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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Sep 26. 2024

누구에게나 담장은 있다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욥기 17장 6절)



고난당했을 때 우리는  "why me?", "하나님 왜 나예요?"하고 말하게 된다. 욥은 지금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세상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고 침 뱉음을 당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의 고난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은 실낙원이다. 죄로 인해 어그러진 이 세상에는 아픔과 슬픔과 억울함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무질서해지고 혼돈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 고난에는 총량이 있다고 한다.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다 고난은 있다. 누구에게나 담장은 있다. 뛰어넘어야 할 담장. 담장 앞에서 도저히 넘을 수 없어 절망하고 포기해 버리기도 하지만, 끝까지 뛰어넘는 경우도 있다.


 나의 담장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진학도, 경제적 문제도 아니었다. 중학교 입학부터 시험이 있었다. 좋은 부모님과 환경 덕분에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던 담장들을 무사히 잘 건너뛸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 후 육아는 참 어찌해 볼 수 없는 거대한 담장이었다. 대학 전임강사가 되고서도 육아 때문에 포기해야 했고, 두 번째 참 힘들게 들어갔던 직장도 육아 때문에 포기했다. 세 아이는 잘 커 주었지만 생각하면 그 선택이 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글을 쓰게 된 것은 내 일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 결핍에서 시작되었다.


육아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오죽하면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있을까.


날마다 기막힌 하루이고 시간이지만 지난 일요일은 좀 특별한 기분이었다. 우리 집 근처 초등학교는 운동장을 개방한다. 그러나  토요일과 일요일은 문을 닫는데 일요일 오후 4시 반부터 9시 까지는 개방을 해준다. 운동장에서 걷는 사람들을 위해 학교가 배려해 주는 것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걷고 있는데 큰 손자 하준이가 농구공을 가지고 학교에 왔다. 친구 한 명과 농구를 하러 온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용인으로 이사 온 것은 이 아이와 동생 때문이다. 딸이 나처럼 육아때문에 자기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고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하준이는 중학교 1학년이다. 이 아이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웃에 살면서 봐 주었다. 하준이 동생인 손녀도 이제 3학년이라 황혼육아도 이제 거의 끝났다. 두 아이가 농구를 재미있게 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새 저렇게 컸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흐뭇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집에 먼저 가겠다고 아이에게 말하려고 가까이 갔더니 그 친구가 "하준이 학교에서 되게 인기 많아요. 우리 반 1학기 반장이었어요."하고 큰 소리로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반장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인기가 많다고 하니 새로운 소식을 들은 것 같이 무척 기뻤다.  아이가 잘 커 주었는데 거기에 조금이라도 일조를 한 것 같아서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담장이 있다. 그 담장을 건너뛰기 위해서 사람들은 죽도록 노력하고,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담장, 영혼의 구원이라는 담장은 노력이 필요 없다. passover. 유월절, 죽음을 건너뛴 것은 문설주에 바른 피 때문이고 우리의 구원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니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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