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계속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비가 안 오는 틈을 타 달리기를 하러 나갔습니다. 비가 온 뒤라 공기도 깨끗했고 온도도 낮지 않았으며, 햇볕도 적당히 숨어 주어서 달리기에 최적의 날씨였습니다. 그런데 쾌청한 날씨와 다르게 저의 마음은 물먹은 솜뭉치인 양 무겁기만 했습니다.
'아, 정말 가기 싫다. 그래도 화~금까지 비가 온다면 오늘은 좀 뛰어줘야 나머지 평일을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있겠지?'
비 오는 날에 달리기를 안 할 수 있는 맘 편한 특권을 스스로에게 주기 위해서는 지금 나가서 얼마든 간에 뛰어야 했습니다. 혼자서 어기정어기정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마음은 집에 머물고 싶은 심정입니다.
'오늘은 얼마나 뛰어질까? 5km? 10km? 12km?'
뛸 거리를 한번 생각해 보는데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요즘 다리 상태가 그렇게 가볍지도 않고 왠지 모를 뻑뻑함과 무거움이 자꾸 느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못 뛰면 5km 미만에서 끝날 것 같았고 잘 뛰어도 12~13km쯤에서 그만둘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 되는대로 하자. 어차피 풀코스는 마음을 비웠잖아. 달리다가 정 안되면 택시나 지하철을 타지 뭐.'
다리가 묵지끈하니 마음에라도 부담감을 덜어줘야 했습니다. 그렇게 차에서 내려 냇가 근처 산책길에서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삑~!"
시계의 스톱워치를 눌렀습니다.
'천천히 뛰자. '
마음속으로 여러 번 다짐하며 뛰는데 또 다리가 무겁고 통증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뭐야? 벌써 이러기야?'
한숨이 푹푹 새어 나오며 비참한 느낌까지 들려고 합니다. 시계를 보니 1km도 뛰지 않았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되는대로, 맘 편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걷지 뭐. 걷다가 뛰어도 돼. 처음부터 끝까지 꼭 뛰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뛰는 것만 생각해서 5km도 못 하는 것보다 걷다가 뛰면서 몸을 구슬리다 보면 훨씬 오랜 시간 달릴 수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렇게 이날의 연습은 걷고, 뛰고, 걷고, 뛰고를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도무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유튜브 음악 청취용으로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데, 풍경이 예쁘다 싶으면 간간이 멈춰 서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걷더라도, 멈추더라도 시계의 스톡 워치는 끄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달리기 기록입니다.
검은 선이 아래로 죽 내려가 있는 부분이 걸었거나 계단이 있는 부분, 혹은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던 구간입니다.
중간중간 멈춰서 물도 마시고, 에너지 젤도 먹으며 특히 사진을 찍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갑자기 전국의 국립공원 산들을 혼자서 다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힘들거나 숨이 차면 그냥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늘을 보고, 풍경을 보며, 나무와 꽃, 흙, 곤충, 새의 생명력을 느끼면 기분도 좋아지고 잠깐의 휴식으로 산행의 버거움이 훨씬 줄어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마라톤의 성패보다는 연습하는 과정 동안 스트레스를 덜 받고 즐길 수 있는 쪽으로 운동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부담을 줄여주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멈췄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긴 거리에 미리 겁을 먹고 시도하지 않았던 코스도 다시 도전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리는 서서히 풀려 오히려 처음보다 상태가 나아졌습니다.
결국은 23km를 뛰었습니다. 3시간가량 뛴 거리치고는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처음의 두려움과 달리 23km는 벅차고 기쁜 숫자였습니다. 8만 원의 풀코스 비용을 생각하며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날릴지도 모른다는 죄책감보다는 그 풀코스 신청이 있었기에 많은 날 밖으로 나가고 뛰었던 스스로의 연습들을 칭찬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돈으로 따지면 어디 8만 원뿐이겠습니까. 몇 달을 합치면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에 해당하는 운동량일지도 몰랐습니다.
무엇이든 부담스럽고 마음이 처지면 더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방법을 바꾸더라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어떤 동력을 마련하는 것, 이번 연습에서 그것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