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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초라해도 괜찮아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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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May 19. 2024

베이징, 개미족이 사는 도시

호구여도 괜찮아 #6

마리나베이와 베이징의 개미집

"여보! 아빠!" 사진 좀 그만 찍었으면 좋겠다만 장소가 장소이니 사진을 찍어 달라는 가족들의 성화에 연이어 사진을 찍어준다. 지난해 여름, 나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부자시네요"라는 직장 동료들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휴대폰 은행 앱이라도 열어 내 통장에 만원도 없는 걸 보여주고 싶었지만,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마리나베이 샌즈를 비롯한 5성급 호텔에서만 묵었기에 '플렉스'를 하고 온 셈이었다. 가족들의 플렉스로 인해 내 속과 통장 잔고는 함께 타들어갔지만, 아내의 스트레스 해소와 아이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물했다고 생각하며 행복한 여름휴가를 보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은, 1박에 100만 원 정도로 그 가격이 비싼 것으로도 소문나 있다. 문득, 복학 후 내가 살았던 개미족 집의 월세를 떠올리니, 6개월에 44만 원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하루 호텔비가 6개월 월세보다 두 배나 많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지만, 마리나베이 샌즈가 정말 비싼 것인지, 개미족 집이 정말 저렴한 것인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한국인 중 베이징에서 개미족의 삶을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그 시간, 개미족 집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싶다.

열두 평의 세상, 그 속의 전쟁

2006년 8월, 나는 베이징의 개미족(蟻族)이 되었다.

개미족은 임대료가 저렴한 도시 변두리에 모여 사는 젊은 저소득층 대졸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외에도 중국의 성공 뒤에 숨은 서민들의 냉혹한 삶을 대변하는 용어로 생쥐족, 달팽이족 같은 표현도 있다. 복학 후, 나는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려 했지만, 사스가 창궐했을 때 일찍 귀국했던 이들에게는 기숙사 배정의 우선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살 집을 찾아 나섰다. 중국에서 방을 구하려면 아파트 하나를 임대해야 했지만, 이번 학기에 가져온 돈은 그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발로 뛰어 직접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길거리를 헤매던 중, 학교 주변 전봇대에 붙은 '방 하나를 임대'한다는 전단지를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부동산 직원은 나를 작은 아파트 단지로 데려갔다. 좁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4층까지 올라가니, 현관문이 활짝 열린 오른쪽 집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발로 뛰어 직접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길거리를 헤매던 중, 학교 주변 전봇대에 붙은 '방 하나를 임대'한다는 전단지를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부동산 직원은 나를 작은 아파트 단지로 데려갔다. 좁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4층까지 올라가니, 현관문이 활짝 열린 오른쪽 집이라고 알려주었다.

복학 후 살던 열두 평 집 (2023년, 베이징 출장 중)

안으로 들어가니, 12평 정도 되는 작은 아파트가 나왔다.

임시로 세운 가벽이 방을 세 개로 나누고 있었다. 현관문 오른쪽 중간 크기의 방에는 학교를 졸업한 여선배들이 2층 침대 두 개를 놓고 살고 있었고, 현관문 바로 앞의 방에서는 한 쌍의 남녀가 가벽으로 만들어진 두 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을 함께 쓰고 있었다. 나는 현관문 왼쪽의 세 방 중 가장 큰 방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그 큰 방의 월세를 혼자 지불하기 어려워 친구들을 룸메이트로 들였다. 결국 이 작은 12평 집에는 4명의 남자와 4명의 여자, 총 8명이 함께 살게 되었다.

이 좁은 12평의 아파트에서 임시 가벽까지 세워 방을 나눈 터라, 같이 사는 8명 중 한 명이라도 통화를 할 때면 모두가 함께 통화하는 기분이 들었고, 하교 후 집에 들어오면 아무리 작은 소리로 대화해도 누가 무슨 사정이 있는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사생활이란 것은 사치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삶이었다.

화장실은 이보다 좁았다 (사진출처 : 요우트립)

군대를 제대하고 혼자 기숙사 방을 얻을 계획이었는데, 나는 다시 단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환경은 군대보다도 열악했다.

첫째, 아침저녁 시간의 화장실 사용은 전쟁과도 같았다. 여덟 명이 하나의 화장실을 쓰는 것은 군대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두세 명의 차례를 기다려야 했고, 급할 때는 주변 공중 화장실 위치를 잘 알아둬야만 위기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여러 명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냄새가 나고 더러워지는 것이 당연했으며, 샤워를 할 때는 몸을 돌릴 수 없을 만큼 비좁았다.

둘째, 하나밖에 없는 세탁기를 사용하는 것은 눈치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주로 아주 이른 아침이나 주말에 몰아서 빨래를 하곤 했다. 세탁기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 빨래를 꺼내려 손을 넣으면 물에 전기가 흐르고 있어 감전당하기 일쑤였고, 탈수를 할 때는 세탁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앞으로 뒤뚱뒤뚱 걸어 나와, 그걸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다 탈수 중인 세탁기와 씨름하곤 했다.

