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몸의 피로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잠이 부족해서 오는 피곤함과는 달랐다. 충분히 잤다고 생각한 날에도 몸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에너지가 다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기가 밤에 자주 깨니 피곤한 것이 당연했고, 육아를 하는 사람에게 피로는 기본값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한 친구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들어했기에 나만 그런 것도 아니라고 넘겼다.
피로는 매일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점점 익숙해졌다. 몸은 계속 무겁고 집중도 잘 되지 않았고, 가끔은 이유 없이 머리가 멍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다가 목에 굵은 선이 생긴 걸 발견했다. 임신성 당뇨를 겪을 때 비슷한 증상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때는 임신 중이었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출산 후 검사에서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걸렸다.
그때가 12월 초, 국가건강검진도 받아야 했기에 국가건강검진을 먼저 받아 보기로 했다. 결과지를 받아 들었을 때, 그동안 애써 눌러 두었던 불안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공복혈당은 200에 가까웠고, 혈압도 고혈압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숫자를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나서야, 이제는 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임신했을 때 다니던 대학병원에 다시 예약을 잡았다.
거의 1년 만에 다시 만난 의사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다그치듯 물었다. 나는 괜히 더 작아진 기분으로 그동안의 시간을 떠올렸다. 정말 괜찮았던 걸까, 아니면 괜찮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검사 결과는 당화혈색소 9.5, 공복혈당 215. 숫자는 생각보다 더 분명하게 현재 상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의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단어, 당뇨.
그 단어가 아직은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 나이는 만 서른여섯. 아직은 아니지 않을까, 조금은 더 미뤄도 되는 단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스쳤다. 임신성 당뇨는 끝났고, 출산과 함께 정리되었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단어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담담하게,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
의사의 설명은 이어졌지만, 머릿속에서는 그 단어가 천천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뇨라니. 놀랍기도 했고, 조금은 막막하기도 했다. 이제부터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 같았고,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어온 느낌도 들었다. 의사는 식단과 운동 이야기 대신 바로 약 처방을 내렸다. 아침과 저녁으로 두 알씩, 거기에 고혈압약까지. 나는 처방전을 받아 들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그 단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멈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