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 할 인간 Sep 22. 2023

학교를 너무 사랑해서

포기하지 않는다.


   2023년 7월 18일. 서울의 모 초등학교 교실에서 2년 차 선생님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매일 새롭게 올라오는 기사를 통해 고인이 참 유능한 교사였으며,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꽃 같은 선생님이었다.

   학부모의 폭력에 가까운 민원과 관리자(교장, 교감)의 질책, 교육청의 호출 등은 선하고 성실했던 신규 교사에겐 몹시 가혹했을 것이다. 더욱이 고인은 내가 참 좋아했던, ‘꿈의 아이들’이었던 1998년생 아이들과 동갑이었다. 내 기억 속 착했던 아이들의 모습에 고인이 겹쳐 보여 괴로웠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사건을 떠올렸다. 15년 간 교직에 있으면서 학부모에게 당했던 욕설, 협박, 신고와 관리자의 책임 전가, 갑질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트라우마의 재체험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돌아가신 선생님에게 큰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부당한 일들을 감내해 왔기 때문에, 그걸 바로잡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도망쳤기 때문에 고인에게 이런 학교를 대물림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사건 이후 선생님들이 추모집회에 나서고 교권침해와 학교붕괴에 대해 온 나라가 관심을 가지자, 마음의 고통은 더 심해졌다. 어리고 여린 선생님이 목숨을 버리면서 이끌어 낸 변화 앞에서 나는 참 부끄럽고 미안했다.      

   

   7월 말이었다. 칭얼거리다 잠든 8개월 아이를 품에 안고 사건에 대해 새로 업로드된 기사를 검색하고 있을 때였다. 가해 학부모에 대한 추측만이 난무할 뿐,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가벼운 댓글 한 줄을 보게 되었다.      


  “그만한 일로 자살하다니, 교사들 멘탈 좀 키워야 될 듯?”     


   그 댓글을 보고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날 나는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고, 산 사람의 이야기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여기라면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살아서 학교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정부의 모 초등학교에서 몇 년간 과도한 민원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그 선생님의 얼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 앳된 얼굴이었다. 선생님의 얼굴 위로 결혼을 하고, 예쁜 아이를 품에 안으며 행복해하고,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꽃다발을 안고 퇴직하고, 할아버지가 되어 손주와 장난치며 웃는, 그런 평범한 인생이 스쳐갔다. 그걸 빼앗은 사람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선생님이 적어도 그 정도의 인생은 누릴 자격이 있었다는 걸.

   

   연일 선생님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사건과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특히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체벌을 해서는 안된다’며 논점을 흐리는 말들이 그랬다. 학부모들을 싸잡아 문제 삼는 것도, 요즘 아이들이 돼먹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도 다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이었다. 막상 학교에는 착한 아이들, 호의적인 학부모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막상 15년 간 교사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특정한 사건이나 학부모 때문이 아니라 학교가 정의롭지 못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악성민원에 의한 교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민원인과 관리자(교장, 교감)는 한마음으로 교사를 파괴한다. 특히 교사를 보호해야 할 관리자의 배신은 무엇보다 나를 절망하게 했다.  반면에 그로 인해 피해받는 교사와 동료교사들, 그리고 학급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보통의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은 조용히 분노하며 그저 각자도생 할 뿐이었다. 악한 자들은 한마음으로 움직이지만 약한 자들은 연대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악한 자들의 성공경험은 쌓여만 가고, 약한 자들의 무력함은 더해 갔다. 그리고 학교는 점점 더 무너졌다. 

   학교를 거치지 않고 사회로 나가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불의(不義)로 가득 찬 학교가 무서웠다.  


   최근 선생님들의 집회는 내가 아는 한, 최초의 연대였다. 그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까 봐. 교사를 죽이는 관리자들의 갑질과, 교육활동을 폄하하는 교육부의 정책들이 끄떡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그들을 업은 악성 민원학부모와 그 자녀들에 더 많은 선생님을 잃게 될까 봐.

   그래서 지치지 않고 더욱더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사가 아닌 사람들도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안전하고 정의롭기를 바란다면.  







   내가 학교에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내 주변 친구들은, 특히 교사인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돈 받는 만큼만 일해.’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너무 바보 같거나 공명심(?)에 들떠 과하게 일한 탓에 험한 일을 겪는 것처럼 느껴져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그 조언 속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자포자기하는 마음과, 그러니 살려면 적당히 지내라는 걱정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 중 정말 돈 받는 만큼만 일하는 교사는 없었다. 그 친구들은 시험기간에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사비로 준비하고, 아이들이 당하는 부당한 일에 몹시 분노했으며, 교육 현실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했다. 그것 역시 그들이 받는 월급에는 포함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학교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교육현실에 대해 화를 많이 내는 선생님일수록, 자조 섞인 말을 많이 하는 선생님일수록 학교를 더 사랑했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고, 학교가 망가지는 것이 속상한 사람이었다. 나도 그랬다.

   왜 그렇게 학교를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엔 어릴 적 학교가 좋아서, 선생님이 해주는 칭찬이 좋아서 학교가 좋았다. 그리고 지난 15년 간의 학교생활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그저 가르치는 일, 아이들과 마주하는 일이 참 많이 행복했던 것 같다.


   글을 쓰며 아이들과 함께 했을 때의 사진을 찾아보곤 했다. 그 안에서, 시험을 앞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간식 사진을 발견했다. 그 위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우리 반'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면서 쉽게 포기하고 도망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는 아직 학교를 사랑하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SNS 계정도 하나 없는 내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곳에 내 이야기를 써 보인다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저 개인적인 신세한탄으로 비칠까 두려웠고, 때로는 과하게 노력한 부분이 동료교사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 두려웠다. 무엇보다 그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내 글들이 상처가 되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가장 컸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던 건 진짜 학교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쁜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낮에는 시간이 없었다. 아이를 재운 후 젖병을 씻고 이유식을 만들면 밤 열두 시였다. 집안일을 다 끝내고, 잠든 아이 옆에서 매일 두세 시간씩 글을 썼다. 아픈 글들이 많았기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렇지만 내 이야기를 읽고 단 몇 명이라도 진짜 학교의 모습을 알아주고 걱정해 주면 그걸로 족했다.

   가끔은 그렇게 힘들게 쓴 글 아래에 하나씩 추가되는,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과 위로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어린 시절 선생님에게 칭찬받았을 때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여유가 없어 답글은 다 쓰지 못했지만 모든 마음이 다 위로가 되었고, 고마웠다.


   언젠가 아이들도 나도, 학교에 가는 일이 두려움 없이 즐거울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다시 학교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그 이야기는 밝고, 쾌활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이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정의로운 이야기이기를. 








# 고된 현장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들이 평안하기를 기도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