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드웬디 Oct 09. 2024

두 번째 삶 - 외숙모와 외할머니 중 누가 더 이쁜가?

저희 신랑은 참 반듯한 사람입니다.


국어 선생님이셨던 시아버님과, 시조부모님을 극진히 모신 시어머님 아래에서 자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정말 곧게 잘 자란 청년이구나.' 했어요.


변리사 2차 시험을 포기하고, 거의 두어 달을 집에서 누워만 지내다가

병원에 임시직 약사로 일을 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을 만났거든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풀리는 데에 훨씬 좋을 거야.'라는 친구의 말처럼,

소개팅 후 남자친구가 된 저희 신랑 덕분에 기운을 차리고 많이 밝아질 수 있었어요.


시험 포기 후유증을 앓는 제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보호 본능으로 그랬는지,

당시 신랑이 저를 지극 정성으로 아껴주었던 것은 지금도 참 감사합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처음으로 시어머님을 뵈었을 때

아주 찰나였지만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어요.


호랑이상.

대왕대비마마.


밝게 웃으시며 반겨주시는 시어머님께

불충하게도 이게 무슨 생각이냐며,

아직 세상에 마음이 다 열리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넘겼습니다.


말투가 강하신 것도, 사투리가 심하셔서 억양이 센 탓이다, 지역 특색이다 하고 넘겼고요.


무엇보다도, 시험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온 나약한 저를 예쁘게 봐주시는 게 그저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의지가 약한 며느리는 싫으실 수도 있는데.'

하며 시부모님의 환대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결혼식은 신부를 위한 자리라고들 하지요.


하얀 드레스의 신부가 돋보이기 위해 하객들은 일부러 흰 옷을 입지 않을 정도로요.


'이 날은 다시없을 온전한 나의 날이다'를 만끽하며 신부대기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형님, 즉 저희 신랑 누님의 딸인 시조카 아이가 귀엽게 와서

"외숙모~♡" 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조카도 생기고, 새로운 삶을 이렇게 행복하게 다시 시작하겠구나.'

하며 한껏 미소 짓고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시어머님께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조카에게 물으셨어요.


외숙모 참 예쁘제?
외숙모가 이쁘나, 외할머니가 더 이쁘나?


'응?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아이도 약간 당황한 듯했어요.


아무리 초등 2학년인 아이라고 해도, 결혼하는 신부와 시어머니를 비교하라는 질문이 당혹스러웠을 거예요.


조카가 대답이 없자 시어머님은 재차 물으셨어요.


외숙모가 예쁜 드레스 입고 참 예쁘지만서도,
 외할머니도 한복 곱게 입고 예쁘지 않나?


그제야 조카는 "외숙모도 예쁘고, 외할머니도 예쁘세요."라고 웃으며 답했어요.




아......

시어머님을 대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깨달음이 그때서야 왔습니다.


시험을 포기하고 못난 나로부터 도망치듯, 신랑에게 의지하며 시작하는 결혼 생활이

어쩌면 힘든 날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들었습니다.


야속하게도 찰나의 그 예감들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전 02화 이겨내라고 하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