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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May 25. 2024

하얼빈, 낮보다 밤이 긴 도시 (3)

호구여도 괜찮아 #10

이해받지 못하는 선택


얼마 전, 부부모임을 하는 중, 하얼빈으로 편입한 지 20년이 지난 나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왜 베이징에서 하얼빈으로 편입을 하신 거세요?" 


나는 살면서 이 질문을 수백 번도 더 받았다. 나는 난감한 질문 앞에서, 솔직하게 중국 사회와 문화에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서 선택했다고 대답하기도, 혹은 적당하게 둘러대기도 했다. 특히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면접관은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에 대해, 나의 인품과 성취 혹은 삶에 대한 태도로 다른 부족한 부분을 이해해 줄 수 있다고 해도, 도대체 왜 굳이 베이징에서 하얼빈으로 '다운그레이드'까지 하며 편입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쉽사리 풀지 못했다. 솔직하면서도 명쾌한 답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은, 나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하얼빈에 편입한 첫 해는 더욱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베이징에서는 최고의 명문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름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학교에 재학했었다. 하지만 하얼빈에서 편입한 학교에서 급생과 선후배들, 교수님 그리고 심지어 복덕방 아저씨까지도 굳이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떠나 춥고 밤이 긴 하얼빈에 왜 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틀린 결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다시 한번 노력을 다짐했다. 계획한 성장의 길에서 한시도 이탈하지 않도록 스스로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하얼빈에서의 생활은 나에게는 굳은 약속이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두 마리 토끼 잡기


하얼빈에서 두 마리 토끼(중국어+영어)를 잡고 싶었다


하얼빈으로 편입하겠다는 결정은 중국 사회와 문화, 그리고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하는 나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수도를 떠나 지방 도시 하얼빈으로 향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리석고 손해를 보는 행위로 보였을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얼빈에는 베이징의 화려한 왕푸징도, 마천루가 즐비하고 글로벌 기업이 앞다투어 중국 사업을 확장했던 산업 단지도, 차이나 드림을 꿈꾸는 푸른 눈의 외국인들도 찾기 어려웠다.


나는 내 결정에 취업이라는 결과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유학생 신분으로서, 취업에 있어 가장 부족한 것은 정보였다. 그래서 제대 후 중국으로 돌아오기 전, 최대한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 그들의 선배들이 어떻게 취업했는지 성공담을 들으려 노력했다. 나는 취업이라는 목표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친구에게 물었다. "문과는 취업에 무슨 스펙이 필요해?" 사대문 안의 학교에 다니는 친구는 대답했다. "99 클럽에만 들어가면 돼. 중국어 HSK 9급, 영어 TOEIC 900점이면 어디든 골라서 갈 수 있어!"


집에 돌아와 인터넷 카페(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에서 확인하니, 기쁘게도 99 클럽이 실제로 있었다. 친구가 어디든 골라서 갈 수 있다고 말한 건, 한국 명문대생에게만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당시에는 높은 스펙인 99 클럽에 들어가면 나 또한 내가 목표하는 바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란 작은 희망이 생겼다. 


나는 나의 목표를 99 클럽(중국어+영어)이라고 이름 짓고, 하얼빈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다짐했다.




구구클럽
어릴 적 좋아하던 구구콘


첫째, 중국어 (중국통이 되기 + HSK 9급)

중국에서 유학하는 내가 중국통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이를 위해 혼자 사는 집을 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베이징에서는 절친과 함께 아파트를 임대해 살면서 중국어로 대화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사는 숙소를 구해보려고도 했지만 개미집까지 알아봤음에도 높은 월세는 나에게 큰 부담이었다. 반면, 하얼빈은 비교적 월세가 저렴했기 때문에 유학 생활 처음으로 혼자 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혼자 사는 것이 외롭기는 했지만, 하교 후 집에서 한국어를 사용할 일이 사라졌고, 남은 2년 동안 오직 중국어로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그 후, 한국사람과의 관계는 있으면 정리했고 시작하지 않았다.

