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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구름 Sep 03. 2024

로드 FC 경기를 보고 왔습니다.

승자의 화려함 반대쪽엔 패자의 처절함이 있었습니다.

격투기를 아주 좋아하는 강 00 배우덕에 원주에 살면서 코앞에서 열리는 원주 로드 FC 경기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로드 FC 격투단체를 이끄는 정문홍 대표가 원주 출신이어서 원주를 연고지로 로드 FC를 이끌고 있습니다.)


UFC(세계최대격투단체)에만 관심이 있었고 김동현, 정찬성, 최두호 등 주로 우리나라 선수들이 경기할 때만 찾아보던 나였는데 실물로 아는 선수 하나 없는 시합을 보려니 재미있으려나? 반신반의하면서 경기가 열리는 원주종합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입장할 때부터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다른 곳은 물이나 음료 한 병 정도를 주는데 여기는 입구에서부터 건강음료 한 박스를 통째도 주더라고요 그래서 까다롭게 뭘 적고 그래야 하나 생각하는 찰나 몸은 벌써 음료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고 어느새 묻지도 따지지도 않 음료 한 박스가 통째로 품 속에 있더라구요 `역시 시작부터 화끈하네` 생각이 들며 심장을 울리는 음악소리와 더불어 기대감이 점점 올라왔습니다. (나중에 중계를 보니 여기저기서 건강음료 박스가 무조간 카메라에 걸리더라고요 그래 괜히 주는 게 아니었어 기가 막히게 홍보를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경기를 보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중계로만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연출의 의지로만 화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선택권은 채널을 돌리거나 더 보거나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경기는 승자와 패자의 교차점이 가슴을 아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승자의 세리머니와 트로피 그리고 인터뷰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다 그에게 비춰졌습니다.

그 반대쪽 어두운 조명 하나도 없는 링 구석, 패자의 걸음걸음을 따라 더욱 씁쓸해지는 퇴장로, 시원하게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선수들은 하나도 없더라구요 주저앉거나 울거나 링을 다시 쳐다보거나... 이 경기를 위해 몇 달 동안 고생고생하며 노력했을 텐데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는 이 경기장 안에서 그들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한 선수가 링에서 나와 내려가야 할 계단을 두고 한동안 내려가지를 못하고 쓰러질 거 같은 몸을 붙잡으며 자책했다가 울었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현실부정을 하는 모습들을 봤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물론 냉정한 프로세계지만.. 그들의 땀과 노력이 단순히 이분법적인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룰 안에서 부정되어진다는 것이 참 불공평해 보였습니다. 승자의 시선은 대부분 위쪽으로 향해있는 반면에 패자의 시선은 대부분 아래쪽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렵고 실패하고 낙담할 때 고개를 들어 라고 말하는가 봅니다.


비록 패자의 아픔을 맛보았지만 그들이 열정적으로 임했던 경기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들은 패자가 아니다 단지 그들의 이번대회 여정이 여기까지인 것입니다. 바로 다음을 준비하는 선수들도 있을 테고 그만두고 싶은 선수들도 있을 테고 이를 악물고 악바리같이 처절하게 훈련을 하려고 마음먹는 선수들도 있을 테지만 오늘 내가 본 경기에서 승자는 케이지에 오르는 둘다였습니다.


다른 운동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감을 맛볼 수밖에 없는 격투기라는 운동이 사람들에게 주는 쾌감이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재미라고 한다면 패배감 역시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패배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들은 거기까지 오르는데 이미 승자인셈거든요.


우연히 집앞에서 만난 키르키즈스탄 으르스켈디 두이세예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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