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여도 괜찮아 #8
발을 배 두 척에 걸치다
하얼빈행 기차에 오르다
현재는 중국에 고속열차가 완전히 보급되어 베이징에서 하얼빈까지 다섯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새마을호 같은 느린 기차를 타야 했다. 중국 기차는 설국열차처럼 다섯 등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편안한 침대칸, 딱딱한 침대칸, 편안한 의자칸, 딱딱한 의자칸, 그리고 입석이다. 나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저렴한 딱딱한 의자(잉쭈오)를 선택했다.
기차가 출발하고 한두 시간 지난 뒤, 화장실을 다녀오니 처음 보는 중국 아저씨가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좌석표를 보여주며 내 자리라고 말했지만, 아저씨는 갖은 핑계를 대거나 눈을 감아버리며 10분을 버티다가 결국 자리를 돌려주었다. 화가 났지만, 그보다 안하무인인 사람에게 당연한 것을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후에는, 화장실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14시간 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물건이 없어질까 봐 잠도 자지 못한 채 불안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느릿느릿 하얼빈으로 향했다.
하얼빈에 도착했다. 중의약 대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 마중 나왔다. 그는 자신을 하얼빈에서 한국인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괴짜라고 소개했다. 동창의 집에서 머물며 일주일을 함께 지내보니, 그의 주변에는 정말로 단 한 명의 한국인도 없었고, 오직 중국인들뿐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일주일만 하얼빈을 체험하고 베이징으로 돌아가려 했던 나는 오히려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수도인 베이징을 떠나기 싫었지만, 고민이 거듭될수록 베이징에 남는 것보다 하얼빈으로 옮기는 것이 진정으로 중국 사회에 깊이 들어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하얼빈으로 편입을 준비하기로 했다. 베이징의 친구들, 교수님들 모두 만류했지만, 나는 베이징에서는 중국의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어리석은 핑계를 스스로 인정하기로 했다.
하얼빈, 낭만과 장첸의 도시
겨울이 되면 오후 4시 아직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해가 지고 긴 밤이 시작되었다. 10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시간에 해가 지기에 낮보다 밤이 익숙했고, 일 년 중 절반이 겨울이었기에, 한국에서 벚꽃이 만개하는 4월까지도 두꺼운 패딩을 입고 다녀야 했다.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20도였으며, 한겨울에는 최저 기온이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고 최고 기온도 영하 20도 밑돌았다. 한 번은 고개를 숙이고 패딩 지퍼를 올리다가, 영화 "덤 앤 더머"의 한 장면처럼 패딩 지퍼에 입술이 붙어버려, 이를 떼어내다가 상처가 난 적도 있을 만큼 하얼빈은 명실공히 극도로 추운 곳이었다.
장첸들이 사는 하얼빈
베이징과는 다른 하얼빈
나는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송금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학기 초에 한국에서 부모님이 주신 돈을 신문지로 돌돌 말아 캐리어에 깊숙이 넣어 중국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하얼빈 공항에서는 베이징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했다. 캐리어 안의 돈뭉치를 X-ray로 발견한 검색 요원들이 나를 창문 없는 사무실로 데려갔다. 어둡고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가며 돈을 일부라도 빼앗길까 걱정되었다. 나는 중국어를 서투르게 하는 어리숙한 한국인 유학생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최대한 반성하는 표정으로 중국어로 미안하다고 더듬더듬 말하며 그들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두 검색 요원은 서로를 마주 보며 심사숙고한 끝에, 학생이니 봐준다는 말로 나를 놓아주었다.
캐리어 안에 1년 치 학비와 생활비가 들어있어서 걱정되었지만, 이 택시를 타지 않으면 공항의 딱딱한 의자에서 밤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고 택시에 올랐다.
새벽 한 시, 불안한 내 마음을 뒤로하고 택시는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택시는 계속해서 외진 곳으로 달려가다가, 결국 철문이 굳게 닫힌 외길에 들어섰다. 택시 기사는 차를 멈추고 내려서 철문에 묶인 쇠사슬을 풀었다. 택시를 철문 안쪽으로 몰고 들어가며, 우리는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의 외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번져 나오는 어둠과 함께 차 안에서는 장첸을 닮은 택시 기사의 모습은 나를 더욱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차게 했다. 얼마나 멀리 외길을 달렸을까. 택시 기사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무언가를 뒤적뒤적 찾기 시작했다. 나는 겁에 질려 '돈과 짐은 버리자, 죽도록 달리면 도망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택시 기사는 몽키스패너를 들고 내 옆을 지나쳐 택시 앞 번호판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작업을 마친 후, 택시 기사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앉았다. 다행히 돈이나 안전에 대한 위협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대로로 나오기까지 마음이 불안했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집 근처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택시 기사에게 번호판을 교체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을 피하기 위해 돌아왔고 CCTV에 걸리지 않기 위해 번호판을 교체했다고 말했다. 나는 선량한 택시 기사를 오해한 것을 미안해하면서도, 내 목숨을 살려준 것으로 생각하고 택시 요금에 추가로 이만 원을 더해 주었다. 택시에서 내리고 나서는 뒤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갔다.
그날 밤, 나는 불안에 가득 찬 마음으로 방문까지 잠그고, 돈뭉치를 안고 한동안 잠을 청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