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최근에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다른 안 좋은 일들이 연거푸 더해지면서, 자꾸만 가라앉는 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생각난 것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였습니다. 정처 없이 헤매고 혼란스러워하는 감정의 큰 기복 속에서 뭔가 나를 붙잡을 것이 필요했기에 저는 당장 응모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보름 가량. 부랴부랴 쓴다 해도 하루에 한 편씩, 최소 10개의 글을 연재하여 올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때 나타난 저의 구세주!
바로 저의 블로그였습니다. 정해진 내용이나 틀이 없이 짬뽕처럼 잡다하게 글을 올리는 와중에서도 정성을 들인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마라톤'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사진과 함께 그 당시의 느낌과 생각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1년도 훨씬 더 오래 전의 사건들을 폰의 사진첩에서 찾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내가 어떤 감흥을 받았을까?'
질 좋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많은 부분이 망각되어 있었지만 블로그 글을 읽으면서 거의 사라질 뻔한 연기 같은 기억들을 다시 소환하여 글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남편과 아주 격하게 싸운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안 좋은 상황은 우리 부부가 처한 공통의 분모였기에 남편의 심정도 너그럽고 평온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죠. 신체적으로 상해를 입힌 것은 전혀 없었지만 저의 거친 육아 방식에 남편도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우리가 같이 15년을 산 사람들이 맞나?'
'사람들은 금슬 좋고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부부로 알고 있을 텐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 것인가?'
'정녕 함께 살고 아이를 같이 키웠던 사람한테 이런 말들을 할 수 있는 건가?'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의외로 저는 담담했습니다. 가시 돋친 말들 속에는 제가 반성하고 바꿔야 하는 솔직한 이야기도 숨어있었으니까요.
'나도 잘한 것이 없기는 하네.'
자기 성찰을 하고 나니, 그런데 마음은 더 무너졌습니다. 자괴심이 더 짙게 드리우고, 후회가 밀려오고, 지금까지 열심히 산 세월에 대한 결과물이 하얀 거품처럼 커졌다가 뻥하고 사라진 기분이랄까요.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하지만 삶은 야속하게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죠. 장을 봐야 했고 아이들을 위한 음식도 만들어야 했으며 엄마표 공부라는 명분 속에 하기 싫어하는 공부도 시켜야 했으니까요. 지금 상황에서 바꿀 수 있는 일은 크게 없었지만, 그렇기에 이번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는 무조건 완성하고 응모를 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가녀린 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저는 연재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써 놓았던 블로그 글을 읽으며 예전의 감정이 되살아났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심장을 '쿵' 들이받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남편의 배려와 도움'이었습니다. '달리기'에 관심을 가지고 첫 연습을 뛰었던 순간부터 모든 대회를 통틀어 남편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크루 같은 단체에 가입한 적도 없고 같이 연습하는 동료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코치이자 감독이었고, 저의 동료이자 친구이며, 위로이며 기쁨이었습니다. 잘 달리면 칭찬해 주었고, 잘 안되어서 낙심하고 있으면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부인을 위해서 하프코스는 물론이고 풀코스에서도 폰을 들고 달려주었습니다. 그런 번거로운 일도 기꺼이 도와준 남편이었던 것이죠.
함께 마라톤 의상을 고르고, 기록을 확인하며 즐거워하고, 맛있는 음식을 서서 먹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런 배려와 도움을 받을 때는 언제고 좀 거친 말들을 했다 하여 용서를 하니 못하니 하며 감정싸움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며칠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남편에게 제가 먼저 말을 걸었고 우리는 화해를 했습니다.
브런치북에 올릴 연재 글을 쓰면서 꼭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기여와 공로를 잊고 싶진 않았습니다. 남편의 배려와 저의 고마운 마음을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솔직하게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마라톤을 쓸 때는 마라톤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 풀코스 완주가 그 무엇보다 이루어내야 할 과업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마음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 뜨거운 마음으로 말미암아 달릴 수 있었고 기뻐할 수 있었고 다시 목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마라톤은 끝났지만, 앞으로 다시 도전한다 하더라도, 부상이 따라온다 하더라도, 나이를 먹어 더 이상 마라톤을 뛸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그 마음들이 있었기에 돌이켜보는 것이 즐겁고 결과를 떠나 모든 순간들이 아름다운 기억들로 느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부의 마라톤 풀코스 도전기'의 이름으로 써 내려갔던 브런치 연재 북은 저에게 정말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용기도 얻었고 희망도 보았습니다. 현재 제가 가진 상황이 금방 좋아진다거나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음의 연재북을 위해 저는 다시 힘을 내어 삶을, 열심히 뜨겁게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