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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칼렛 Dec 01. 2023

나에게 '추운 겨울날 달린다'는 것의 의미는

추운 겨울날 10km를 뛰고 얻게 된 3가지


추운 겨울날 '달리고 얻게 된 것들'을 언급하기에 앞서

저의 겨울에 대한 비호감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 계절의 선호도를 먼저 알려드리려 합니다.

살다 보면 이런 질문을 한번쯤은 받아보게 됩니다.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세요?



그때의 기분 따라, 인간의 전체 생애 주기 중 내가 어디에 해당되었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고착화되었습니다. 저는 여름 - 봄 - 가을 - 겨울의 순서대로 선호도의 순위를 매겨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름이 가장 좋은 이유는 모든 생물과 동물이 가장 활발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시원하게 콸콸 쏟아지는 폭포, 쩌렁쩌렁한 매미의 울음 사이로 그 싱그러움이 극에 달한 초록의 화려한 몸놀림, 새벽안개의 시원한 감촉도 추위에 대한 걱정 없이 만끽할 수 있는 계절, 무엇보다 해가 길어서 등산을 오래 할 수 있다는 점도 여름의 장점입니다. 행여나 제주도처럼 투명한 살색 모래사장에라도 가게 된다면 한 발짝씩 안으로 내딛을수록, 결국에는 깊이 들어가 나를 에워싼 살아있는 부드러움의 출렁이라도 느끼게 되는 때는 이상하면서도 황홀한 매력에 듬뿍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겨울은 제가 가장 꺼리는 계절입니다. 잎이 다 떨어진 황량한 가지와 숲을 보는 것도, 온갖 곤충과 동물들이 동면하러 들어가 자취를 감추는 것도, 차가운 날씨와 함께 서늘함과 공허함을 짙게 경험하는 것도 저에게는 반가움보다 어서 지나가 주기만을 바라는 편애를 가지게 합니다.

 제가 봄과 가을의 바라보는 관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봄은 겨울을 이겨낸 새싹의 트임이 있어서 좋고 가을은 잎을 떨어뜨리며 겨울을 준비하기에 그 서늘함으로 벌써 제 감정도 굳어져 가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선호도를 떨어뜨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 바람도 세차 마치 나의 귀를 때리는 것 같은 야속함을 느끼게 하는 날씨에 10km를 뛰고 왔다는 것은 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할까요?







전 추운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등산도 겨울에는 피하고 꺼립니다. 오늘 아침에는 낮 기온이 0~4도로 낮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절대 외부 운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오후에 내리쬐는 햇살을 느끼니 이 때다 싶어 냉큼 밖으로 나갔습니다. 순간적인 결정이었는지라 넥워머도, 장갑도 없이 얇은 면바지와 긴 티셔츠 그리고 얇은 바람막이 잠바만 걸친 채 무작정 냇가 옆 산책로로 차를 몰았습니다.



2023년 12월 1일 '글쓰는 스칼렛'의 달리기 기록




나에게 있어 추운 겨울날 '달렸다'는 것의 의미



1. 달리기에 대한 스스로의 약속 이행


올해 11월에 있었던 JTBC서울마라톤으로 '풀코스(42.195km)'에 대한 첫 도전이 시작되었고 내년 3월에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가 예약되어 있습니다. 겨울이 아무리 싫더라도, 차가운 전율이 저의 살갗 표면에 찌릿찌릿하게 흐른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2~3회의 연습, 한 번은 짧게 뛰고 한 번은 20km를 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첫 풀코스 때 걸으며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쓰라림에 대한 뉘우침이자 다음 풀코스 때는 기필코 달리며 5시간 안에 완주를 끝내겠다는 혼자만의 소심한 복수의 결심이기도 합니다.



2. 추위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


저는 요가, 달리기, 댄스, 등산을 할 때도 몸이 쉽게 데워지고 땀이 빨리 흐르는 체질이라 두텁게 입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는 초겨울 날씨에도 불과하고 산에 올랐는데 레깅스와 긴 티셔츠 하나에도 오를 때는 땀이 얼굴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정상에서의 급반전!

산의 능선을 타고 부는 거대한 냉풍에다가 땀이 식으며 체온을 더 앗아가는 바람에 저는 급하게 껴입은 잠바와 장갑에도 불과하고 내려오는 동안 벌벌 떨어야 했습니다. 등산을 했다는 뿌듯함보다는 역시나 겨울산은 만만하지 않다는 점, 온도 변화가 심해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는 불편함만 확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험에도 불과하고 또다시 비슷한 복장에, 세차게 나를 향해 돌진하는 강풍을 그대로 마주하며 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이상하게 불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람의 압력과 세기를 느끼면서도 이상한 쾌감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뚝심이 생겼습니다. 노출된 귀와 손이 체온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바람막이 잠바 안에는 뜨거움이 있었습니다. 거친 냉기와 후끈거리는 열기와의 팽팽한 대립! 스릴이 느껴졌습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온도의 느낌! 신기하면서도 두 세계를 내가 지배하고 있다는 혼자만의 우쭐감이 생겨났습니다. 어쩌면 이 감정은 등산처럼 정해진 긴 시간을 내려와야 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언제든 멈출 수 있고 비교적 짧게 끝이 나는 달리기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추위에 맞서는 나름대로의 용기가 생겼습니다. 당당히 마주해 볼 짱이 생겼습니다. 이 수확만으로도 오늘의 연습은 의미가 컸다고 생각됩니다.




3.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 부여



총길이 333미터, 폭은 가로 60미터, 세로 57미터, 높이 25미터의 포항의 '스페이스 워크'


 제가 그렇게 꺼리던 겨울바람과의 사투가 만족스러운 감정으로 끝이 났습니다. 경험해 보니 해 볼만하다는 자신감이 불쑥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그럼 이제 제가 극복해야 할 새로운 과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속도와 물입니다. 저는 높이에는 강합니다. 포항에 있는 27m의 '스페이스 워크'에서도 전혀 겁이 나지 않았습니다.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저를 보고 가족들이 신기해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속도에는 약합니다. 특히 놀이기구를 잘 못 탑니다. 그래서 스피드를 요구하는 스포츠를 경험하기에는 제약이 많이 따릅니다. 언젠가 이것이 극복되어 환호성을 지르며 끝없이 펼쳐진 초목 위를 가로질러 가 보는 것이 꿈입니다.

 두 번째는 물입니다. 수영을  못 합니다. 자유형을 어설프게 흉내 내어 몇 미터 앞으로 움직여 볼 수는 있지만

이것도 발이 닿는 곳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물에 떠 있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리핀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성공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과하고 바다를 온전히 탐색하고 누려보는 것에 도전을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구명조끼의 도움에서 벗어나 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느끼면서 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추운 날씨 속 달리기를 통해 느꼈던 감정들이 이 두 가지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가교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유독 추웠던 오늘,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로 시도한 달리기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의 계절에 대한 선호도 순위는 바뀌게 될까요? 겨울의 장점과 매력을 서서히 알아가게 될까요? 순위가 바뀌든 그렇지 않든 간에 스스로가 정했던 목표를 이행했고, 추위에 맞서 즐겨 볼 담대함이 생겼으며 그 감정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취약점을 개선해 볼 용기를 가졌다는 점에서 오늘의 경험은 값진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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