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고 8개월가량 지난 후에 저는 드디어 대망의,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던, 대양 넘어 아득한 꿈만 갔았던 '풀코스'를 도전하고 완주하였습니다.
막연히 준비를 하며 대회를 기다릴 때는, 풀코스를 완주하면 정말 감격스럽고 보람될 줄 알았는데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해냈다는 희열보다 준비가 부족했었다는 자책과 어쩌면 냉혹하리만큼 철두철미하게 교통통제를 해제하고 대회장을 철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의 부푼 기대와 이상적인 공상과는 달리, 현실의 냉정한 한 단면이피부로 와닿는 경험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대회의 용품들을 택배로 집에서 받아볼 때만 해도 정말 기분이 좋고 설렜습니다.
'아, 나도 드디어 풀코스를 뛰어보는구나.'
'설마, 내 성격에 중도포기는 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완주기록증과 메달을 받아보게 되겠지?'
한 번에 30 km 이상을 뛰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누어서는 이미 달려본 훈련이 있었고, 하프코스(21km)도 무난하게 3번을 완주한 경험이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 무거움과 막강함을 쉽게 치부해 버린 나의 마음이 결정적인 실수가 되어 돌아왔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첫 풀코스 도전인데 새벽부터 비가 왔습니다. 제가 참가한' JTBC마라톤'은 우리나라의 3대 마라톤 중 하나이기에 3만 명 이상 집결한 대회장은 수많은 인파들로북적북적했습니다. 세상에나, 달리기를 하고 풀코스를 도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저는 그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말에 의하면 좀 달린다는 사람들은 이런 메이저 대회를 손꼽아 기다리기에 전국에서 모인 인파라고 했습니다. 저처럼 호기심이나 인생 경력에 한 줄 남기고픈 얄팍한 의도로 온 사람과는 급이 달라 보였습니다. 비장미가 느껴졌습니다. 이미 기존 풀코스 경력이 있는 엘리트나 A~C그룹과 달리, 저처럼 처음 풀코스를 도전하거나 3년 이내 기록이 없는 사람들은 D그룹으로 배정되어 풀코스 참가그룹 중에서 제일 늦게 출발했습니다. 이것이 능력에 따른 냉정한 스포츠의 세계라 하더라도 계급처럼 나누어진 분류에서 제일 꼴찌에 배정되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차츰차츰 능력을 끌어올려서 조금이나마 앞선 알파벳에 배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마라톤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도로가 통제되어 뻥 뚫린 서울 시내 한복판을 달리는 기분은 참 미묘하면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긴 다리를 건너며 한강을 바라보고, 양화대교를 건너고, 국회의사당, KBS본관, 굵직굵직한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기세등등한 위용의 건물들, 광화문 거리 등을 가로지르며 달릴 때는 정말 신기하고 행복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한발한발 내딛으며 건물들을 바라보며 지나갈 때의 느낌은 차를 타며 바라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흥이었습니다. 가보고 싶었고, 살아보고 싶었던 세계가 온전히 내 것이 되어 함께 존재해 주는, 그런 미묘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분 좋음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비가 살짝씩 내리는가 싶더니 운동화와 옷이 다 젖을 만큼 세차게 퍼부어댔습니다. 바람도 세차게 불었습니다. 첫 풀코스 도전인데 이 무슨 악재란 말입니까. 기온 하강을 막기 위해서라도 쉬거나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같이 달리는 선수들 중 누구 하나 비에 힘들어하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들을 유지시켜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열심히 달렸습니다. 어서 빨리 거리를 나타내는 안내 표지판들이 하나하나 나를 지나쳐 가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풀코스는 풀코스였습니다. 호락호락하게 그 위용을 건네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나의 연습 시간들을 되짚어보면, 하루 중 시간을 나누어 30km를 달려 봤을 뿐, 온전히 한 번에 이어 달려 본 경험은 하프 경기 때의 21km가 최장거리였습니다. 이런 부족한 연습과 실력은 이번 레이스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습니다. 33km까지는 몸이 그런대로 잘 움직여줬는데 이후부터 급격하게 근육들이 굳어갔습니다. 종아리가 단단하게 뭉쳐지는가 싶더니 엉덩이 밑 허벅지가 뻣뻣하게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물을 먹은 신발과 양말로 인해 발이 조이는 느낌이 강해져 왔습니다. 그래서 운동화 끈도 서서히 풀면서 발안의 공간을 넓혀줘야 했습니다. 올해 처음 마라톤을 시작하고 이번이 네 번째 대회인데 경기 중 스프레이 파스는 처음 뿌려봤습니다. 확실히 시원했죠.