절친을 제외하고 모든 관계를 끊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하얼빈에 간 후, 몇 만 원도 안 되는 술 값과, 몇 살 많은 나이를 무기로 냉면그릇에 소주를 가득 채워 원샷을 시키는 일부 저열한 한국인 유학생들로부터 드디어 멀어질 수 있었다.

물론 완벽히 모든 관계를 끊어낼 수는 없었다. 특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호리키를 닮은 친구는 나를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꾸짖고 설교하는 것을 좋아했다. 호리키는 진급 시험에 늘 실패했으나, 나는 그의 진급부터 졸업까지를 옆에서 도와줬다. 게다가 중국 유학 내내, 베이징에서부터 하얼빈까지 그의 부족한 술값을 위해 매달 돈을 빌려줘야 했다. 그런 호리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무렇지 않은 척 나름 노력했지만, 지치지 않고 반복되는 그의 억지 가르침과 부족함을 인정하라는 강요에 부아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어른이 된 후, 이따금씩 한국에서 좋은 대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가 실감이 된다. 좋은 친구를 만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는 것, 혼자만의 미래를 개척하지 않아도 좋은 선후배들의 길을 참고할 수 있다는 것, 당시의 나에게는 불가능하였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가능하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HSK 9급은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었다. 물론 HSK는 리스닝, 리딩을 포함하여 작문까지 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이었지만 하얼빈에서 나는 스스로 중국통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중국어 실력이 부쩍 성장해 있었기에 조금의 노력을 곁들여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었다. 하얼빈에서는 꿈도 중국어로 꾸곤 했으니, 내가 원하는 만큼 중국의 사회와 문화에 깊이 들어가 봤다고 회고할 수 있다. 




둘째, 영어 (기본 회화 능력 + Toiec 900점)

지금까지 15년 이상의 직장 생활을 하며 많은 시간을 해외영업이라는 부분에 종사해 왔다. 때문에 많은 선후배를 봐왔는데, 선후배들 대부분 2개 국어(중국어+모국어) 혹은 3개 국어(중국어+영어+모국어)가 가능했고, 오히려 2개 국어보다 3개 국어가 가능한 이들이 많았다. 때로는 4개 국어(중국어+영어+일본어+모국어)가 가능한 후배와 함께 일하기도 했는데, 이 친구는 중국어를 영어로, 다시 영어를 일본어로 통역할 수 있었다. 이 친구는 그야말로 뛰어남이라는 단어의 표본이었다.


비록 해외영업이라는 분야에 영원히 종사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지만, 처음에 이 분야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 국어를 흉내 낼 수 있거나, 아니면 면접에서 그 능력을 어필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하얼빈에서 공부하는 동안, 영어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마음껏 돈을 쓰기로 결심했다.


하얼빈의 학비는 약 7,000위안(130만 원), 베이징의 학비는 약 12,000위안(250만 원) 수준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 남는 학비로 하얼빈에서 영어 학원에 기 등록을 할 수 있었다. 학원을 마음껏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혜택이었다. 마치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처럼 학교가 끝나고도 매일 늦은 시간까지 원에 남아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원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때로는 내가 유학생인지 아니면 고3 수험생인지 헷갈렸고, 나가서 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가 정한 길이 옳다는 것을, 적어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과 노력을 더 할애한 덕이었는지, 늦지 않게 99 클럽(HSK 9급, Toeic 900점)에 들어갈 수 있었고, 부모님께도 학비가 헛되게 쓰이지 않고 있다고, 작은 희소식을 전달드릴 수 있었다.




중국어 (중국통이 되기 + HSK 9급) +  영어 (기본 회화 능력 + Toiec 900점) = 99 클럽

99 클럽은 하얼빈으로 편입한 가장 중요한 목표고 편입의 명분이기도 했다. 비록 단순하지만,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하얼빈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스스로 선택한 도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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