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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아빠 Aug 03. 2023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데...

롱텀 히말라야 산행기_9

 안나푸르나 서킷의 하이라이트. 그 설렘에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물론 고산의 추위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고) 간신히 잠들었다 깨어보니 새벽 4시. 오후부터 심상치 않던 날씨는 결국 눈을 쌓아놓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헤드랜턴에 의지해 패킹을 하고 레스토랑으로 향하니 이미 출발하는 팀이 있다. 인원이 다수라 조금 더 일찍 움직이는 유럽 트랙커팀. 나도 서둘러 마늘수프와 삶은 계란을 먹고 루트에 오른다.


다들 사뭇 긴장한 표정


 오늘은 여태까지 걸어온 평이한 트랙킹과는 성격이 다르다. 쏘롱라패스는 해발 5416미터에 위치한 길목인데 체류지가 아니고 말 그대로 '패스'이기 때문에 시간을 배분해 통과해 다음 체류지인 묵티나트로 내려가야 된다. 일단 400미터의 경사를 한 시간 만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페이스조절을 해가며 등반한다.  이미 해발 4500미터에 다다르자 걸음이 많이 무거워지지만 적당한 위치에 있는 하이캠프 보호소에서 잠깐 몸을 녹일 수 있다. 4900미터에 위치한 이 캠프에서 낯익은 트랙커 몇 명과 인사를 나눈다. 농담을 할 여유는 없는 듯하다.


그저 걸음을 내딛을 뿐  


 이내 출발하지만 진눈깨비가 날리고 주변이 눈으로 덮이니 진도는 더 더뎌진다. 그렇게 두 시간 반정도를 더 오르면 소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이라 불리는(지금은 코사인군트 외 몇몇에 밀려났다) 쏘롱라패스가 나온다. 패스를 앞두고 100여 미터 남은 구간에서는 정말 숨이 턱턱 차오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페이스가 밀리면 쉬어 진행하는 것이 요령이다. 고소에 적응한 탓에 두통 같은 문제는 없었지만 차오르는 숨은 어찌할 수가 없다. 괜찮으냔 트리슈나의 물음에 '단지 숨이 문제'라고 대답했다. 짙은 안개는 가시거리를 50미터 이내로 좁히고 땅만 보며 걸어가다 보니 경사가 완만해지며 멀리 표지판이 보인다.


드디어 도착.


 쏘롱라패스에 다가서니 그 많던 구름과 안개들이 겉히고 옆에 위치한 설산이 위용을 드러냈다. 이렇게 고생해서 패스에 올랐는데 경관이 보이지 않으면 상심스러울 수 있을 텐데 운이 좋았다. 비슷하게 올라 채던 (물론 내 배낭보다 3배는 큰 배낭을 짊어진) 포터 그룹의 네팔리들이 푯말 앞에서 사진을 찍고 환호를 했다. 크리슈나에게 물으니 그들이 진 배낭은 보통 30킬로가 넘는다고 했다. 그들도 앞서 올라서며 자주 미끄러지고 넘어졌다. 리스펙트.


구름이 겉힐 무렵


 드러난 설산을 보니 저절로 겸손해진다. 고대의 인류가 왜 자연을 보며 신을 상상했는지 알 수 있는 느낌. 나라는 작은 존재를 겸허히 내려다보는 수만, 수억 년 나이의 설산 앞에 다녀간 많은 이가 쌓아놓은 석탑. 거기에 돌을 하나 올린다.


 간이산장에서 홍차를 한잔 마시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내려가면서 보는 풍경은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에 무리가 가는 설원. 풀 한 포기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이지만 성스러움이 묻어나는 풍경이다. 구름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며 시야를 교란한다. 안개, 돌, 눈만이 존재하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은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하산은 빠르게 이뤄지지만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이 상당해 속도조절을 잘해야 했다. 같이 하산하는 포터들은 은 그 무거운 짐을 지고도 빠르게 비탈을 내려간다. 어느 정도 내려오니 안개가 겉히고 목적지인 묵티나트가 보인다. 중간중간에 파란색 임시 대피소가 있는데 역으로 묵티나트에서 쏘롱라패스로 오르는 루트에서의 날씨와 눈사태에 의한 사망사고가 빈번해 마련한 임시대피소라고 한다. 밀려온 폭풍에 저체온등으로 사망한다고.


