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죽었을 테니 호상인 건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왜 이동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만 바라보며 옮겨졌다.
나를 실은 베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몇 개의 문을 지나갔다.
꽤 먼 곳으로 향하는 듯했다.
그 와중에 바쁜 걸음으로 따라오던 부모님은 어느 순간 멈춰 섰고,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영아, 아빠가… 사랑해.”
그 말과 함께 아버지는 울음을 삼켰다.
지금은 안다.
아버지도 아버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소년이었다는 걸.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던 내게 아버지는
다정하면서도 엄하고, 강인한 존재,
슈퍼맨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나는 그날 처음 봤다.
그 모습은 나에게 슬픔과 당황스러움, 죄송함,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한꺼번에 몰고 왔다.
부모님은 더는 따라오지 못했고,
나는 몇 개의 문을 더 지나
작은 침상 하나만 놓인 방으로 옮겨졌다.
눈만 겨우 보이는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나를 둘러싸더니,
곧 의식이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목 깊숙한 곳에서 끓는 듯한 이물감이 느껴졌고,
눈을 뜨니 손발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
입에는 굵은 관이 삽입돼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아렸다.
진통제를 맞은 탓인지,
한 시간이 지났는지 하루가 지났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의식은 흐릿했다.
그런 와중에 의료진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암세포가 기관지를 거의 막아버려서, 관도 제대로 안 들어가더라고.
가장 얇은 관으로 겨우 삽입했는데,
만약 가래라도 끼었으면 호흡 곤란으로 위험했을 거야.
다행히 넘겼어.”
아마 의료진은 내가 마취로 깊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날 의료진은 부모님께 내가 그날 밤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의 더 큰 병원으로 옮길 수도 있었지만,
이동 중 호흡 정지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말에
부모님은 눈앞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를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내 손을 꼭 쥐고 울먹이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을 뿐이다.
중환자실 안에서는 내가 나대로 버티고 있었지만,
중환자실 밖에서는 가족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시간이
더 깊고 절절한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