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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Oct 06. 2024

이겨내라고 하지 마세요

변리사 시험을 준비했었어요.


당시 변리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친구들과 선후배가 꽤 많았고,

저는 동네 약국에서 일하면서 약사 생활에 넌덜머리를 내던 때였거든요.


세상이 만만하던 햇병아리 약사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전산 담당 언니도 싫었고

'하루에 세 번씩 식사 후에 꼭 챙겨드세요.'라는 복약지도를 매일 200번도 넘게 똑같이 하기도 싫었고

옆 약국보다 박카스가 50원 더 비싸다고 도둑이라고 욕하던 할머니들도 싫었지요.


그렇게 '말이 통하는 기업을 상대로 일하고 싶다'는 건방진 목표를 가지고 변리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006년 1월, '법'과 관련된 책을 태어나 처음으로 읽기 시작하고 3월에 1차 시험을 보았지요.


그저 시험장 분위기를 익힐 목적이었어요.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떨어지는 게 더 나았을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은 것인지

건방짐을 고쳐주기 위해 독사과를 내민 것이었는지,


그 회차의 과학 시험이 어렵게 출제되어 40점 과락을 넘기지 못한 응시자가 많아,

평균 60점을 넘으면 모두 합격을 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생겼습니다.


저는 찍기 여왕의 신공으로 60점을 간신히 넘기고 1차 시험을 합격했어요.


민법 책을 몇 번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특허법에서 말하는 용어만 간신히 아는 수준이었는데,

상표법은 문제집만 한 번 달랑 풀어보고 시험 본 것이었는데


어이없게도 합격을 한 거예요.


그리고 객관식인 1차 시험과 달리, 문제에 대해 줄줄이 글로 써내야 하는 2차 시험을 준비합니다.


.......


제가 선택한 과목인 약품제조화학은 유기화학의 한 종류로, 의약품을 합성해서 제조하기 위한 출발물질부터 촉매, 반응 과정까지 모두 암기해야 했어요.

그제야 변리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아예 고려하지 않았던 문제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유기화학을 정말 싫어했거든요.

약품제조화학을 공부하면서, 뒷 페이지로 넘어가고 나면 앞 페이지 내용을 새까맣게 까먹는 것이 계속 반복되었어요.

50원 차이로 도둑 소리를 들을 것인가,

하기 싫은 화학에 파묻혀서 허울 좋은 '변리사님'으로 살 것인가...

가뜩이나 힘든 공부를 하는데, 목표를 잃은 듯한 좌절감에 갑자기 숨이 넘어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어요.

아마 1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미뤄두었던 피로가 회의감과 함께 쏟아진 게 아니었나 합니다.


게다가 약사가 싫다고 시작한 수험 생활인데, 이것마저 싫다고 하는 제 자신이 극도로 못나 보였어요.



책상에 앉아있으면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10분마다 뛰쳐나오고,

먹은 식사량보다 토하는 양이 더 많은 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때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2차 시험 준비를 쉬어야 해.'라고 생각했으나,

다들 잘 이겨내는데 혼자 유난을 떨고 있음을 인정하기 싫었어요.

사법시험처럼 몇 년씩 공부만 하는 사람들도 묵묵히 잘 이겨내는데,

고작 몇 개월 공부하고는 힘들다며 2차 시험 응시라는 귀한 기회를 놓친다면 제가 더욱 바보같이 생각될 것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주일에 평소처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가, 신부님 강론 말씀이 귀에 박히듯이 들어왔습니다.

"인내하세요. 이겨낼 수 있습니다.

충분히 해낼 수 있음을 우리 모두 알아요. 그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시생이 많은 신림동에서 방 한 칸을 얻어 공부를 했기 때문에, 고시생들에게 기운을 북돋워주려는 말씀이었어요.

그러나 몸과 마음이 이미 무너져있던 저에게는
'너는 이것도 이겨내지 못하니? 모두가 다 하는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라는 목소리로 들렸어요.

그리고 며칠 후 동작대교 한가운데에 섰습니다.




아프거나 목숨이 끊어질 것은 두렵지 않았어요.


이미 목이 졸리고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겪고 있었고, 오장육부가 다 나올 듯이 토하는 것을 매일 하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죽지 않을까 봐 겁이 났어요.
목숨만 겨우 건지고 살아남아 평생 병원 신세를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공포스럽게 다가왔어요.

엄마아빠가 고통스러워하시는 얼굴을 마주하며 평생을 살 자신까지는 없었어요.
그저 사라지고 싶을 뿐인데.

그렇게 천천히 돌아 나왔습니다.

2차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엄마께 긴 설명은 할 필요가 없었어요.
단 두어 달만에 몇 킬로그램이 줄어들었고, 산송장처럼 넋이 빠진 얼굴이었으니까요.

고양이의 첫 번째 목숨은 그렇게 요단강 근처에 갈 용기도 없이 끝났습니다.

제대로 부딪쳐보지도 않았다는 열등감을 가진 채로
그렇게 두 번째 목숨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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