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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아빠 Jul 20. 2023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데...  

롱텀 히말라야 산행기_3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커다랗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이곳은 히말라야 산중이라는 생각이 난다. 문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이른 새벽인 듯하다.


 로지(산장)는 합판 몇 장을 덧데어 만든 격이기 때문에 방음이 될 리가 없다. 마치 속삭이듯 옆방 아저씨의 힘찬 하모니가 들려온다. 하나 생각을 이어나가기도 전에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진다. 새벽의 냄새가 난다. 주섬주섬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이제 막 별이 사라진 새벽이다. 어제 도착했을 때는 거의 해가 질 무렵이었기 때문에 이곳이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둘러볼 수가 없었다. 한켠에 채소가 가꾸어진 싱그러운 마당. 계곡을 끼고 있는 곳이라 물소리가 작게 들려오고 어디선가 수탁우는 소리도 멀리서 들린다. 정말이지 영판으로 우리네 시골과 비슷한데 나와 반대로 돈을 벌기위해 한국으로 들어온 네팔리들이 멀리 타향에서 고향의 향취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다 크리슈나와 마주쳤다. 잘 잤냐는 말에 아주 좋다고 대답하고(왠지 아직 어색하기때문에) 만날 시간을 정한다. 자 이제부터 진짜 산행이다. 저지대에서는 샤워를 하는 것이 건강상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순서를 기다려 샤워를 간단히 하고 간이식당에서 진저레몬티를 한잔 먹었다. 잠을 푹 잔 것은 아니지만 아침녁에 반겨준 시골풍경이 컨디션을 기분좋게 잘 살려줬던 것 같다. 수분과 체온을 지키기 위해 산행에서는 누룽지를 챙겨라는 것을 어디서 보았기 때문에 준비한 누룽지를 보온병에 뜨거운 물과 함께 잘 불려놓았다.


저 멀리 고봉이 먼저 일어나서 앉아계시다.


 준비를 마치고 크리슈나와 함께 길을 나섰다. 길은 한국의 시골길과 유사하지만 고개를 들면 본적 없는 스케일의 산맥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내 땀이나 조끼를 벗고 걷는다. 10월 중순의 안나푸르나는 꽤 따뜻했다. 다들 히말라야라고 하면 눈덮힌 설산을 떠올리는데 그건 최소 5일은 걸어들어가야 겪어볼수 있는 것.


 계곡이 깊고 넓어지자 건너편 멀리 산비탈에 자리 잡은 마을들이 하나씩 보인다. 고랭지 농업을 하는 듯한 그 마을들은 자동차로는 접근이 어려운 형태다. 오르내리려면 족히 두어 시간을 걸릴듯한데 크리슈나가 저곳에서 학교를 가려면 네 시간을 걸어가는 곳도 있다고 한다. 역세권이다 뭐다 하여 조금이라도 편한 교통이 편한 곳을 찾고 지하철역까지 15분이면 비역세권으로 분류하는 우리네 모습과 대조적이다. 뭐 그들도 원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길을 굽이지나 지나치던 작은 부락에 도착했다. 오래된 문방구에 놓인 변색된 장난감상자들. 딱 그러한 형태의 식료품 캔과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망고주스 한 캔을 사서 나와 평상에 앉았다. 닭과 오리 몇 마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다. 미안하지만 자네들에게 줄것은 없어. 만약 영어로 간단한 소통만 가능하다면 지나며 마주치는 네팔리들은 대게 순박하고 친절하게 응해준다. 꼬마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동양인 여행자의 반응을 살핀다. 지대가 낮아서인지 생김새가 남방계 쪽과 유사하다. 눈이 크고, 입술이 두툼하다.