셋째, 현관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았다. 막 제대해서 겁이 없는 편이었지만, 귀중품이 없어질 위험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여권 같은 작은 귀중품은 몸에 지니고 다닐 수밖에 없었고, 외출 시 가지고 다닐 수 없는 부피가 큰 물건들은 없어지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같이 사는 사람들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현관문이 잘 잠기지 않아 외부인이 쉽게 침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개미집에서 피어나는 꿈

개미집에서의 생활은 매일매일이 도전이었다. 나와 방을 함께 쓴 두 명의 룸메이트 중, 한 명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이사를 나갔다. 결국 나는 절친한 친구와 둘이서 방을 나눠 쓰게 되었다. 세네 평 정도 되는 방에는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중고 침대가 하나, 벽 한 편에는 낡은 책상들이, 다른 한 편에는 헹거가 놓여 있었다. 좁은 공간에 침대, 책상, 헹거가 놓이니 걸어 다닐 수 없을 만큼 방이 꽉 차 있었다. 방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개인 공간은 초등학생도 쓰지 않을 작고 낡은 중고 책상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밤이 되면, 방 안은 작은 스탠드 등 하나에 의해 은은한 빛을 띠었다. 스탠드의 불빛 아래, 나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책들과 함께 앉아 공부를 했다. 책상 위에는 군대에서 훈련 시 위장 크림을 바르고 찍은 사진들을 붙여놓았다. 그 사진들을 보며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고, 다시 중국에 오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을 느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책을 펼치고 노트에 필기를 하며, 중국에서의 학문적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가끔씩 책상에 쌓인 책들 속에서 나는 미래의 꿈을 찾았고, 그 꿈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열심히 공부했다.

화장실 사용은 전쟁과 같았고, 세탁기를 사용할 때면 감전이 두려웠지만, 그런 불편함도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에서의 생활이 고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매일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내가 이곳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좁은 방에서의 작은 불빛이 나의 꿈을 비추어주며,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었다.

마지막 갈등과 이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미집에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함께 살던 중국인 남자와 심각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내가 다니는 학교를 졸업한 세 명의 여선배들은 퇴근이 늦어 주말에나 겨우 한두 번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을 뿐,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동거하는 중국인 남자는 나와 동갑이었고, 다른 사람들보다 퇴근이 빨라서 시간이 맞으면 저녁을 함께하는 일이 잦았다.

그는 베이징 중의약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로, 한 제약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경제 사정도 개미족의 삶답게 녹록지 않았고, 여자친구와 함께 한 평짜리 작은 방에서 미래를 꿈꾸며 지내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얹혀 있는 무거운 짐이 때로는 한숨으로 흘러나오곤 했다.

그날도 우리는 집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맥주에 양꼬치를 곁들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을밤, 술기운이 오른 그는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국이 중국 역사의 일부인 것 알고 있어?"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침착하게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말투와 태도는 마치 내 대답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했고, 결국 나도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외국인 신분을 잊고 따지기 시작했다.

"송나라는 원나라에 정복된 적 있으니, 지금의 중국은 몽골 역사의 일부야?"

내가 따박따박 따지듯 말하자, 그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도 중국 학교에서 배운 대로, 중국 중심의 역사와 동북공정을 믿고 있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는 그의 무지하고 황당한 주장을 참아 넘길 수 없었다. 우리는 마치 각 나라의 대표가 된 것처럼 서로 다른 역사적 기록을 두고 말로 맞붙었고, 그 결과 서로에게 사과를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이후 우리는 이전처럼 가깝게 지낼 수 없었고, 이 사건은 내가 개미집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어려운 결심 끝에 중국인들과 함께 살기로 했지만, 떠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결국 나는 개미집에서 한 학기밖에 버티지 못했고, 다음 학기에 다른 집을 찾아 나섰다.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청춘의 기억

개미족의 삶을 함께했던 8명의 남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이십 대 중반의 꽃다운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의 무게를 처음으로 온전히 느끼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들이었기에, 아마도 그들은 나에게 말하지 못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를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생처럼, 친구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아쉽게도 반년밖에 그 집에 머물지 못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우리는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들은 그 집에서 계속 살았을까? 아니면 명문 대학을 졸업한 만큼, 금방 돈을 모아 더 나은 곳으로 이사 갔을까?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베이징의 명문대를 졸업했고, 베이징 후커우를 가진 그들이니, 아마도 지금은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베이징의 밤거리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모습, 작은 집에서 서로를 위해 미소 지어주던 얼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리가 함께 보낸 그 시절의 기억이 그들 마음속에도 소중히 간직되기를, 그리고 그 기억들이 때때로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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