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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Oct 20. 2024

네 번째 삶 - 밥 먹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저는 육식주의자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밥, 빵, 면, 떡을 못 먹는 대신,

고기와 채소, 과일을 주로 먹습니다.


황제 식단 나셨네, 싶지만

3년 전 혼자 기대하고 혼자 충격받은 후,

밥 종류를 먹으면 토하고 입에 맴도는 그 단내가 어지러워서 먹을 수 있는 게 몇 가지 없었습니다.


마치 제 몸이 에너지 섭취를 거부하는 것 같았어요.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에서 영혜가 타인의 폭력성에 맞서 육식을 거부했던 것과 반대로,

저는 자신의 몸을 파괴하기 위하여 몸이 밥을 차단하는 것 같았습니다.




'며느리밥풀꽃'이라는 꽃이 있대요.


며느리가 밥이 다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밥알을 두 개 입에 넣었다가,

시어머니가 '어른보다 먼저 밥을 먹었다'면서 며느리를 쫓아냈대요.

떠돌던 며느리가 세상을 뜬 자리에 마치 밥알을 입에 문 것 같은 꽃이 피었다는 전설이 있대요.


출처: Pinterest 강미영


며느리밥풀꽃의 꽃말이 '원망, 질투'라는 게 참 마음이 아픕니다.

'젊은 여자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시어머니의 질투가 예부터 얼마나 서슬이 퍼랬으면 '소박맞은 며느리가 죽어서 핀 꽃'이라는 전설이 생겼을까요.


제가 밥을 토하기 시작한 날도 비슷했습니다.


오피스텔 명의를 정리하느라고 시어머님과 부동산에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며느님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느라고 애를 참 많이 썼다.'는 부동산 소장님 말씀에,

"그렇습디꺼?"라고 대답하시는 어머님의 표정이 무서우리만큼 좋지 않았어요.


"우리 아아(제 남편)도 잘 합니더. 그렇지 않던가예?" 라고 덧붙이시는데,

제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냥 가만히 있을 걸,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는 어머님 말씀대로 사주에 따라 사는 데에 적응이 되어 괜찮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어머님이 놀라시며 물으시더라고요.


무신 소리고? 
내는 한낫도 기억이 안 난다.


남편 사주에 따라 특정 지역, 특정 이름의 아파트에 현관문 방향까지 따져가며 이사를 하라는 시어머님의 말씀을 따르느라 

아이들을 전학시키고 제 인생의 계획과 꿈까지 다 접어가면서 살았던 5년의 고통을 

전혀 모르셨다는 말씀이었어요.


애들 아빠와 그렇게 많이 다투고, 

눈물 쏟아가면서 집을 알아보고, 

전학 전까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등교시켰던 제 애타는 마음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는 말씀이었어요.


이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펑펑 울면서 말하는 저에게

"어른 말씀을 듣는 게 다 느덜에게 도움이 되는 기라." 하고 딱 잘라 말씀하시던 그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어요.

 



시어머님이 기억하지 못하시는 게 속상했다기보다는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내 의지를 가지고 살지도 못하는 삶이라는, 자유 의지가 없이 사는 약해빠진 저 자신이 극도로 미웠어요.


결혼 전 친정 엄마아빠께 받았던 무한한 사랑이

내 삶에서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전부였나, 이제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살 날만 남았나 하는 암담함이 짓눌렀어요.


굳이 제가 요단강을 찾기 위한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몸은 '곡기를 끊는다'는 표현처럼 입에서 밥이 씹히는 식감을 거부했습니다.


며느리밥풀꽃의 며느리가 밥알 두 개를 물었다가 죽어갔듯이,

앞으로의 희망을 잃었던 당시의 저는 밥알이 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며 삶을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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