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복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자각이 주는 복

by 위드웬디

둘째를 낳은 후 산후조리원 동기 언니들과 친분이 생기면서 저희 남편이 유난히 집안일을 하지 않는 편임을 실감했어요.


저희 아빠도 가부장적인 면이 있던 분이셨고, 편도 가부장적인 문화가 짙은 지역의 사람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며 5년을 살았거든요.

그러다 다른 남편 분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이야기를 들으니 속상함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어요.


당시 남편이 직장에서 야근과 출장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안일은 제가 도맡아 하고 있었고, 첫째는 친정엄마께서 평일에 아예 도맡아 키워주셨고요.


신혼 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약간의 불만을 이야기했다가,

"집에서 밥도 별로 먹지 않고 늦게까지 일하고 오는데, 내가 집안일까지 해야겠어?"라고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았지요.


제가 착해서가 아니라, 다툼을 회피하고 싶어서요.


둘째를 낳은 후 집에서 아이들을 온종일 돌보면서 집안일은 그야말로 오롯이 저의 몫이 되었어요.


집안이 너저분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남편이라,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기 전에 청소를 급하게 하다가 왈칵 서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어떤 엄마는 팔자가 좋아서 아이 낳고 가사 도우미를 두고도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독박육아는 물론이고 집이 지저분하다고 화내는 남편 비위 맞추느라 이 고생이구나.


꼬물거리는 아가를 보면 그저 좋다가도, 밤에 깨어서 울면 남편이 짜증이라도 낼까 싶어서 천근만근 몸을 일으키던 때였습니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몸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나 정도면 만큼의 복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는 우울과 자책, 분노, 절망으로 직행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만큼 노력했으니 이마아안큼의 성과는 있어야지.'

'내 아이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내 능력이면 이 정도 레벨로는 살아야지.'

'내가 이 정도 했으니 그만한 대접은 받아야지.'


아무 근거도 없이 혼자서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화내고 속상해하는 거예요.

특히 '대접받겠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만큼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거라 주위에까지 피해를 줍니다.


마흔 중반이 넘어가는 지금이야, 노력한 만큼 원하는 대가가 따라오지 않는 게 당연함을 알지요.


그걸 몰랐던 30대 초반의 초보 엄마는 '내 남편은 어쩜 이렇게 유독 배려심이 없나' 하고 서러워만 했어요.

육아와 가사 분담을 제외하고는 심하게 나쁜 부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요.


'배려하는 남편'이라는 복이 내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고,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 또한 아님을 일찍 알았다면 그토록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겠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속상해하고 서러워하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았다면 훨씬 더 현명하고 덜 아픈 30대를 보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입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내 삶을 관찰하듯이 봅니다.


양손에 들고 있는 복을 만끽하지 못했네요.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지기 힘든 무언가를 원하기만 하고요.

참으로 안타깝고 우습기까지 합니다.


다른 이들을 향했던 것에서 내 손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 누구도 갖지 못한 귀한 보석과 같은 커다란 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런 복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몰라^-^








keyword
이전 28화'내가 뭐라고'는 정신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