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이 뭐길래
나는 왜 나를 한시도 가만히 두지 못할까
얼마 전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실기시험을 보고 왔다. 엄청나게 긴장이 됐는지 시험이 다가오기 얼마 전부터 위경련이 지속됐다. 신경성 위경련과 위염이 도진 덕분에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아이들을 챙기고, 밥을 하고, 밤에 짬을 내서 공부를 틈틈이 했다. 그런데 시험이 다가오자 며칠간은 약을 먹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위는 딱딱하게 굳어 창자 밖을 뚫고 나올 것처럼 뛰었고, 계속 찌르는 듯한 위 통증으로 머리카락까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긴장 속에 밥을 하고, 글로 실기요리를 공부한다고 애를 쓰다 그렇게 시험날이 되었다.
시험 당일 진경제와 우황청심액을 다 먹고 시험을 보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모자라 제출은 커녕 평가에서도 제외된 미완성 요리로 실격되고 말았다.
부랴부랴 정리를 하고 복도로 나가자 조리학원장님이 학원생들이 잘 보고 왔는지 격려하고 계셨다.
내게 어떻게 됐냐는 물음에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시간이 모자라 제출을 못 했다는 말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에구~ 요조씨는 너무 꼼꼼해서 그래~ 시험 메뉴를 듣고 걱정했는데.. 괜찮아~ 다음에 다시 보면 되지~ " 라며 격려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 격려에 오히려 울컥하더니 급속도로 우울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시험시간이 종료되고 부랴부랴 가방 잔뜩 준비하고 챙겨 간 냄비와 식기, 도구들을 넣은 커다란 대형 장바구니 두개를 접이식 카트에 쌓아 올렸다. 나는 허탈하고 헛헛한 마음을 잠시 뒤로한 채 달그락거리는 짐을 질질 끌며 나갔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 트렁크를 열고 시험이 끝나자 조리기구들을 급하게 쑤셔 담은 커다란 장바구니를 트렁크에 올리는데 정돈되지 못한 조리기구들이 와르르..
와르르...
내 마음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다.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시동을 걸고 집을 향하다 핸들을 꺾어 모르는 길을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냥 어딘지 모를 길을 달리고 달리다 나무가 우거진 골목 골목을 지나 차를 세웠다.
허무함, 초라함, 아쉬움, 회의감, 자책.. 어떤 감정인지 불분명한 검은 구름이 마음 가득 차 올랐다. 나 스스로 실망스럽기도 했고,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빠듯한 시간에 실기 시험 30항목을 조리 실습 없이 필기공부하듯 했는데, 정말 바쁘게 학원다니며 공부도 했지만 시간을 많이 내지못하고 열심히 하지 못한 것 같고 그냥 내가 모자른것 같아 쪽팔렸다.
실망스럽고 속상한 마음들과 창피한 마음은 누구를 향한 마음이었을까?.
나는 왜 자격증을 위한 요리를 배우기로 했을까?
자격증을 따지 못 했다고 크게 달라지는게 있나? 날이 오늘 뿐일까? 나는 왜 이리 마음이 괴로운걸까?
여러 생각이 오갔다.
나는 올 해 초에 취업지원제도를 알게 되었다. 그걸 통해 취업지원금과 학원비 지원을 받게 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게 뭔지 생각하다 매일 하고 있는 요리를 선택했다. 이 쪽 진로에 대한 뚜렷한 생각은 없었다. 막연한 진로라 그저 조리기능사 시험을 합격하면 '국가자격증'이 남고, 더 나이가 들어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선택한 학원 강좌는 자비부담금까지 지원이 되는 기회라 현재 경제력이 없이 남편 외벌이인 전업주부인 내게는 너무 소중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경제력이 없으니 뭘 하고자 해서 배우는게 아니라 배우면서 진로를 찾아가는 모험이라 내가 배우고 싶은데에 돈을 쓰는게 너무 눈치보여서 참아왔으니까 이런 기회에 꼭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던거다.
