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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May 25. 2024

하얼빈, 낮보다 밤이 긴 도시 (2)

호구여도 괜찮아 #9


하얼빈에서의 젊은 날


하얼빈에서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도전할 수 있었다.


첫째, 혼자 자취를 했다.

베이징에서 빌리는 돈의 절반으로 나 혼자 쓸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빌려 혼자 살았다. 집에서 나갈 때와 돌아올 때 변함없는 풍경이 어색하고 외로웠지만,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과 자유로움이 밀려왔다. 비록 그리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방과 주방이 있었고 깨끗한 집이었다. 나는 혼자 DVD 플레이어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주말에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작은 즐거움을 누렸다. 샤워 후 냉장고에서 꺼낸 캔맥주를 마실 때면 마치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패딩을 입고 이불안에 있어야 추위를 견딜만 했다


그러나 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전기장판을 켜두고 이불 안에서 패딩을 입고 지내는 날이 많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창문 새시에 전선이 들어오는 작은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을 휴지를 돌돌 말아 막고 나니 추위가 한결 참을 만해졌다. 수영장 월 정액권을 결제하고,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건강한 라이프 사이클을 만들 수 있었던 점이 참 좋았다. 하얼빈에서의 삶은 베이징에서 느낄 수 없던 작지만 소중한 자립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둘째, 혼자 여행을 자주 떠났다.

나는 혼자 여행을 자주 떠났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먼 곳은 꿈꾸지 못했지만, 하얼빈에서 저렴한 기차표를 사서 가까운 곳들을 여행했다. 혼자서 러시아 국경을 찾아가기도 하고, 내몽골에서 양 수천 마리를 놀라게 했다가 칼을 찬 몽골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오기도 했다.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은 내 주무대였다. 길림, 장춘, 선양, 대련 등을 갔고, 기차를 타고 가다가 아무 곳에나 내려서 이름 모를 시골의 잔디밭에 홀로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였으며, 송화강 혹은 목단강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하였다.


내몽골 몽구바오에서 중국 학생들과 하루를 보냈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쯤, 나는 느닷없이 여행을 떠나곤 했다. 어느 날 밤, 저녁 12시에 하얼빈역으로 걸어가 여행을 시작했던 기억도 있다. 경비는 항상 최소한으로 줄였다. 중국의 일일 노동자나 학생들이 머무는, 하룻밤 2000원짜리 여인숙에서 자는 일이 많았다. 스티로폼 벽으로 나누어진 방이었지만, 중국 생활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그런 허름한 숙소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식사는 주로 중국 사람들에 섞여, 2000원을 넘지 않는 국수나 만두로 해결했다. 아마도 그때 유튜브가 있었다면, 나는 중국의 작은 마을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을 것이다.




셋째, 친구들과 길거리 장사를 했다.

하얼빈 유학 생활 중에 손에 꼽히는 추억이다. 절친은 어느 날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나 중국에서 김밥 장사 해볼 거야, 너도 같이 할래?"

망설임은 있었지만, 추진력이 기가 막힌 친구의 설득에 따라 나는 그 도전을 함께하기로 하였다. 다만, 길거리에서 김밥을 파는 것만은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설마는 늘 현실이 되곤 다.


하얼빈 야시장, 이즘 어딘가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하얼빈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하얼빈 대학로에서 중국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김밥을 팔기로 결정했다. 대학로 간식거리에는 양꼬치, 마라 꼬치, 중국식 구운 냉면 등 1위안~15위안 정도에 팔고 있었다. 우리가 팔게 될 김밥은 건강한 한국 음식을 콘셉트로, 한 줄에 15위안(당시 2500원 정도)으로 정했다.


친구는 작은 리어카를 사 왔고, 우리는 리어카를 작은 가게로 꾸미기 시작했다. 리어카 중간에 앉을 수 있는 작은 나무 의자를 올리고 김밥을 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투명 아크릴판을 둘러 세웠다. 리어카 주위 잘 보이는 곳에는, 두꺼운 마카팬으로 留学生紫菜包饭 (유학생 김밥)이라고 정성스레 썼다. 작은 가게가 완성되었다.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첫날, 김밥 옆구리가 터질 때마다 웃음을 터트렸던 우리들은 점점 더 능숙해졌지만 오십 줄 이상을 만들지 못했다. 문제는 단순히 김밥만 마는 것이 아니라, 재료 손질(시금치, 당근, 계란, 고기 등을 볶고 부치고 김밥에 넣기 좋게 다시 칼로 자르는) 과정이 오래 걸렸고 김밥을 만들다 보면 중간에 늘 부족한 재료가 있어, 느린 손으로 부족한 재료부터 다시 만들기를 반복해야 했다.


드디어 첫 장사가 시작 됐다. 

하얼빈 대학로에는 북적거리는 대학생들의 활기찬 목소리로, 여기서 장사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이미 시작된 일 앞에서 용기는 필수였다. "紫菜包饭!! (김밥!!)" 어색함을 내려놓고 크게 손님들을 향해 반복해서 외쳤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신기한 듯 쳐다보고 주위를 맴돌 뿐, 한국인이 어색한지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어색했던 외침이 점점 자연스러워질 때 즘, 김밥이 서서히 팔리기 시작했다.


김밥의 맛에 감탄하며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했고, 한국 유학생이 리어카에 앉아서 김밥을 만드는 모습을 신기했는지 지켜보기도 했다. 더불어 당시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있었던 절친은 장사에 꽤나 큰 도움이 되었다. (손님의 80%가 여학생이었다) 김밥은 한 줄을 만들면 한 줄이 팔렸고, 손님들은 줄을 서서 김밥을 사려고 기다렸다. 우리는 하얼빈 대학로의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김밥 장사는 사실 절친이 추진한 열정의 결실이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책을 좋아하고 김밥 장사를 하자던 추진력이 좋은 절친은, 지금은 중국인 아내와 결혼하여 한국에서 식당, 편의점, 펜션 등을 가진 '부자아빠'가 되었다. 우리는 김밥을 팔며 부자가 되진 못했지만, 김밥을 팔았던 추억만큼은 지금도 단골 안주거리가 되어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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