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고 믿었던 시간

by 선데이

출산 후에는 정말로 모든 것이 바빠졌다. 아기를 돌보느라 내 몸을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고, 나를 챙길 마음의 공간도 부족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서 별다른 증상이 없었던 당뇨보다, 당장 더 크게 느껴졌던 어깨와 손목 통증이 나를 내분비내과가 아닌 정형외과로 향하게 했다.


그러다 출산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 내분비내과를 다시 찾았다. 출산 후에 검사받으러 오라고 해서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당화혈색소는 5.8이었고 공복 혈당도 100 미만이었다. 의사는 수치가 좋아졌다고 말했고, 6개월 뒤에 다시 검사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다음 예약을 하지 않았다. 이제 지긋지긋한 당뇨는 출산과 함께 정말로 끝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나고 초반에는 살이 쑥쑥 빠졌다. 그동안 참아왔던 시간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육아가 조금 익숙해질 즈음, 육퇴 후에는 임신 중에 먹지 못했던 야식이 다시 등장했고, 남편과 함께 그동안 미뤄 두었던 술 한 잔까지 곁들인 채,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사실 임신 전에도 남편은 술을 좋아했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마실까 말까 했고, 회식 자리에서도 꼭 마셔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피하곤 했다. 근데 거의 1년 만에 마신 술은 이상할 만큼 맛있었다. 특히 맥주는 원래 안 좋아해서 회식 자리에서도 500cc 한 잔을 내내 붙잡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맥주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그렇게 육퇴 후의 야식과 술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하루의 끝이 되어 갔다.

물론 몸이 보내는 신호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쉽게 피로해졌고,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하지만 육아를 하는 사람에게 피로는 너무 당연한 감각이었다. 잠이 부족해서 그렇겠지, 나이가 들어서 그렇겠지. 게다가 우리 가족이랑 친척 중에 당뇨 환자는 아무도 없지 않나. 그렇게 이유를 붙이며 넘겼다.

일상은 흘러갔고, 하루는 늘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몸무게는 다시 만삭 때에 가까워졌고, 몸은 서서히 당뇨로 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너무 조용해서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임당은 이미 끝난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확신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출산만 하면 당뇨라는 이름도, 끼니 때마다 오이를 먼저 먹어야 하는 일도, 늘 조심해야 했던 음식들도 함께 끝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틀렸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전 04화임당은 나 혼자의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