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개, 저기도 개

강아지들의 지상낙원 발리

by 김찐따

발리, 강아지들의 자유로운 천국

발리의 아침은 어디서나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와 개들의 활기찬 움직임으로 시작된다. (오늘도 앞집 개 두 마리는 아침 댓바람부터 뭐가 그렇게 서운했는지 서로 앙칼지게 싸우고 있다. 올려 쳐다보길래 손인사를 해주었더니 곧 조용하다.)


골목길, 해변, 논밭 어디를 가든, 개들은 마치 이 섬의 주인처럼 여유롭게 돌아다닌다. 한국에서라면 목줄 없는 개들의 활보는 상상도 못 할 풍경이지만, 발리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묶여 있거나 좁은 공간에 갇혀 있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아니면 집안 또는 거리, 그저 몸이 닿는 곳에서 알아서 제 입맛에 맞게 살아간다. 사람과 함께 길을 걷고, 해변에서 뛰어놀고, 논밭을 뒹굴면서 자연과 사람 그리고 같은 개들과도 밀접하게 어울려 지낸다. 도시든 시골이든 너나 할 것 없이 자유롭다.


줄지어 파도타기 놀이를 하는 발리 강아지들


발리에서 본 첫 반려동물 금지 조항

최근 이사한 집의 계약서를 보며 살짝 의아했던 적이 있다. 계약조건에 "반려동물(개, 고양이) 동반 금지"라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 집엔 개가 세 마리, 옆집엔 개가 두 마리.. (심지어 모두 대형견..) 개, 고양이들의 천국인 발리에서 반려동물을 금지한다니?라고 생각했는데, 집주인 KTP(신분증)를 다시 확인해 보니 그녀는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이슬람교 신자셨다.


이해를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인도네시아는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긴 하지만 (물론 헌법이 인정하는 5개의 종교 중에서만 가능) 의무적으로 종교를 하나씩 가져야 하고, 신분증에 종교란이 기재되어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는 지정하지 않았지만 국민의 87%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자카르타에 거주할 당시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개가 불결한 동물로 여겨진다는 것을 눈치로 알고는 있었지만, 개들의 천국인 발리에서 반려동물 금지라는 처음 보는 풍경이 이례적이긴 했다. 발리는 힌두 문화가 주류인 곳으로, 개와의 관계에서 이슬람교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지금까지의 나의 자카르타 생활도 이슬람교를 믿는 현지분들이 대다수였기에 발리에서 강아지가 맘껏 풀려 있는 모습이 신기하긴 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보다 보니, 결국 이러한 모습들은 단순 환경 차이만 아니라 문화와 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이슬람교와 발리의 힌두교에서 개의 의미


이슬람교에서의 개

이슬람교 율법에 따르면 개는 부정한 동물로 여겨진다.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언행록에서는 "개의 몸이나 타액에 접촉하면 씻어야 한다"라고 언급된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개와 접촉을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특히, 개의 코를 만지면 안 된다고 전해 들었다.


발리 힌두교에서의 개

반면, 발리 힌두교에서는 개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다. 개는 악령과 부정적인 힘을 막아주는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며, 사람들에게 영적인 평안을 가져준다고 믿는다. 집집마다 개 두어 마리는 기본적으로 키우고 있고, 개의 역할을 물어볼 때마다 'Penjaga(지킴이)'로서의 공동체 안전을 책임진다 했다.



발리의 개들과 사람 간의 관계

발리에서 개들은 단순히 반려 동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 자체가 '소유'의 개념이 아닌 것 같긴 하다. 대부분 길에 걸어 다니는 개들이 주인 없는 개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주인이 있는 아마 즐거운 산책 중인 개일 확률이 높다. 이곳의 개들은 산책을 정말 멀리멀리로 다녀 가끔은 떠돌이 개처럼 보일 때도 많다. (물론 주인 없는 개들도 당연히 많겠지만, 실제로 2km 이상의 먼 거리에서 동네 개를 만나 같이 집까지 돌아온 적이 있다... )


처음 길목에서 만나는 개들은 낯선 이를 경계하지만, 두세 번 마주쳐 낯이 익어지면 곧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친근함을 보인다. 이들의 충성심과 애정의 패턴은 사람들에 의해 배워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길 위에서의 경험으로 몸에 익힌 듯하다.


첫 집에서 아침마다 우리를 마중온 히로
굳이 골목 앞까지 마중 나와 나와 함께 골목을 걸어주는 도기
두 번째 집에서 아침마다 나를 마중 오는 요시와 모리 (참고: 나는 절대 남의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물 만줌..)
자기 멋대로 들어와 낮잠을 자고 나가기도 한다

나는 자카르타에서부터 한국에서도 개를 줄 곧 키워와서 개, 고양이 등 모든 동물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내가 생각하는 발리의 가장 최고 장점은 굳이 개를 입양하지 않아도, 이웃 강아지나 그 지역을 지키는 개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발리에 사는 개들과는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이 가능하다... (진짜다.. 진득이 우정을 쌓은 뒤 꼭 해보시길...)


그리고, 오늘도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발리는 집을 이사하면 새로운 강아지 가족이 생겨!!!!!!!!!!!!!!!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집에서는.. 다들 문을 꼭꼭 걸어잠구고 집안에서만 키우셔서, 아직 함께 어울려 지낼 강아지 동료를 찾지 못했다. 집도 반려동물 금진데.... 휴 옆집과 얼른 친해져야 겠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9화발리에서 맞이하는 명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