결혼하고 처음 얼마간은 나에게 쓰는 단돈 5천원, 만원도 괜한 눈치가 너무너무 보였다. 결혼 후 꽤 오랜 시간동안 돈에 대해 혼자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하고, 눈치를 봤다. 그러고 혼자 남편에게 왠지 모를 치사함과 서운함을 느끼며.. 누가 그렇게까지 눈치 보라고 한 것도 아닌데, 허락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남편의 컨펌이 필요했다.
나는 남편이 본업에 열중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정에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가정을 잘 꾸리고 있는 나의 덕이 있기 떄문이라고 남편에게 말은 했었지만, 사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주부라서 초라하다고 느꼈다. 임신으로 실업자가 되고, 결혼한 후 경력단절녀가 된 후 부터 나는 나를 맨 뒷 전에 두었다.
나의 초라함은 돈을 벌지 않는, 돈을 벌지 못하는 경력단절 삼남매의 '그냥 엄마', '아줌마'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세울 것 하나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하찮게 여겨서였을까 .
초라함은 나의 마음이 만든 지옥의 문 앞에 마중나온 사자같았다.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았다.
올해로 10년차 운동선수의 아내로 터울이 적은 삼남매를 키운지 9년차...
나는 늘 바빴다. 한시도 나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10년동안 남편의 밥을 하고 아이들의 밥을 하며 요리에 흥미와 적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주부가 되어서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재능이 좀 있어서 그런지 맛있는 요리를 하고 먹는 사람에게 인정받는게 즐겁기도 하다. 그런데 자격증 시험 앞에 무너졌다.
양식과정을 시작하기 전 한식자격증을 위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정말 미친듯이 바빴다. 정말 애썼지만 모의실기시간에 남들이 준비한 시간을 두고 나는 준비할 시간조차 없는 바쁜 상황에 너무 속상했고, 잘하고 싶지만 맘 같지 않은 학원 모의고사 결과에 그때 처음 왈칵 쏟아져 힘든 마음이 쉬이 멈추지 않았다. 학원을 다니고부터 나는 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몸도 마음도 쉴 틈 없었다. 나 자체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늘 바쁘게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짬짬이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챌린지 인증을 하며 나에게 채찍질을 했다. 그러면서도 늘 타인과 비교하며 나의 모자람에 자책을 했다.
나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일들을 두고서도 스스로를 생채기냈다. 수많은 여정을 보내며 왔는데도 자격증이란 것에 아주 많은 의미부여를 했던 나는 그 순간 무너진거였다.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스스로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온 시간이 쌓여 전보다 성숙해졌고, 성장해 왔다. 그러나 나는 자격증이라는 그저 눈에 보이는 지표로 나를 보이고 싶었다.
모르는 길을 굽이굽이 정처없이 핸들을 돌리며 액셀을 밟으며 달리다 나무가 무성한 좁은 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내렸다. 많은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며 나를 내리게 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달랬다.
가족에게, 더 나아가 사회에 인정받아 쓸모를 증명하고 싶던 내가 안쓰러웠다. 누가봐도 아이들을 잘 키웠다했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해줬던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그제서야 귓가에 맴돌았다.
나를 가혹하게 군 건 나 자신이었구나, 나만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내가 나를 아끼지 않는데, 타인에게 사랑과 인정을 바랬다니.. 어쩌면 늦은, 또 어쩌면 적당한 나이에 이제서야 깊숙이 내가 들어왔다.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달려온 나를 마음으로 안아줬다. 그리고 소리내어 되뇌었다.
"요조야, 참 수고했어. 정말 잘해왔고 지금도 잘 하고 있어. 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그러니 재촉하지마, 자책하지마. 잘 될거야. 지금의 나를 응원하자. " 며...
그 무성한 숲, 어느 길 나를 달랜 후 부터 더이상 전처럼 나를 가혹히 여기지는 않는다.
또 다시 나는 나를 채찍질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성한 나무가 가득하고, 많은 길이 놓여있는 미지의 숲과 같은 인생에서 나는 역시나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고, 액셀을 밟았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맛있는 저녁밥을 해주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