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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현지 Aug 02. 2023

시치미를 달다*

나는 너를 응시한다 

구멍 속에서 이파리들이 들썩인다 

숨이 가빠온다 

언덕을 오르는 장면 


바위에 웅크린 

뱀 한 마리, 

입 또는 항문으로 

무늬를 뱉어내고 있다 

누군가 당신의 모습을 

삼 달러에 판다 


너머에 기차가 달린다 

매를 푼다 

발목에 끈을 묶어 횃대에 앉히고 

공포심과 적개심을 없애도록 

연습해본다 

어깨 위 당신을 바라보는 도마뱀 

도마뱀은 자꾸만 번식한다 

도마뱀은 도마뱀으로 쌓여간다 


무릎만으로 기어갈 수 있는가 

가장 내부의 썩고 곪은 상처를 더듬으며 

사과를 깎는다 

얼룩은 내부로 번져가니까 

상처 난 사과는 누군가 빨리 먹어야 한다고 답한다 

바구니에서 기어 나온다 

바구니는 

차분하게 담길 열매를 기다린다 

매가 뱀의 사지를 찢는다 


매를 받는다 

식탁 앞에 앉아 창문을 바라본다 

호텔 건물은 부서짐을 반복한다 

머리를 말린다 

날카로운 못의 길이를 가늠하면서 

바람의 세기를 조절한다 

머리에 끼워둔 인조 사자 깃털이 사방에서 휘날린다


썩은 사과는 행복하다는 사실로부터 

철거는 아직도 한창이다 




*시치미를 단 평범하지 않은 야생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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