왼쪽에 보이는 작은 부락들. 평생을 저곳에서 살다 가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한동안 걸어가다 보니 경사가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멀리 보이던 산세가 더 다가와있다. 상게라는 마을에 도착해 현지식인 달밧을 먹고 그 후에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이어진다. 한동안 서로 말없이 오르막을 올라간다. 트레킹의 모든 구간이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깔딱고개는 더러 만난다. 계곡은 상당히 깊고 꽤 험한 편. 길을 굽이도는 곳 휴식터 평상에 자전거가 보인다. 그것도 4대씩이나. 문득 중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밀며 오르막을 오르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던 순간이 기억난다. 올라가도 끝이없는 오르막은  형에 비해 어린 나에게는 가혹하다고 생각해 서러웠던 것이다. 그게 아버지 앞에서 힘들어 울었던 마지막 기억이다. 그때즈음 부터 아들은 아버지와 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안나푸르나 서킷에서는 유독 오스트리아, 독일 등지의 트랙커들을 많이 만나는데 이번에도 오스트리아였다. 후에 이유를 물어보니 그들은 못지않은 산악지대(알프스)를 가까이하고 있기에 산행이 익숙하다고 했다. 이 가족은 푸근하고 강한 아빠, 날씬하고 세련된 엄마, 이미 피지컬이 아빠를 훌쩍 뛰어넘은 아들,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할 듯한 딸로 이루어진 그림같은 가족이였다. 나와 서로 눈인사를 하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웃으며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땀에 절어 녹초가 된 형편이었지만 이 여정의 특별함을 표정에 드러내는 듯 대단히 행복해 보인다.


 크리슈나가 다음 마을을 통과해 트레킹으로 하루다음 거리의 마을까지 지프로 이동하자고 제안한다. 그런 다음 일정을 세분화시켜 2500미터 이상의 코스를 짧게 이동해 고산병을 예방하는 것이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얘기하는데 아마도 내 일정과 전체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인듯하다. 또한 고산병은 3000미터 이상의 지역에서 주로 생긴다. 통상적으로 안나푸르나 서킷은 20일 정도의 완주일정을 가지는데 나는 15일 정도의 일정으로 소화하기 때문에 다소간의 변경이 있는 부분. 가이드와는 서로 협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 의견을 받아들이고 다음 부락에서 지프를 이용했다. 워낙 험난한 길이 섞여있기 때문에 지프는 그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오히려 풍경을 보기엔 그게 낫다. 작은 협곡을 지나가며 본 비석에는 이 길을 만들다가 죽은 이들의 이름을 세겨놓았다고 한다. 그만큼 이 협곡은 깊고 험하다.


 지프로 통과한 마을 '탈'은 그 그림이 대단히 아름다워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정이 맞다면 하루정도 머물기를 추천하고 싶은 마을. 폭포수가 배경이 되어 대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호젓한 마을이다. 연신 카메라셔터를 누르고 지나며 도착한 곳은 해발 2700미터의 차매. 차매로 이동하며 본 풍경은 냉정히 얘기해 그 스케일과 웅장함으로 따진다면 국내의 그것과 비교가 어렵다.


매력적인 마을 '탈'


 평균적인 트레킹 일정은 4시 정도면 끝이 난다고 했지만 첫날의 이동거리를 꽤 길고 지프를 이용한 시간도 소요되어 도착 후 시계는 6시에 가까웠다. 크리슈나는 나를 고려해 한국인 승려가 운영하는 로지를 추천해 줬다. 3년 정도 한국 이곳저곳의 만다라를 만들러 다닌 승려는 한국말을 곧잘해주었다. 그는 생업과 종교를 함께하는 형태였다. 로지를 운영하는 업무 중에도 기도를 올리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부득이하게 하루에 고도를 850미터 올리니 피로감이 몰려온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저녁으로 계란볶음밥과 생강차를 마셨다. 전날 저녁의 로지에 비해 협곡안에 자리한 이 곳은 조금더 짙은 고독을 선물받는다. 땅거미가 내린 후엔 고도에 따라 기온이 상당히 내려가는 이곳은 마당에서는 안나푸르나 2봉이 조망된다.




 찾아온 어둠속에 울어대는 벌레들과 공기의 소리를 들으며 누웠다. 인터넷은 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의 속도만 간신히 나오기 때문에 내가 두고 온 세상의 정보와는 단절이다. 또다시 비로소 오롯이 혼자의 시간에 놓인 셈이다. 내일의 하루는 분명 또 놀라울 것이다. 안나푸르나 서킷은 그 변화무상함이 매력인지라 고도의 변화에 따른 풍경의 변화가 다이내믹하다. 그런 풍경을 보며 눈호강 뒤 이렇게 저녁에는 문명에서 벗어난 시간을 선물 받는다. 책을 가져오진 않았다.(물론 책을 챙겨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 대신 글을 썼다. 하루를 기록하고 또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당장 돌아갈 수도 그리고 빨리 지나쳐갈 수도 없는 이 15일간의 반강제적인 사색의 저녁이 어쩌면 히말라야 트레킹이 주는 가장 값비싼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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