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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옥 Aug 10. 2024

그렇게 죽을 뻔했지 뭐람

자다 죽었을 테니 호상인 건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디로 가는지, 왜 이동하는지도 모른 채 누워서 천장을 바라만 보며 옮겨졌다. 그렇게 나를 태운 베드는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고 몇 번의 문을 지나 꽤 먼 곳으로 가는 듯했다. 바쁜 걸음으로 베드를 따라오던 부모님은 어느 순간 멈춰 섰고 곧이어 아버지께서는 내 손을 잡으며 울음을 삼켜 떨리는 목소리로 '수영아 아빠가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울고 계셨다. 지금이야 나의 아버지도 아버지이기 전에 소년이었던 사람이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 아버지의 눈물이 머리로 이해가 가지만


고등학생시절 나에게 아버지는 참 다정하면서도 엄하고 강인한 모습의 슈퍼맨 같은 존재였던 분이기에. 그날 처음으로 본 아버지의 우는 모습은 슬픔과 당황, 죄송함, 의문 등 내게 여러 감정이 들게 하였다.


그렇게 부모님은 더 이상 오지 못하였고 그 이후로 몇 번의 문을 더 지나 침상 하나가 놓인 방으로 옮겨졌다. 눈동자만 보일 뿐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의료진들이 나를 둘러쌓았고 이내 내 의식은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목에서 커다란 이물감의 통증을 느끼며 의식이 돌아왔고 손발은 침대에 묶인 채,  입에는 기다란 관이 삽입되어 있었다.


진통제를 투여해서일까 한 시간이 지났는지 하루가 지났는지도 구분이 안 되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의료진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암세포가 기관지를 꽉 막고 있어 기계호흡을 하기 위해 삽입해야 하는 관도 삽입도 안되어 가장 얇은 관으로 겨우 삽입했는데 자칫 그 관에 가래라도 끼면 호흡을 못하고 죽을 수 있었는데 다행히 잘 넘겼어.'라고 아마 의료진들은 내가 마취제에 잠들어있다고 생각했겠지.


 이건 시간이 꽤 지난 뒤에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인데 이때 의료진은 부모님께 내가 그날 밤을 못 넘길 거라 이야기했다고 한다. 서울의 더 큰 병원으로 옮길 수도 있었지만 엠블런스를 타고 이송하는 도중 호흡 정지로 사망할 수도 있다 했기에 부모님은 당일 시한부 판정받은 아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내 손을 잡아 울먹이던 모습보다 더 처절하게 울며 신께 매달려 기도만 하고 있었겠지. 중환자실 안에서 나는 나대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만 중환자실 밖에서 할 수 있는 게 기도 말고는 없었을 가족들의 시간이 더욱 고통스러웠겠지.



(브런치북에 연제해야 하는 걸 브런치 스토리에 올려놓고 잘못 올린 걸 연재일 다음날에서야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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