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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Oct 16. 2024

세 번째 삶 - 너는 아프지 않잖아

밥상 사건으로 투정처럼 요단강 근처까지 다녀온 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을 살았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제가 마음이 아픈 상태였기 때문에,

신랑은 저의 작은 시도를 그다지 큰 사건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저에게 내색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밥상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정말로 큰 잘못이어서, 본인이 미안함을 표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편견과 문화적 차이는 조금씩 맞춰나가야지, 한두 번 강하게 말한다고 해서 개선되는 게 아니니까요.




둘째를 낳고 육아 휴직 후 복직을 한 달 정도 앞두었을 때, 당시 유행했던 라섹 수술을 했어요.


병원에서는 휴일에도 당직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복직 후에는 며칠 동안 눈을 쉬어야 하는 라섹 수술을 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부랴부랴 했지요.

  

두 사람이 같이 수술을 받으면 할인을 해준다기에 신랑과 함께 라섹 수술을 했습니다.

어차피 수술 직후에는 아이들을 돌볼 수 없어서 친정 엄마께서 도와주시기로 했거든요.




라섹 수술 후에 눈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수술을 했으니 당연히 아픈 것이지만, 자연분만으로 비교적 아이 둘을 쉽게 낳은 저에게는 출산의 통증보다 라섹 수술 후 통증이 더 심했다고 할 정도로 아팠어요.


다른 사람들은 일주일 정도면 나아진다고 하던데, 저는 형광등 빛으로 인한 자극에도 눈이 아파서 실내에서도 계속 선글라스를 쓰고 생활해야 했지요.


수술 후 한 달 정도가 지나서 시댁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쓰고 밥을 준비했어요.



제가 눈부심을 참고 일을 하던 중,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들어버렸어요.


"아범아, 눈 수술하고 많이 아프제? 방에 가서 불 끄고 쉬어라."


(그 말씀에 신랑이 저도 눈이 아플 거라고 쉬어야 한다고 했나 봐요. 잘 들리지는 않았어요.)


괜찮다, 메눌 아기는 아프지 않잖아.


...

....

.....


할 말을 잃었습니다.

가뜩이나 아픈 눈에서 눈물이 얼굴을 뒤덮을 정도로 흘렀습니다.


설움이 복받쳐서 소리 내어 울고 싶은 것도, 끅끅거리면서 간신히 참았습니다.


'이 집에서 나는 그저 남들 보기에 좋은, 아이들 키우고 일만 하면 되는 노예구나.'라는 생각의 씨앗이 마음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냄새에도 예민하고, 소리에도 예민한 편이었고, 이렇게 통증에도 예민한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민함을 인식하지 못한 점이 상황을 점점 더 악화시켰습니다.


나를 똑바로 인식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나의 감정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더라면 오히려 서로 상처를 주지 않았을 텐데.


굳이 '말 잘 듣는 착한 며느리'가 아니어도 괜찮았는데.

하고 싶은 말을 적절히 하고 살았어도 되었는데.


압력 밥솥에서 중간중간 김을 빼 주듯, 그렇게 긴장을 살짝씩 풀어주었더라면 갑자기 폭발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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