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맞이하는 명절

명절 + 가족의 부고 = 해외살이의 서러움에 대해여...

by 김찐따

지난주 중반, 그나마 데이케어를 해줄 곳을 찾아 아이를 등원시켰다. 하지만 채 적응도 하기 전에 2일이나 공휴일이 겹치면서 곧 아이의 등원 루틴이 다시 무너질 예정이다.(호호호호) 1월 27일 월요일 모하메드 승천일 (이슬람교) 1월 29일 수요일 Chinese New Year로 2일이나 쉬는 주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아이는 정해진 루틴에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라, 이렇게 학교를 갔다 안 갔다 하면 등원 컨디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지난주 금요일 왓츠앱으로 공휴일 공지를 받은 후 급히 학교의 달력을 확인했더니, 빨간색(공휴일)과 분홍색(텀브레이크)으로 가득 찬 일정이 눈에 들어왔다. 발리의 학교들은 대부분 글로벌 학사 일정을 따르며 다양한 국적과 종교를 가진 학생 및 교사가 모여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모든 주요 종교의 축일을 고려하고, 여름방학, 겨울방학의 길이도 길다.. 정말... 너무너무 쉬는 날이 많다. (아직 아이가 유치원생이어서 한국의 유치원과 비교했을 때의 경우다.)


빨간색(공휴일)/분홍색(텀브레이크)이 잔뜩 수놓아진 달력..


인도네시아에서 맞이한 설 풍경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종교적 공휴일을 인정하는 나라다.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천주교, 그리고 유교까지 모든 문화와 전통이 존중받는다. (1년에 총 15일~20일의 공휴일이 지정되어 있다.) 특히 화교가 많은 덕에 1월 29일 'Chinese New Year(설날)'도 현지의 중요한 명절로 자리 잡았다. 거리마다 빨간 등불이 걸리고, 용춤과 폭죽 소리가 울려 퍼지며, 'Gong Xi Fa Cai'라는 인사말이 넘쳐나는 이 시기는 따뜻한 가족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단지에선, 대부분의 집들이 중국계 화교 가정이라, 일요일 밤부터 북적북적 가족들이 오고 가는 소리가 시작됐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은 화목했고, 나 역시 그들의 따뜻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창문을 넘어 근근이 눈을 마주치는 그들에게 수줍은 눈인사를 건네며 올해 명절을 보낸다. (나도 엄마 떡국 먹고 싶다..)


명절과 겹친 가족 부고

명절의 분위기 속에 가족의 조사가 겹쳤다. 16년 동안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셨던 외삼촌이 급하게 응급실에 실려 들어가셨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외삼촌은 인도네시아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나와 나의 가족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었다.


엄마는 평소와 같이 일상 카톡을 대화를 이어가던 중에 그 부고를 전했다. "뭐 해 딸?"이라는 단순한 말로 대화를 이어가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마지막에 갑자기 "선, 삼촌이 하늘나라로 갔어."라고 말했다.

곧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미 돌아가신 지 3일이나 지났다는데,, 왜 그 사실을 이제야 말했냐 소리를 높여 운운하다 이내 엄마의 마음이 이해되어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엄마는 해외에서 아들과 단둘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를 걱정해 소식을 전할까 말까 고민했을 테고, 바로 올 수도 없는 상황이니 그 걸로 자식이 마음 아파할까 또 걱정했을 테고..


엄마의 30년 해외 생활도 또한 이랬으리라 하며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의 나라면 계속 나도 내 고집만 부리며 성질만 냈을 텐데, 참 아이를 낳고 나서 변해 가는 게, 이제는 엄마의 마음을 묻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가 간다.


엄마에게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 목소리를 높임과 동시에 생각이 든 건, 나도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발리로 다시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이의 학교 찾기 및 적응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도 하다.


잠깐 큰소리를 냈던 나는 괜히 멋쩍어 아빠 특유의 말투를 살려 장난치듯 이어서 말했다. "엄마도 이런 기분으로 해외살이를 했겠구먼,," 살짝 떨리듯 잠긴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나가 살면 뭐, 다 좋은 것만 있는 줄 알아? 그게 해외살이의 가장 큰 서러움이여ㅎㅎㅎ"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엄마의 말에는 수많은 감정이 응축돼 있었다.


그나마 작년 추석 때 삼촌의 얼굴을 봤던 것을 위안 삼기로 했다. 나의 외삼촌은 나의 아이를 정말 예뻐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늘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보라 조르고, 만나면 볼을 꼬집으며 내 아이에게 용돈을 쥐어 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가서 가족으로서 도리를 다 못했더라도, 분명 그는 좋은 곳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가족, 그리고 해외살이의 외로움과 그리움

해외에서의 삶은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이를 위해 이곳을 선택했지만, 동시에 내게 그리움이라는 무게를 안겼다. 생각지 못한 삼촌의 부고를 통해 가족과 함께하지 못해 준 미안함 또한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모든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나는 믿는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음 해에는 외로움 대신 감사함으로, 허전함 대신 따뜻함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싶다. 가족은 내 삶의 원천이고, 지금의 이 그리움 또한 앞으로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번 휴일도 힘내자 아들아 (억지로 끌려 나와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먹고 금세 신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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