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밥을 차려주다가 우연히 싱크대 대리석 난간에 골반이 부딪혔습니다. 순간 많이 아팠지만 멍이 좀 들었다가 괜찮겠지 했는데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걸음을 걸을 때도 아파서, 무슨 할머니 마냥 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납니다. 손은 당연히 허리에 가서 받치게 되고 몸도 옆으로 갸우뚱 기울어지게 되었습니다.
순간, 저도 살짝 고민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프니 살살 만지며 쉬어야 할까?'
'그래도 계속 움직이면 피도 통하고 몸도 적응을 하겠지?'
아픈 채로 있기에는 벌려놓은 일들이 많습니다. 하프 코스도 곧 나가야 하고 '풀 마라톤'도 신청이 되어 있었습니다. 몸은 안 따라주는데 마음은 갈팡질팡, 우왕좌왕, 허둥지둥입니다. 심폐 기능이라도 좋아질까 싶어 두 배로 수업을 늘린 댄스 수업에 가서 일부러 더 열심히 엉덩이를 이쪽저쪽 움직여도 보고 크게 휘돌려도 봅니다.
처음에는 엉기적거렸던 몸이 거의 모든 동작들을 다 소화를 해 내기는 합니다.
요가수업도 갔습니다. 자리에 앉거나 일어설 때는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막상 요가 동작을 시작하면 불편한 내 몸이 자각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걸어 나올 때
'아, 여전히 아프기는 하네.'
생각이 다시 들기는 하지만요.
문제는 달리기입니다. 골반 통증을 핑계 삼아 쉬어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합니다.오늘은 달리러 나가면서
'에휴... 내가 괜히 욕심을 내 가지고...'
후회와 자책도 밀려옵니다. 취미로 걷고 달리시는 분들에 비해서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라며 괜히 제 마음과 타협도 해 봅니다.
'이 정도 운동의 가짓수면 몸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엔 충분한데...'
어떤 핑곗거리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면서 패기와 의욕이 가득했던 러닝 목표는 자꾸만 은근슬쩍 뒤로 밀어내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시간과 거리면에서 기록이 안 나오는 것도 사기저하에 큰 몫을 합니다. 해는 점점 더 늦게 뜨는데 그렇다고 깜깜한 새벽에 나갈만한 배짱은 없습니다. 6시에 나가도 아이들 등원준비를 위해 7시 20분 정도까지 집에 들어오려면 집 옆 학교 운동장만큼 좋은 장소는 없습니다. 그런데 좁은 트랙을 계속 돌고 도는 일은 넓고 긴 자전거도로를 뛰는 것보다 시간도 더디게 가고 지겨운 느낌도 훨씬 강하게 듭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걷고 살살 뛰시는 것을 보는 것도 괜한 우쭐감이 생기려고도 합니다.더 매진하여야 하는 마음에 은근슬쩍 나태함이고개를 듭니다.
"삑"
시계를 정지하고 보니, 뛴 거리는 미약하고 아쉽습니다.삼일은 뛰었는데도 다 합쳐봐야 하프코스 하나의 길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숨은 차고, 다리는 무겁고, 기록도 마음만큼 안 받쳐주니 재미도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 되겠습니다. 하루 동안 뛰는 거리가 짧으니 이틀에 한번 뛰던 달리기 연습을 매일 하던지 해야겠습니다. 곧 다가올 풀 마라톤도 안 될 것 같은데 무슨 심보인지 내년 3월에 또 풀 마라톤을 신청해 놓았습니다.
저는
'현실감각이 없는 이상주의자'이던지,
'목표부터 정하고 거기에 끼워 맞추는 되는대로 형' 이던지,
'욕심이 많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계획남발형'
인간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많이 해 놓으면 하나는 얻어걸리겠지?'
를 꿈꾸는 전형적인 '여러 우물형 인간'일까요?
발은 무의식적으로, 자동으로 다시 댄스 수업으로향합니다.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들...
'과연 댄스를 하면, 달리기의 고정되고 경직되었던 자세를 풀어주며 도움을 주는 측면이 클까요? 심폐기능을 계속 향상시켜 주고 있을까요?'
'아니면 괜히 이것저것 도전하다가 체력만 축나고 다음에 뛸 달리기에 기운이 달리는 불상사가 생기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까요?'