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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아빠 Jul 29. 2023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데...

롱텀 히말라야 산행기_7

 하루를 쉬고 난 뒤라 고산증세는 거의 사라졌다. 몸은 가볍고 마음은 설렌다. 다음 목적지는 해발 4000미터에 가까운 마을인 야카르카(야크가 사는 곳이라는 뜻)인데 온도저하를 위해 반팔한벌을 더 걸치고 출발해 본다.


마낭의 배경




히말라야 트레킹을 대비한 복장은 압축률이 좋아 접어서 보관하기 좋은 파카, 이용이 효율적인 바람막이, 속건성 긴팔 2~3벌이 기본으로 필요하다. 10월의 기후는 사실 4000미터 이하에서는 딱히 파카를 입지 않아도 무방하다.


말이 필요없는 풍경


 마낭을 출발해 야카르카에 도달하는 길은 안나푸르나 서킷의 백미 중 하나. 왼쪽으로는 강가푸르나, 안나푸르나 3봉이 함께하고 오른쪽으로는 출루이스트를 비롯한 고봉들이 조망되는 가운데 바로옆으로 깊은 협곡을 두고 걷게 된다. 경사는 있지만 비교적 완만한 편이라 조망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경사가 너무 급하면 자동적으로 시선이 땅을 향하게 된다). 태어나서 본적 없는 스케일의 두 산맥과 계곡을 보고 걷노라면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따지자면 캐나다의 록키산맥 혹은 스위스의 알프스 등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그 규모는 물론 사람의 등반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오지의 장엄함이 특유의 격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두 시간 여를 걸어 도착한 군상은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 규모가 워낙 작아 루트를 지나며 잠깐 쉬는 곳이지만 절경을 품고 있는 곳이라 하루즈음 묵어가도 좋을 곳이다. 대부분의 트랙커들은 이곳에서 홍차 한 잔을 마시며 쉬어간다. 벤치에 앉아 조망하는 안나푸르나 일원의 고봉들은 비록 높이는 최고봉에 비할 바가 못된다지만 그 자태에서 어머니의 산이라고 불리는 안나푸르나 특유의 따뜻한 웅장함을 한껏 눈에 담아준다.


야카르카로 가는 길은 다양한 계절이 레이어 되어있는 듯 하다.


 다시 두 시간 여를 걸어 야카르카에 도착한다. 해발 4000미터의 마을들은 체감적으로 확실히 그 이전의 마을보다 서늘하다. 물론 전기를 쓰는 비용과 음식의 가격 등 전반적인 물가도 높게 책정되어 있다. 와이파이는 물론 통신자체도 아예 사용이 불가하다. 앞으로 3일 정도는 완전한 단절 속에서 지내야 하는 것이다. 숙소를 잡아 짐을 놓으러 들어간 방 역시 마낭에 비해 추운 기운이 감돈다. 그야말로 고산지대에 돌로 쌓아 만든 돌담 속에서 자는 격이다.


 주변의 절경을 구경하는 것 말고는 크게 할 일이 없는 곳이다. 고소적응을 위해 조금 더 주변을 올랐다 내려오거나 그나마 야크배설물을 태워 난방을 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한낮을 따뜻한 날씨 속에서 트레킹을 하다 오후 야카르카에 도착하자 역시나 서늘해지는 날씨에 컨디션 관리를 위해 레스토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블랙야크'


 야카르카란 이름에 왠지 모를 기대를 하며 야크스테이크를 저녁으로 먹는다. 이전에 말한 것처럼 질기지만 특유의 진한 맛 때문에 만족스럽다. 루트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가장 비싼 음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라이스류의 식사가 300~400루피인데 야크고기가 들어가면 일단 500루피를 넘게 된다. 한국 트랙터들을 타켓팅한 닭백숙도 가끔 볼 수 있는 메뉴 중 하나다. 물론 가격은 히말랴야 프리미엄이 붙어 국내의 닭백숙 가격에 필적한다.

 

 급격히 내려가는 온도에 대해 한 포터가 우려스럽다고 얘기한 지 두어 시간 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라기 보다는 진눈깨비에 가깝다. 비교적 좋은 날씨 속에서 트레킹 하다 처음 맞이하는 추위에 감기를 우려해 옷을 겹겹이 껴입었다. 저녁 무렵은 레스토랑이 트랙커로 가득하다. 이곳 야카르카에는 5~6개의 호텔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착이 늦으면 숙소가 모자라 다음 마을로 가야 할 수도 있다. 다들 온기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표정들. 이곳에서도 동양인 트랙커는 나 하나뿐인듯하다.




 방이 너무나도 추워서 잠잘 엄두가 나지 않아 밤이 되도록 레스토랑에 앉아있었다. 늦은 시간이 되어도 사람이 많은 것은 아마도 전부 나와 같은 심정이었지 않을까 한다. 물병에 물을 넣어두고 자면 얼 정도로 추운 밤을 지내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방편을 동원한다. 샤워는 당연히 불가해 물티슈로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는 것이 전부다. 핫팩을 켜고 파카에 침낭 그리고 그 위 이불까지 겹겹이 덮고 나서 간신히 온기를 느끼고 잠을 청한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잠자리다.


 사람은 생각보다 나약한 존재다. 잠자리가 척박해지면 심적인 여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경험이 풍부한 트랙커라면 이런 환경도 즐기며 여유를 찾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밤이 어서 지나고 햇빛이 비추기만을 바라며 잠이 들었다. 독서를 할 여유도 글을 적을 여유도 없는 것이다. 사람은 나고자란대로 살아간다. 타국에서 온 트랙커와 등반가들이 뛰어나다한들 이곳에서 나고자란 네팔리 세르파들에 비할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운명적인 것이다. 운명을 뒤집기는 어렵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 솔직한 눈으로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게 필요한 때였다.


8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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