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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서 가장 위험할 때

by 위드웬디

항우울제의 부작용 중 하나가 '살 충동, 자해 시도'가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단순히 약 복용 전후 나타난 영향으로만 볼 수는 없어요.


오히려 약의 효과가 잘 나타나서 우울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때, 바뀌지 않은 현실과 아직도 환자인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순간적인 충동이 더 커지는 것이다 싶습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울이가 왔다가 갔다가, 진폭을 달리하면서 찾아왔던 제가 느끼는 바에 의하면 그래요.



나아지겠다는 의지도 있고 우울증 약을 먹으며 증상도 나아지고 있지만, 우울이가 찾아왔던 원인이 되는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이렇게 애를 써도 치료가 안 되나 보다'라는 부정적인 늪에 한없이 빠져들기 쉽거든요.


아예 어둡기만 할 때보다, 약간의 빛이 스며드는 것 같다가 그게 끝이거나 다시 시커먼 어둠이 찾아왔을 때 더욱 어둡다고 느끼는 것처럼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도 나오지요.

성탄절에 풀려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가 그렇지 않았을 때 수용소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고요.

용기가 한꺼번에 없어지고 절망감이 덮쳤을 때 몸의 면역력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고요.




멈춰있던 자동차를 움직일 때에 조금씩 속도를 올려야 하듯이, 우울증이 오래되거나 악화되고 있을 때에는 약물 복용뿐만 아니라 희망 갖기도 조금씩 차근차근해야 합니다.


어서 나아지겠다는 성급한 마음은 증상을 악화시키기만 해요. 마치 불면증이 있을 때 '꼭 자야 해'라고 하면 더욱 잠이 들기 어려운 것처럼요.


주위에서도 도와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원래 오래 걸리고, 나아지다가도 악화되는 반복이 당연하다는 걸 인정해 주시면 좋겠어요.


우울증을 '마음에 걸리는 감기'라고 표현하신 분은 우울이가 의지로 나아지는 게 아닌, 몸의 질병처럼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면서 누구나 걸릴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마음에 걸리는 독감'이 좀 더 맞지 않을까 합니다. 그냥 감기약 먹고 나아지는 정도도 아니고, 어찌어찌 참으면 우리 스스로 면역력으로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본격적인 관심과 휴식과 치료가 필요하니까요.

가볍게 보아 넘겼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제 몇 번 먹으면 나을 거라는 섣불리 기대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동안 오죽 힘들었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파지기 시작했겠어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비교질 금지, 지금에 감사하기'는 사는 내내 평생 계속해야 해요. '이것만 나아지면 괜찮아짐' 같은 거 없어요.


지금처럼 어떻게든 나아지겠다고 이것저것 방법을 찾으면서 애쓰면 돼요. 그러다 보면 나아져요.


'완치'라는 명사보다, '예전에 비해서 점점 나아지고 있어'라는 동사로 살다 보면 그렇게 차츰차츰 나아져요.

정말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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