹고살고 있는 정도면 아주 훌륭하지!
너희 시어머니 너무 강성이야
-> 이게 어때서. 본인이 워낙 잘하시니까 기준이 높으신 거고, 젊으셨을 때에 비해서 이 정도면 나를 많이 봐주시는 거라던데?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 중 유명한 구절이 있지요.
'신이시여,
저에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옵시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가 '이게 어때서'이지 않을까 합니다.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이를 바꾸려고 애썼던 에너지를 바꿀 수 있는 것에 쏟을 수 있어요.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는 것도 '이게 어때서'입니다.
쓸 수 있는 힘이 유한하기 때문에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는 거예요.
사람마다 그 힘의 크기가 다름을 인정하고, 내 힘은 요만큼이니까 바꿀 수 있는 것에 몽땅 다 쓰겠다는 거예요.
남들은 어떻다 하는 비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요.
남들에 비해서 얼굴이 좀 클 수도 있지.
남들에 비해서 달리기가 좀 느릴 수도 있지.
남들보다 좀 느릴 수도 있지.
남들보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겁이 많을 수도 있지.
남들보다 아껴야 하고 돈 쓸 때 고민을 좀 더 해야 할 수도 있지.
남들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 할 수도 있지.
다른 집 시어머님들보다 어머님이 강성일 수도 있지.
그게 다 어때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한 후에 좀 더 낫게 만들 수도 있어요.
100m 단거리 달리기는 느리지만, 꾸준히 연습해서 5km 장거리는 자신 있게 뛸 수 있게 되었어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니까 지금에 더욱 감사할 수도 있고요.
'예민하고 최약체에 가난하기까지 한데, 이 치열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참 쓸모가 많지요?
우울, 불안, 비교에 시달릴 때 작은 목소리로 계속 말해 보세요.
"이게 어때서. 히힛!"
마법이 일어나요. 다 괜찮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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