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5장 17-18
엘리바스가 욥에게 하는 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옳은 말을 하는데 왜 욥은 친구의 말에 분노를 느끼는가?
오늘 목사남 말씀은 씨를 뿌리는데는 먼저 밭을 잘 갈아야한다는 것이다. 욥은 이런 친구의 말을 들을 마음이 되어 있지 않다. 고난 당한 사람에게 옳고 바른 말은 씨가 먹히지 않는다. 전도도 마찬가지.
한 예를 들었다. 오래전 탈북민에게 교회에서 그들의 자립을 위해 박스 만드는 공장을 세워 그들이 일하게 했다. 회사에 취직한 탈북민들은 당연히 교회가 만든 회사이니 교회 다닐 것을 강요할 줄 알았다. 그러나 목사님은 직원들에게 교회나오라는 소리를 하지 많았다. 그렇게 해서 교회 나온다면 그들은 교회나와 주는 것이니, 그것은 진심으로 교회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경험이 소환되었다.
20년 동안 비행청소년 상담실에서 자원 봉사를 했다. 보호관찰소 내에 있는 가족상담실이었다. 10년동안은 상담자로, 10년은 운영자로 일했다. 20년 동안 수 백명의 불우한 청소년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달라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1년 6개월씩 상담을 했다. 아이들과 만나서 상담하는 동안 전도하고 싶은 유혹은 무척 크다. 아이들이 내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서 그들도 하나님 품 속에서 위로 받으며 힘을 얻으며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 마음 속에 드는 갈등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일이 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일인데~' 와 '그나마 열은 마음을 닫아 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만나서 상담 하기 전에 혼자 기도 하곤 했다. 말하지 않아도 진심이 통하기를.
오늘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만난 아이들 중 몇 명이나 나의 기도 대로 신앙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교회 나가는 것을 강요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숙제는 풀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