수평선의 곡률이 보이는 듯 하다


 묵티나트가 보이자 기쁜 마음에 하산속도는 더 빨라졌다. 부지런히 움직인 탓인지, 총 9시간 못되어 도착했다. 매뉴얼대로라면 10-11시간을 잡아야 하는 루트. 길목에서는 작은 우박도 떨어졌다.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더 빠른 속도로 하산했다. 묵티니트에 다달을 시점에는 크리슈나의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묵티나트는 힌두교와 불교를 동시에 모시는 하나의 큰 종교마을이다. 오른쪽으로 어퍼무스탕지역을 둔 만큼 황량한 풍경과 더불어 아름다운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려는 많은 트랙커들이 이 묵티나트와 좀솜을 보기 위해 내가 진행한 반대쪽 루트로 올라오기도 한다. 워낙 힘든 하신길이라 마을구경은 내일 천천히 돌아보며 찍기로 하고 일단 호텔을 잡았다. 밥말리 호텔이라는 유명한 숙소는 레스토랑에 밥말리의 음악이 리믹스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낭만적인 호텔이었다. 자유의 아이콘 밥 말리. 여행자들의 해방감과 어울려 기가 막히다. 이곳에서 무려 5일 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사실 4000미터대의 로지에서는 샤워는커녕 너무 차가운 물 때문에 세수도 하기 힘들고, 물티슈로 몸을 이리저리 닦아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샤워를 하고 크리시나에게 다른 곳이 천국이 아니라 여기가 천국이라 하니 활짝 웃었다. 그 역시 루트의 고비를 넘어 마음이 가볍긴 마찬가지인듯하다. 호텔에서는 느리지만 와이파이가 되기 때문에 미뤄둔 연락도 취할 수가 있었다.


Piece!


 저녁이 되자 레스토랑은 가득 찬다. 이 로지는 묵티나트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 트랙커들의 우선순위에 꼽힌다. 음식이 딜레이 된다거나 하는 사소한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들 식사를 마치고도 레스토랑에 앉아 흘러나오는 음악과 따뜻한 온기에 몸을 녹이며 패스통과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유대감을 형성한다.




 전반적으로 느낀 고소증세에 대해 느낀 점을 말하자면 거의 대부분의 고소증세는 3000미터대에 진입하면 찾아온다. 두통, 메슥거림, 어지러움 또는 불면증 등인데 일단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첫 번째로는 현상태의 고도에 대한 적응으로써, 하루정도 머물며 근처를 산책하고(그냥 방에서 쉬기만 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고도의 상태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또한 낮에 얼마나 높낮이를 거쳤나 보다는 수면 시의 고도가 고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다. 두 번째는 아침, 저녁으로의 다이아목스의 복용이다. 이 약은 안압을 낮추기 위해 개발되었던 약으로 현재는 우리나라에서는 약국에서 구할 수가 없고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야 하지만 네팔 현지에서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약은 몇몇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주로 이뇨작용과 관련된 부작용과 우울증, 마비증상. 세 번째는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고소증세가 오면 우리 몸은 적은 대기산소량 때문에 어떤 작용으로 인해 이뇨작용이 활발해져 자주 소변을 보게 된다. 그것을 보충하면서 물속에 함유된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적게는 하루에 2.5L 많게는 4L 가까이 물을 섭취함으로써 고소에 치명적인 탈수를 예방한다. 또한 사소한 문제 중 하나는 고소에서의 차가운 온도와 건조함으로 인해 자고 일어난 아침 코 안에 피가 맺혀있다가 자칫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코피가 날수도 있다. 그리고 머리의 온도는 매우 중요하다. 되도록이면 두꺼운 빵모자에 침낭에 머리까지 넣고 자는 것을 권한다.



'잘 가시게. 중생이여'


 늦게까지 레스토랑에 앉아 온기를 느끼며 글과 사진을 정리했다. 트랙킹의 방점을 찍은 만큼 마음은 가볍고 몸도 편안하지만 가슴 한가운데 약간의 공허함도 생겨났다. 어느새 여행지와 동화되어 두고 온 곳을 잊고 있었지만 이제는 루트가 하산길로 바뀌었기 때문에 감정도 바뀌어졌던 것이다. 서킷은 기승전결이 있다. 문득 내 여행이 짧은 듯이 느껴졌다. 16일 남짓한 여행이 짧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곳에는 유럽인들이 긴 휴가와 방학등을 이용해 한 달 이상을 체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이러한 경험을 사기 위해 1년을 열심히 일한다. 사회적 제도의 뒷받침 없이 이런 루트의 여행을 하는 것은 생에 몇 번 정도가 가능할까. 뭐... 설악산과 한라산도 좋은데 굳이 히말라야까지 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안 보면 나았을 터 이런 절경을 한번 보고 나니 괜한 아쉬움이 든다.


10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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