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여도 괜찮아 #10
이해받지 못하는 선택
얼마 전, 부부모임을 하는 중, 하얼빈으로 편입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질문을 받았다.
나는 살면서 이 질문을 수백 번도 더 받았다. 나는 난감한 질문 앞에서, 솔직하게 중국 사회와 문화에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서 선택했다고 대답하기도 했고, 혹은 적당하게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기도 했다. 특히 면접에서 이 질문을 받을 때면, 왜 굳이 베이징의 번화함을 떠나 춥고 외진 하얼빈으로 '다운그레이드'까지 하며 편입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얼빈에 편입한 첫 해에는 이 질문을 더욱 많이 받았다. 베이징에서 내가 다녔던 학교는 최고의 명문대는 아니었지만,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곳이었다. 그에 반해 하얼빈으로 편입한 후, 동급생과 선후배들, 교수님, 심지어 복덕방 아저씨까지도 왜 그렇게 좋은 곳을 떠나 하얼빈으로 온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두 마리 토끼 잡기
하얼빈으로 편입하기로 한 결정은 중국 사회와 문화, 그리고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하는 나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수도를 떠나 지방 도시 하얼빈으로 향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리석고 손해를 보는 행위로 비쳤을 것이다. 이 점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얼빈에는 베이징의 화려한 왕푸징도, 마천루가 즐비한 산업 단지도,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노리며 대거 진출했던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차이나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들조차 찾기 어려웠다.
나는 내 결정에 책임을 지기 위해 취업이라는 결과를 반드시 이뤄내야 했다. 하지만 유학생 신분으로서는 취업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했다. 그래서 군 제대 후, 중국으로 돌아오기 전, 한국에서 재학 중인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선배들이 어떻게 취업했는지에 대한 성공담을 들으려 애썼다. 나는 취업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친구에게 물었다. “문과는 취업에 어떤 스펙이 필요해?”
사대문 안의 학교에 다니는 친구는 답했다.
“99 클럽에만 들어가면 돼. 중국어 HSK 9급, 영어 TOEIC 900점이면 어디든 골라서 갈 수 있어!”
집에 돌아와 인터넷 카페(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에서 확인해 보니, 정말로 99 클럽이 있었다. 친구의 말이 전적으로 한국 명문대생들에게만 해당된다고 해도, 적어도 당시에는 높은 스펙인 99 클럽에 들어가면 내가 목표하는 바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내 목표를 99 클럽(중국어+영어)이라고 정하고, 하얼빈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다짐했다.
구구클럽
중국에서 유학하는 나에게 중국통이 되는 것은 당연한 목표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먼저 혼자 사는 집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베이징에서는 절친과 함께 아파트를 임대해 살면서 중국어로 대화하려고 애썼지만,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혼자 사는 숙소를 알아보려고도 했지만, 높은 월세는 큰 부담이었다. 반면, 하얼빈은 월세가 저렴하여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혼자 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혼자 사는 것은 외로웠지만, 집에서 한국어를 사용할 일이 사라졌고, 남은 2년 동안 오직 중국어로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한국인 친구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가능한 모든 인간관계를 끊었다. 절친을 제외하고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로 했다. 하얼빈에 와서 몇 만 원도 안 되는 술값과 나이 차를 무기로 소주를 냉면 그릇에 부어 원샷 시키는 일부 수준 낮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물론 모든 관계를 완벽히 끊는 것은 어려웠다.
특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호리키와 비슷한 친구는 내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꾸짖으며 설교하는 것을 좋아했다. 호리키는 진급 시험에 계속 실패했지만, 나는 그의 진급과 졸업을 돕고, 중국 유학 중에는 그의 부족한 술값을 매달 빌려주기도 했다. 그런 호리키의 반복되는 가르침과 부족함을 인정하라는 강요에 가끔 부아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이제 어른이 되어 한국에서 좋은 대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를 실감하게 된다. 좋은 친구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혼자만의 미래를 개척하지 않아도 좋은 선후배들의 길을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HSK 9급은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었다. 물론 HSK는 리스닝, 리딩을 포함하여 작문까지 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이었지만 하얼빈에서 나는 스스로 중국통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중국어 실력이 부쩍 성장해 있었기에 조금의 노력을 곁들여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었다. 하얼빈에서는 꿈도 중국어로 꾸곤 했으니, 내가 원하는 만큼 중국의 사회와 문화에 깊이 들어가 봤다고 회고할 수 있다.
해외영업 분야에서 영원히 일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처음 이 분야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거나 면접에서 그 능력을 어필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하얼빈에서 공부하는 동안 영어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충분한 자금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하얼빈의 학비는 약 7,000위안(130만 원)으로, 베이징의 학비인 약 12,000위안(250만 원) 보다 훨씬 저렴했다. 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남은 학비로 하얼빈에서 영어 학원에 장기 등록할 수 있었다. 학원을 마음껏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혜택이었다.
마치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처럼 학교가 끝난 후에도 매일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학원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내가 유학생인지 고3 수험생인지 헷갈릴 정도로 학업에 매진했지만, 내가 정한 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굳게 믿었다.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과 노력을 더 쏟았던 덕분에, 나는 제때 99 클럽(HSK 9급, TOEIC 900점)에 들어갈 수 있었고, 부모님께도 학비가 헛되게 쓰이지 않았다는 작은 희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99 클럽은 하얼빈으로 편입한 가장 중요한 목표였고 편입의 명분이기도 했다. 비록 단순하지만,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하얼빈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스스로 선택한 도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하얼빈에서의 하루하루는 마치 한 권의 두꺼운 책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침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집에서 나와 학교로 향하던 그때, 기운이 빠질 법도 했지만, 나는 언제나 열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중국어 학습을 위해 혼자 사는 작은 방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발음 연습을 했던 순간들, 그리고 영어 학원에서 마주한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모두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때의 나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했다. 하얼빈에서의 이 모든 경험은 나에게 끝없는 가능성과 도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의 삶은 비록 외로웠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갔다.
이제 돌아보면, 하얼빈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단순히 학문적 성취를 넘어, 삶의 교훈을 가르쳐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99 클럽'이라는 목표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으며,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과 성장,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법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