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돈이 어떤 돈이었는 줄 알아?

by 위드웬디

브런치에 글을 써서 세상에 꼭 알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전자책으로 써서 여기저기 뿌리고 싶은 말들이 있었어요.


부동산 투자 강사에게서 사기를 당한 사례를 알려서,

이제 투자를 배우기 시작한 청년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어요.

가진 것 많은 사기꾼들에게는 작은 생채기라도 내고 싶었어요.


어리석은 투자를 했던 제 이야기를 전자책으로 쓰다가, 이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어리석다는 비난과 투자 강사들로부터 받을 공격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글을 쓰기 전, 2년 전쯤에도 문자로 문의 몇 번 했다는 이유로 '업무 방해죄로 고소하겠다'는 협박도 받았던 걸요.

그 일을 계기로 이들이 빌런임을 확신하고 제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게 되었고요.


오히려 가장 힘든 건 제 마음이었어요.


사기꾼들의 행각을 기억해 내고, 글로 쓰기 위해 마음 아픈 일들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함께 투자 수업을 들었던 분들의 사례를 떠올리며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극강의 의지로 공부를 해서 Y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전공을 살리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었으나, 돈을 벌기 위해 큰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자기 식당을 차리겠다는 목표로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당시 수익형 부동산 투자 붐이 불 때여서, 여기저기 투자 수업을 듣다가 분양권 투자와 지식산업센터 수업을 들었고요.


열정이 넘치던 청년은 상가 분양권을 매수하게 됩니다.

분양권 상태에서 웃돈을 받아서 팔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등기를 쳐서 식당을 할 수도 있는 좋은 곳이라고 소개받고요.


분양권을 매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년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를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분양권 매도를 하거나 계약 취소를 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고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른 부동산 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지식산업센터 수업을 했던 그 강사는 딱히 별다른 답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업 시간에는 세상 사람 좋은 얼굴로 '투자에 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사무실로 문의하세요.'라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묵묵부답이었고요.


심지어 청년에게 얼마간의 여유가 더 있음을 알고, 자신이 중개하는 지식산업센터를 분양받으라고 추천했다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당 몇 백만 원 더 비싸게 거래된 물건이라면서, 계약하고 바로 팔기만 해도 좋을 거라고요.


모임에서 이야기를 듣던 저희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상가 분양권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청년에게 지산 분양권을 추천하다니요.


투자를 훌륭히 한 강사님을 존경한다면서, 청년이 지산 분양권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저희는 '지금은 상가 계약 취소에 올인할 때다. 다른 건 제발 하지 말자.'라고 극구 말렸습니다.


부모님이 계셨지만 고아나 다름없이 혼자 힘으로 공부한 청년이었습니다. 힘들게 벌어서 모았기 때문에, 적은 손해에도 피눈물 나는 돈이었습니다.


어떻게든 해결을 하고 손해를 만회해 보겠다고 여기저기 알아보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지산에 투자한 후 각자 큰 손해를 본 저희들이었지만, 이 청년만큼은 그걸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청년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던 저희와 달리, 얼마 안 되는 여윳자금마저 뜯어가려고 했던 투자 강사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면 평생 가난하다. 나처럼 자본주의를 잘 이용해야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롱하고도 '뼈 때리는 조언'이라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수법과 행각을 세상에 알리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제 분노도 가라앉을 줄 알았어요.


그러나 저도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자책 초고를 쓰면서 내내 인상을 찡그렸고, 가족들에게 괜한 화를 내기도 했고요.


아직은 그 어두운 기운을 품을 만큼의 그릇이 되지 못해서겠지요. <임검사의 사기 예방 솔루션>을 출간하신 임채원 변호사님 정도의 단단함을 갖춰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부동산 투자 강사들의 행태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기까지, '그만 내려놓자. 그래야 내가 산다.'를 수백 번 되뇌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말고 내 이야기로 그 청년과 같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생각을 쓰겠다, 합니다.



keyword
이전 19화그 일이 아니었다면 평생 만나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