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립보서 3장 5절)
바울은 자신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바울 시대에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이 있는 랍비였던 가말리엘의 수제자였다. 그는 또한 로마 시민이라는 신분도 있었다. 그는 열심 있고 흠 없는 히브리 사회의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그러한 세상적인 지위나 신분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더 가치 있는 귀한 것이 있기에 다른 것은 하찮은 것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자신이 이전에 가졌던 모든 것, 자랑은 마치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바울처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오늘 신문에서 한 할머니의 기사를 읽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한참 동안 먹먹했다. "아, 이분은 진정 그리스도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늘 성경을 읽으셨다고 한다. 어쩌면 그 흔한 교회의 집사나 권사 직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며 예수님의 말씀 따라 살아오셨을 것 같다. 매일 정성을 다해 열심히 살아오셨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홍계향 할머니
할머니는 올 5월 20일에 노환(90세)으로 별세했다. 할머니는 2014년에 성남시 중원구의 본인 소유 4층짜리 다가구주택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유산 기부' 했고 할머니 사후에 매각 절차가 진행되어 매각대금 7억 1000만 원이 며칠 전 모금회 계좌에 입금되었다. 평생 노점과 청소로 모은 돈이었다. 할머니는 어느 부잣집 가사도우미도 하셨다. 그때 자기들 먹던 밥을 한 곳에 모아 할머니에게 먹으라고 줬다. 숟가락으로 살살 풀어놓았으면 몰랐을 텐데 밥그릇 모양으로 동그랗게 뭉쳐진 밥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을 보니 무척 서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고마운 사람들도 많았다. 노점상을 할 때 물건을 압수하는 단속반이 제일 무서웠는데 그때마다 모란시장 남양종묘집주인이 단속반원 앞에서 같이 빌어줬다고 한다. 할머니는 "친정 부모처럼 아껴준 남양 종묘집 사장님, 공장에 다닐 때 쉬면서 일하라고 의자를 권했던 공장 사장님, 모란역 청소일을 할 때 이제 바닥 그만 좀 닦으라고 밀대를 뺏던 역장님 같은 분들의 인정이 자신을 살렸다고 한다. 그 인정이 자신을 살리고 또 집도 살 수 있게 했으니 "나도 돌려주고 가고 싶다"며 유산 기부를 했고 기부한 날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신나는 하루였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1934년 부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학교는 못 다녔다. 열 살 때부터 바닷가에서 파래와 우뭇가사리를 뜯어 새벽 장에 내다 팔았다. 21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결혼했다. 남편은 대장간에서 일했다. 그의 나이 43세에 성남으로 이사했다. 열심히 공장에서 일한 덕분에 60대 후반에 성남시에 있는 집을 샀다. 몇 년 뒤 4층 짜리 건물을 올려 1층엔 할머니 식구가 살고 2,3,4층, 옥탑방에 세입자가 살았다. 세입자가 어렵다고 하면 주변 시세의 절반도 안 되는 월세도 깎아주고 보증금을 안 받기도 했다.
2010년 할머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해 외동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딸은 내 굽은 어깨가 너무 말랐다며 울어주던 유일한 아이였다"라고 했다. 치매로 고생하던 남편도 2013년에 세상을 떠나고 그는 그 이듬해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유산기부를 한 것이다. 홍할머니는 작년 고관절이 골절된 후 병세가 나빠졌다. 모금회에서는 할머니에게 유산기부를 취소하고 그 돈으로 고급요양원으로 가서 큰 병원에 다니라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약속 지켜야지" 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고 하늘나라로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