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의 해결이었을 뿐, 다리는 점점 그 능력의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행여나 도움이 될까 스트레칭도 몇 번 시도하게 되었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36킬로미터쯤에서 다시 스트레칭을 시도했는데 인대나 힘줄에 뭔가 잘못된 자극이 가해졌는지 왼쪽 무릎 자체에 힘을 전혀 줄 수가 없었습니다. 옆에서 같이 달려주던 남편이 주물러 주고 여러 응급처치를 시도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저는 깨끔발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무리가 갈까 오히려 쉬라고 하며 심지어 택시호출까지 언급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로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려고 해 왔던 연습들, 대구에서 풀코스를 완주해 보겠다고 서울까지 올라온 시간과 경비들이 생각났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이웃들에게 호언장담하던 여러 개의 글들도 떠올랐습니다. 이번 경기로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 하더라도 절대로 완주를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는 없었습니다. 남편의 판단을 새겨들을 여유가 없었기에 무작정 빠르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행여나 다시 뛸 수 있을까 싶어 여러 번 시도를 해도 무릎의 상태는 여전히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걸을 수는 있었습니다. 남편의 손을 지팡이 삼아 발을 뗐습니다. 저는 1분 1초가 급한데 남편은 경기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제 몸의 상태가 걱정되었던 것인지 빨리 걸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알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혼자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은 왜 흘렀던 것이었을까요.
남편은 걷는 행위로는 저와 속도를 맞출 수가 없겠다며 옆에서 천천히 뛰어줬습니다. 하지만 교통 통제시간인 5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는 차도가 아닌 인도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신호등 앞에서도 3번이나 기다려야 했고 골인지점에 도착했을 때는 완주 대문마저 철거되고 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바리케이드 철문을 넘어 직원분께 다가가니 기계에 제 번호판이 인식되게 도와주셨습니다. 최종 기록마저 얻을 수 없었다면 속상한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무료 음료 시음회도 끝났고 저희는 대회 기본 물품인 물과 메달, 대회 음식 보급품만을 받은 채 쓸쓸히 대회장을 터벅터벅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모든 것이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저의 탓이었지만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듯이 공허하게 밀려오는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남편이 무심하게 툭 던집니다.
"달리기에 진심이어서 그래."
전 둔탁한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진심'. 그것은 그 어떤 단어보다 저를 부끄럽게 했고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의도는 얄팍했습니다.
'달리기? 나도 할 수 있다고!'
철부지 어린애가 조그만 일로 소란스럽게 부모에게 자랑하듯 '달리기'는 저를 드러내고 싶은 액세서리의 의도도 없지 않았습니다. 아들 셋 키우는 주부지만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40대 아줌마지만 젊은이들처럼 아직 쌩쌩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무게감 없는 떠들썩함일 수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를 알아챈 듯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그러니 운동 부심은 부리지 말거라."
정곡을 찔린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댄스, 언제 봐도 우아한 요가,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등산, 슬슬 그 맛을 알아가고 있는 헬스... 저에게는 꾸준히 즐기며 하고 있는 운동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달리기라 저도 그 물에 발을 담그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간곡함과 절실함이 부족했습니다. 그것이 여실히 드러났기에 더 부끄럽고 아쉬운 풀코스 도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다시 달려보고자 합니다. 뜨거운 호흡을 느끼면서 말이죠. 진지한 성실함으로 다가간다면 후회와 자책이 아닌 보람의 미소로 '달리기'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