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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Oct 13. 2024

거지 같은 밥상

결혼을 앞둔 분들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이 결혼을 왜 하려고 하는지,

인생의 끝까지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생각해 보자고요.


결혼 자체가 넘기 어려운 허들이 된 지금, 결혼을 말리려는 질문이 아니에요.


오히려 평생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

'이 사람과 함께 하기 때문에 이렇게 행복하고,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거구나.'를 평생 느끼기 위해


먼저 구체적으로 생각해 놓자는 뜻입니다.


단순히 '이 정도면 내 짝으로 괜찮겠군.' 정도로 결혼을 강행하면,

극단적인 경우 그 짝을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제가 생각한 결혼 생활은

'우리 부부와 아이 둘이 소박하게 밥을 차려,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내는 여유로운 네 식구' 였어요.


반면 저희 남편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아내와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삶'이었고요.

 

둘 다 아주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넉넉하지 못하게 자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움을 추구하기는 했어도,

그 정도가 아주 다름은 결혼 후에야 알았어요.


결혼 준비에서 삐걱거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지요.

양가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나 삶 전체에서도 남편과 아내의 문화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저는 음식을 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먹지 않아 그대로 버리는 음식도 너무나 아까워서, 처음에 밥상을 차릴 때부터 조금씩 담는 성향이고요.


반면 남편은 식탁 그득히 차려진 밥상을 좋아합니다.

고기반찬을 중심으로, 몸에 좋은 여러 반찬이 접시마다 수북이 담겨 있는 밥상을 받으면

자신이 가장으로서 대접을 받는다는 뿌듯함이 그렇게 좋다고 해요.


저와 남편, 누가 맞고 틀리고 가 없지요.

둘 다 맞는 말이고, 둘 다 나무랄 수 없는 생각임을 압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이 받아들임은 별개였어요.


주된 반찬 하나에 국 하나, 밑반찬 두 가지만 놓은 아침상에

때마침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남편이 버럭 했어요.



이 거지 같은 밥상을 차리고 생색내는 거야?
이걸 먹고 어떻게 힘을 내서 일을 하라고!



거지 같은 밥상

거지 같은 밥상

거지 같은 밥상

...


결혼 준비를 하면서 친정의 살림이 넉넉하지 못함이 내내 마음에 걸려 있었는데,

성숙하지 못한 어린 신부였던 저는

남편이 홧김에 한 말을 마음 깊숙이 담았습니다.




살림이 익숙하지 않은 새댁에게 밥 차리기가 무서운 것은

하루 세 번 365일 끊이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이에요.


시험 포기 후 도망치듯 한 결혼,

성공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을 가진 채로 친정의 넉넉하지 못한 상황을 그대로 맞닥뜨려야 했던 결혼식 과정,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밥 차리기에 대한 긴장감.


'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라는 여유를 스스로 가지지 못하고

남편에게 배려해 주기만을 바라고 매번 실망했기 때문이었어요.


평생 바뀌지 않을 거라는 절망은

시험을 포기하고 동작대교로 향하던 마음에 불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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